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AMD-ARM, 'CPU 삼국지' 속으로

일반입력 :2010/03/18 12:45    수정: 2010/03/19 08:46

류준영 기자

PC용 프로세서 최강 인텔과 모바일칩 선도업체 암(ARM)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모바일을 향한 인텔의 북진정책과 PC로 내려오는 ARM의 남하정책이 충돌하면서 인텔과 ARM은 사활건 한판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AMD가 인텔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디지털 기기용 프로세서 시장은 바야흐로 삼국지 시대로 접어들었다. 업체간 마케팅 경쟁도 본격화됐다. 설전도 왔다갔다하는 양상이다. 말을 아껴왔던 인텔도 최근에는 공격모드로 전환했다.

17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서 열린 인텔 ‘코어I7 980X 익스트림 에디션’ 발표회장에서 기자와 만난 인텔코리아 고위 임직원들은 ‘스마트’한 모바일 단말기 중심의 시장재편이 인텔에겐 ‘위기이자 기회’라고 진단하며, 최근 암코리아(ARM Korea)의 연이은 거친 언사에 대해선 최대한 태연한 자세로 ‘관망하고 있다’고 했다.

ARM코리아는 이달 4일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올해 칩셋 시장의 경쟁은 ‘암 VS 인텔’ 구도로 전개될 것이며, 인텔은 복잡한 칩셋 디자인 구조 때문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초소형 인터넷 디바이스 시장에서 고전하게 될 것”이라며 작심한 듯 인텔을 코너로 몰아세웠다.

실제로 인텔은 코드명이 소비자들로부터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코어+알파벳+숫자’식으로 명칭을 통일하는 일종의 개명 작업을 지난해 본격 실시했다.

이와 함께 작년 경기침체 속 PC시장의 구세주로 등극한 넷북용 아톰 CPU 이외 울트라모바일PC(UMPC), 모바일인터넷디바이스(MID) 등의 휴대용 제품들이 스마트폰 그늘에 가려 대형 제조사들로부터 눈길을 끌지 못한 데다 넷북 이후 ‘울트라 슬림’ 플랫폼 역시 제품의 포지션과 가격이 일반 노트북PC와 충돌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모바일 시장에서 그들의 조준점은 끊임없이 흔들렸으며, 독창적인 상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인텔 왕국’ 건설에 걸림돌이 됐다.

모바일 시장의 ‘천하평정’을 위해선 애당초 인텔의 모바일 시장 행보를 견제해야만 했던 암은 이 틈을 파고 들어 고도의 심리전을 연속해서 펼친 것이다. 암은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를 틈타 스마트폰 시장을 비롯한 ‘스냅드래곤’을 채용한 스마트북, 나아가 애플 ‘아이패드’로 높은 성장세가 예고된 태블릿PC 시장까지 모두 접수하겠다며 시세확장을 꿰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달 11일 대만서 열린 암 발표회에선 “올해 암 칩셋을 채용한 태블릿 디바이스가 50여개 가량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암은 자사 코어와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 엔비디아의 모바일 전용 칩셋인 ‘테그라2’를 채용한 두 가지 유형의 태블릿 디바이스를 소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인텔코리아 이국연 이사는 “인텔이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전장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암은 전력관리 차원에서 우수성을 인정하나 인텔은 그보다 나은 퍼포먼스를 가지고 있다”라며 맞받아 쳤다.

또 “인텔은 실버손(멘로우 플랫폼)을 시작으로 내년엔 3세대 모바일 칩셋을 내놓으면서 암을 넘어선 ‘파워 매니지먼트’ 성능까지 갖추게 된다”고 덧붙였다.

따라잡기엔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퍼포먼스 측면과 윈도 기반 운영체제(OS)를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긴밀한 협업관계, 키(Key) 파트너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등에 업은 인텔은 ‘플랫폼-OS-소프트웨어-하드웨어’ 4박자로 현 위치를 떠받치겠다는 복안이다.

이국연 이사는 “태블릿이나 넷북은 아직도 OS 선택에서 많은 제약이 따른다”라며 “리눅스를 채용한 제품을 우리 주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애플의 골수유저가 아닌 이상 윈도와 호환되는 제품을 찾기 마련이므로, 이 모든 내용은 암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차갑게 말을 던졌다.

인텔이 처한 딱한(?) 사정은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펜티엄은 몰라도 아이폰은 안다” 이는 인텔코리아 관계자의 직언이다.

10대부터 20대까지 젊은 소비자층 중심으로 벌인 자체 시장조사자료가 이 문구가 나온 배경이 됐다. 인텔에겐 ‘충격파’가 된 모양이다. 올해 마케팅 투자비용의 상당수가 이들(10~20대)을 겨냥한 프로모션 비용으로 집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인텔은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부문에선 현 운영중인 넷북용 앱스토어가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인텔코리아 한인수 이사는 “애플 앱스토어는 단 하나의 독점적인 플랫폼만을 지원하지만, 인텔의 넷북용 앱스토어는 윈도, 리눅스 등 갖가지 OS를 모두 포함시킨 확장된 개념의 서비스”라며 “매스마켓 중심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예기치 못한 곳에서의 악재가 뒤따라 인텔을 곤욕스럽게 하고 있다.

최근 비누 덩어리와 납 조각으로 만들어진 인텔 로고가 박힌 ‘짝퉁 CPU’가 일부 국내외 시장에서 유통된 사례가 알려지면서, 예기치 못한 잡음이 유통라인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인텔이 코어 i7 CPU 프로세서 발표하는 당일에도 이 제품의 박스와 CPU 프로세서 모양을 그대로 흉내 낸 ‘짝퉁 모델'이 신고됐다. 인텔은 공식 유통사를 통해 공급되는 제품을 구입하라고 권장하고 있으나 이 같은 모방형 범죄가 늘고 있어 '제품 신뢰성 타격'에 대한 걱정스런 표정이다.

‘13분기 만에 흑자전환 성공’ ‘글로벌 시장 PC프로세서 점유율 20.1% 달성’를 달성한 AMD의 과감하고 선제적인 맞대응도 인텔에겐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AMD는 먼저 고사양 게임을 즐기는 파워유저를 겨냥, 그래픽 부문에 보폭을 넓혀 인텔과 엔비디아를 옥죄고 있다.

AMD 글로벌 ISV담당 로빈 슨 총괄이사는 최근 열린 ‘2010 게임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3차원(D) 트렌드에 맞춰 아이피니티 기술에 기반한 3D 제품라인업(가칭: 오픈 3D 이니셔티브)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파트너사와의 다중 3D 솔루션을 위해 협력하고 업계 전반에 개발표준을 장려하겠다는 것.

또 인텔이 17일 내놓은 6개의 코어를 탑재한 하이엔드급 데스크톱용 CPU ‘코어i7-980X’에 대항마로 ‘페넘 II X6'를 오는 5월에 내놓기로 했다. 인텔이 밀고 있는 ‘터보 부스트’와 유사한 기능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져 관련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게다가 인텔 인사이드 정책에 맞설 ‘퓨전파트너프로그램(Fusion Partner Program, FPP)’을 올해부터 본격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일종의 'AMD표 인사이드' 정책으로 파트너사의 측면지원 강도를 이전보다 더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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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케니언(David J. Kenyon) AMD 채널 마케팅 부사장은 “FPP는 쉽게 말해 채널 파트너사가 AMD의 CPU와 ATI의 그래픽카드 칩셋을 함께 취급할 경우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에게 뒷전이었던 AMD가 CPU는 물론 GPU 시장까지 동시에 공략해 경쟁사와의 접전을 일단락 짓겠다는 역공의 카드를 빼 들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