[이재구코너]하늘에 매단 천문대 '허블망원경'

1990년 4월24일=우주를 향해 열린 새로운 창

일반입력 :2010/04/22 14:51    수정: 2010/04/26 14:17

이재구 기자

챌린저사고가 앗아간 우주천문대의 꿈

“ 오, 하느님....” “저럴 수가”

1986년 1월28일 미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 상공.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대를 이륙한 지 73초 만에 공중폭발했다. 발사순간의 환호는 비명으로 바뀌었고 7명의 승무원은 우주의 별로 사라졌다. 엔데버,디스커버리, 컬럼버스,아틀란티스 등 5대의 우주왕복선 가운데 하나인 챌린저가 처참하게 공중에서 산화해 버린 것이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에 빠졌다. “더 이상 상업용 인공위성을 운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 8월 레이건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우주개발계획의 중단을 발표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의 문이 88년 9월 디스커버리호의 활동재개 시점까지 전면 중단될 것을 알리는 선고였다.

하지만 챌린저 참사로 중단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주왕복선과 함께 솟아오르려던 허블망원경이 지구궤도 612km 상공으로 자리를 찾아갈 길도 함께 막혀버린 것이었다.

예정된 일정을 3년이나 훌쩍 넘긴 터였다. 예산문제와 기술적 문제도 한몫했지만 이 사태로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946년 자신의 논문에서 본격적인 ‘우주천문대’시대를 예언했던 예일대의 라이먼 스피처 박사의 꿈이 꽃피려는 것을 시샘하는 것 같았다.

‘우주망원경의 아버지’로 불린 우주천문대 설치의 이점을 크게 두가지로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지구대기권을 둘러싼 공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별의 모양을 뚜렷이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지상천문대에서 볼 때 대기에 흡수되는 별빛의 적외선,자외선까지 포착할 수 있는 점등을 꼽았다. 챌린저 참사는 막 실현되려는 허블망원경의 하늘길을 막아버렸다. 허블망원경은 질소 클린룸에서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우주에 버스 크기만한 망원경을 매달다

그것은 1965년 미 국립과학학술원(NAS)이 거대우주망원경을 규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스피처박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해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이래 최대 위기였다.

그는 1966년 4월 8일부터 72년 8월21일 사이에 나사에 의해 네차례나 로켓으로 망원경인공위성을 쏘아올려 2기가 성공하면서 그나마 희망을 끈을 이어왔다. 72년 마지막으로 쏘아올린 궤도천문대(OAO)위성 OAO코페르니쿠스도 81년 2월까지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다. .

하지만 허블은 비용 규모부터가 달랐다. 자금이 부족했다. 스피처박사는 미 의회와 학계를 동시에 설득시켜야 했다. 결국엔 한해 미과학계 규모의 예산인 1억5천만달러가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유럽항공우주국(ESA)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내고 대신 허블망원경으로 사진찍는 시간을 할애하는 조정안이 나왔다.

디스커버리호는 86년 1월 챌린저 참사 이래 처음으로 재개된 왕복선이었다.

1990년 4월24일 오전 8시33분51초(미 동부표준시) 플로리다 반도는 관제센터요원과 북적이는 관광객들의 모습으로 시끄러웠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이미 8일전 ‘우주로 열린창’이란 제목으로 허블망원경을 커버스토리로 대서특필해 놓고 있어 사람들도 우주천문대를 통한 우주 저너머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10,9,8,7,6,5,4,3,2,1. 발사!”

플로리다반도 케네디우주센터 39B 발사대. 3차례나 연기된 끝에 디스커버리가 지상을 박차고 화염을 뿜으며 솟구쳤다. 31번째(STS-31)인 이번 우주왕복선 임무는 113톤 무게의 왕복선으로 직경 2.5미터, 길이 57.6미터, 무게 11톤인 버스만한 우주망원경을 지구상공 612km 궤도의 허공에 매달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디스커버리는 하룻만에 로봇팔로을 허블을 무사히 작전 고도에 내려놓았다. 이제부터 근적외선,자외선,광파,스펙트럼카메라와 유도센서 등으로 우주의 파노라마를 보내 올 것이었다.

■ “우주천문대에 이상이 생겼다.”

“은하 사진들이 왜 이렇게 흐리게 나오지?”

디스커버리가 발사 다음 날 허블망원경을 고도 612km 허공에 매달아 놓았지만 몇 주 후 지상에서 받아 본 허블우주망원경의 전송 사진은 말이 아니었다. 지상천문대의 것보다 별로 나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볼티보어 소재 우주망원경과학협회(STScI)소속 과학자들은 의아해 했다.

알고 보니 망원경의 가장 중요한 주 부분인 렌즈의 위치가 잘못 놓여진 데다가 렌즈두께 가공도 잘못돼 있었다. 퍼킨 엘머사의 렌즈 가공은 내내 허블망원경 운영진들을 속썩여 왔다. 몇 개월에 한달씩, 심지어는 하루에 또하루씩 일정이 추가되면서 무던히도 과학자들의 속을 끓였다.

망원경의 핵심인 대구경렌즈가 설계보다 얇은 2.2마이크론으로 가공돼 렌즈 간 굴절률의 차이가 너무 커졌다. 이 때문에 별의 모습을 제대로 또렷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렌즈두께를 재는 기기가 1.3mm나 잘못 놓여 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별의 이미지는 번지면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래서는 지상의 어느 천문대보다 10배이상 뚜렷하게 별을 관찰해 우주의 변화와 창조의 원리를 알아낸다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1929년 수십개 성운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결과 멀리 떨어져 있는 성운일수록 지구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음을 확인해 우주팽창을 증명한 에드윈 허블박사에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메릴랜드에 있는 고다드연구소 학자들을 비롯한 우주과학자들의 열정은 고장난 망원경을 내버려두기엔 너무 컸다. 93년 12월 STS-61호 우주비행사가 부품교체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허블망원경의 시야는 밝아졌다. 5차례에 걸쳐 5종류의 허블망원경에 실린 계측기, 태양광수신패널,영상저장장치 등이 바뀌었다. 2009년 마지막 5번째 수리까지 100억달러 가까운 돈이 들었다.

■허블망원경이 가르쳐 주는 것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가장 보고 싶은 것을 추천해 주세요.”

2001년 나사는 허블우주망원경 발사 11주년을 기념해 네티즌들에게 '가장 보고 싶은 우주'의 모습을 공모했다. 결과는 ‘말머리성단(Horse Head Nebula)’이었다. 사진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학자들은 1995년 12월 중순 허블망원경이 20일동안 북두칠성 부근에서 찍어 보낸 300장의 사진분석을 통해 빅뱅이 시작된 시점이 140억년임을 알 수 있었다. 허블박사가 증명한 우주의 팽창과 빅뱅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허블망원경으로 확인된 것이다.

1994년 7월초 허블은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학자들이 이를 분석해 각 혜성조각의 크기가 1~2km크기이며, 이것들이 지구에 떨어질 확률을 알아내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이로부터 4년 후 '딥임팩트'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허블은 이처럼 허공에 뜬 한 점이자 동시에 인간지혜가 집대성된 종합적인 구조물로서 인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해주며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인류에게 스스로 우주 저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확대시켜 주는 가장 친근하고 유용한 친구임을 과시했다.

허블이 찍어보내 온 사진은 우주의 생성 소멸과 인간의 그것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것이기도 했다. 나선은하, 나비성운, 고양이눈성운, 기둥성운,말머리성운 등은 형체가 없는 별빛우주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구체적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대략 1천억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에 평균 1천억개의 다양한 별들이 있다는 우주에서 인류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가장 먼 우주를 보며 스스로 더 겸손해질 수 있었다. 또한 복잡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우주의 법칙과 지구가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묻힌 하나의 점임도 인식시켜 주었다.

현재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허블망원경은 매일 전세계 우주연구과학자들에게는 10~20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전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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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늘의 천문대는 20년 전 발사된 이래 갖가지 화제를 낳으면서 인류에게 우주의 별과 외계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우주로 열린 창’이자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내면의 거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우주왕복선 계획이 올해로 끝남에 따라 허블망원경은 2014년 수명을 끝나면 회수되지 못하고 지구대기권으로 떨어져 타버린다. 이후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허블의 뒤를 잇게 된다. <목요연재>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