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앱스토어(WAC)의 세가지 관전포인트

일반입력 :2010/02/18 09:55    수정: 2010/02/18 12:49

류한석

다급하긴 다급했나 보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0에서 전세계 24개 통신사가 WAC(Wholesale App Community)를 만든다는 발표가 있었다.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도매용 앱 마켓플레이스를 만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이다. 일부 언론은 이것을 ‘슈퍼 앱스토어’라고 기사화 했다. 그런데 내막을 살펴 보면 MWC에서 갑작스레 참여를 결정한 업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홈페이지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여러 모로 급조된 느낌이다.

참여사를 살펴보면 국내 통신사인 SKT와 KT는 물론 AT&T, 버라이존 와이어리스, 스프린트, 차이나모바일, NTT도코모, 소프트뱅크모바일, 오렌지, 보다폰, 프랑스텔레콤, 도이치텔레콤, 텔레포니카 등 전세계의 24개 주요 통신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제조사로는 삼성전자, LG전자, 소니에릭슨의 3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WAC는 올해 상반기 내에 연합체 구성을 완료하고 내년에 앱 마켓을 선보일 예정이며 개발자를 위해 표준화된 플랫폼과 개발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발표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WAC에 참여하는 통신사들의 가입자 수를 모두 합하면 30억 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WAC는 지금 시점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까? 아니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을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첫째, 기존 가입자 수가 WAC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될까? 이번 WAC 발표가 마치 ‘30억 명의 소비자가 있는 마켓플레이스’가 만들어진다는 식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그건 착각이다. WAC를 지원하는 폰(가칭 WAC폰)과 마켓은 잘해야 내년에 첫 선을 보인다. 그 전까지 WAC폰의 보급 대수는 0이다. 기존 30억 명의 가입자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어차피 기존 가입자들의 폰은 WAC와 상관이 없다. 혹시나 업그레이드를 통해 지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WAC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피처폰에서 제대로 지원될 리 만무하다.

결국 전세계 24개 통신사가 연합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가입자 0부터 시작이다. 과연 소비자들이 검증된 아이폰, 블랙베리폰을 사지 않고 WAC폰을 구입할까? 통신사들의 장기인 광고와 마케팅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덕분에 소비자들이 많이 스마트해졌다. 스마트폰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 있어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앱)이다. 그렇기 때문에 앱 마켓에 있어서 폰의 보급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용자들의 앱 구매 및 이용률이다.

애플 아이폰/아이팟터치는 작년 9월 기준으로 5천만대가 팔렸다. 그런데 노키아의 심비안폰은 이미 오래 전인 2006년 11월에 1억대가 넘게 팔렸고, 최근의 판매 대수도 심비안폰이 아이폰보다 2배 이상 높다. 하지만 노키아의 오비스토어보다 애플의 앱스토어 이용률이 훨씬 높다.

AdMob의 조사에 따르면, 아이폰 이용자들 중 50%가 월 1개 이상의 유료 앱을 다운로드한다. 또한 평균적으로 월 5개의 유료 앱을 다운로드하며 월 9달러를 사용하고, 하루에 약 80분의 시간 동안 앱을 이용하고 있다. 앱스토어에 대한 충성도가 아주 높다. 이 점이 중요하다. 예컨대, 30억대의 폰이 보급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용자들이 앱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시장과, 비록 5천만대가 보급되어 있더라도 이용자들이 앱을 열광적으로 이용하는 시장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좋은 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앱 이용률을 증대시키는 건 무척 어려운 과제이다. 스마트폰 점유율 40%(2009년 3분기 기준, 가트너)인 노키아가 왜 17%의 점유율에 불과한 애플에 밀리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단순 보급대수보다 앱 이용률이 더 중요하다. WAC가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과 실행력을 갖고 있을 지 의문이다.

둘째, 과연 WAC는 스스로 밝힌 일정에 맞춰 질 좋은 표준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참여 의사를 밝힌 24개 통신사와 3개 제조사를 면면히 살펴보면, 모두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없는 업체들이다. 기존의 플랫폼사나 성공적인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발표 이후 추가로 노키아가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WAC에 따르면 12개월 내에 표준 플랫폼을 선보이겠다고 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그 범위와 수준이 명확하지 않은데(JIL과 OMTP BONDI를 기반으로 한다는 정도이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WAC에게는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플랫폼을 그렇게 짧은 기간 내에 선보이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글쎄,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질이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능통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같은 업체에게도 1년 내에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잘 모르는 전세계 수 많은 통신사들(게다가 슈퍼 갑 마인드를 가진)의 여러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을 조정하여 짧은 시간 내에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내는 건 소프트웨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구글조차도 안드로이드를 만든 벤처 기업을 인수한 후 3년이 걸려서야 첫 번째 버전을 릴리즈할 수 있었다. 물론 WAC에서는 운영체제가 아니라 미들웨어 정도로 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쨌든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WAC의 참여사들은 소프트웨어에 대해 정말 무지해 보인다. 그게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무지하고 무시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과거에 그들의 좋은 시절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준비하고 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에 아무런 투자를 안 했거나 잘못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발표를 보니 여전히 소프트웨어에 대해 무지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표준 플랫폼은 그렇게 쉽게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 질 수 없으며, 급하게 만들어봐야 기능이나 품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아이폰과 경쟁을 하겠는가? WAC에게 나쁜 소식 하나가 더 있다. 그들의 플랫폼이 나오기 전에 아이폰이 한차례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WAC는 표준 플랫폼을 타이밍에 맞춰 못 만들어 내든가, 타이밍에 맞춘다면 질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타이밍은 이미 늦었다. 지금 나와도 모자랄 판에 이제 시작이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셋째, 개발자들을 WAC편으로 끌어 모을 수 있을까? WAC가 스스로 밝힌 일정 내에 좋은 질의 표준 플랫폼을 선보였다고 가정해보자(물론 가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문제는 앱의 양적/질적 확보이다. 플랫폼을 잘 만들어내는 것은 꽤 어려운 숙제인데, 그보다 더 어려운 숙제는 개발자들을 끌어 모아 앱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30억 가입자 기반이라고? 그것은 현재 그들의 고객 수가 그렇다는 것일 뿐 WAC는 가입자 0, 앱 개수 0에서 시작한다. 물론 통신사가 앱 개발업체들에게 WAC폰의 일정 대수 판매를 개런티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앱 매출까지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바꾸어 말하면, 앱 매출을 보장해주면 개발자 확보가 쉬워진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이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하드웨어 보급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용자들의 앱 구매 및 이용률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많은 개발자들이 WAC의 시장성이 검증될 때까지 관망할 것이고, 기대감을 갖고서 초기에 참여했다가도 매출이 안 나오면 실망하여 떠날 것이다.

그렇다. 앱을 사고파는 마켓플레이스를 성공시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일반 쇼핑몰처럼 기존의 공산품을 거래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앱 마켓에서는 개발자가 해당 플랫폼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하고 또 이용자가 그것을 사주어야 한다.

즉, 개발자는 만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소비자는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들은 팬보이(열성적인 사용자 및 개발자)가 무척이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마켓 개설 초기에 이익이 보장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드는 개발자가 많았고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앱을 찾아 이용하는 이용자가 많았다.

단지 이용에 그치지 않고 앱 활용을 전도하는 이용자도 많았다. 그런 개발자와 이용자의 열정 및 충성심이 마켓을 일정 궤도에 올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장성이 검증된 이후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됐다.

폰이 많이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앱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발자의 열정을 이끌어 내서 앱을 미친 듯이 만들어 내는 건 팬보이가 없는 업체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엄청난 이용자 기반을 갖고 있고 그 어떤 제조사보다 소프트웨어에 많은 투자를 한 노키아조차 못해내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WAC에 참여하는 업체들을 살펴보면, 팬보이가 전혀 없는 업체들이다. 통신사가 개발자들에게 호의를 표시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개발자들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거지?”라고 의심할 정도로 개발자들과 친하지 않은 업체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플랫폼이 잘 만들어져 있으니까 앱을 만들어 달라고?(물론 잘 만들어지기 힘들겠지만), 잘 하면 30억대까지 보급될 수 있는 플랫폼이니까 앱을 만들어 달다고?(물론 시작은 0이겠지만).

글쎄, 필자 같으면 이미 시장이 존재하는 앱스토어, 안드로이드마켓용 앱을 만들겠다. 한정된 리소스를 가진 개발자들이 앱스토어, 안드로이드마켓, WAC용 앱을 모두 만들 수는 없다. 기껏해야 한 두 개의 플랫폼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WAC가 성공하려면 애플과 구글에 매혹된 개발자들이 앱스토어, 안드로이드마켓을 버리고 WAC 품에 안기게 만들어야 한다. 개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든가 아니면 그들이 충분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사실은 둘 다 해야 한다. 한마디로 개발자들에게 기대 이상으로 퍼주어야 한다.

그런데 소프트웨어에 미숙한 업체들로 구성된 WAC가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고 또한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 만일 그들이 그것을 해낸다면 몹시 놀라운 일이며, 필자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변화에 진심으로 박수를 치겠다. 그런데 그것을 해내기에 WAC는 실행 주체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여전히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1년 내에 아이폰과 경쟁할만한 표준 플랫폼을 선보이겠다니!

추가로 고려할 사항이 있다. 앱의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을 연구하며 내린 결론이 있다. 바로 이것이다. “어디에서나 구동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란 결국 어디에도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애플리케이션은 그것만 놓고 보면 그럭저럭 쓸만하더라도, 결국 특정 플랫폼에 최적화된 애플리케이션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아이폰의 경우 단일 하드웨어, 해상도,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앱을 만들 수 있는 반면 미들웨어 성격의 WAC에서는 앱의 호환성 문제, 품질 문제가 분명히 대두될 것이다. WAC의 시장성이 검증되기도 전에(가입자 0부터 시작함을 기억하라), 삼성전자의 WAC폰과 소니에릭슨의 WAC폰간에 앱 호환성 문제가 발생하거나 또는 같은 개발업체에서 만든 앱인데 아이폰용과 WAC폰용 앱의 질이 확 차이가 나는 상황을 가정해보라.

이건 기우가 아니다. 필자의 이전 칼럼을 읽어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단일 업체에 의해 플랫폼이 강력히 통제될 때 비로소 최적화된 앱 개발이 가능하고 또한 시장도 만들어 질 수 있다. 누구나 가져다가 수정해서 쓸 수 있는 플랫폼이란 커뮤니티적으로는 아주 좋을지라도 비즈니스적으로는 좋지 않다. 그래서 WAC는 그 이름처럼 결국 커뮤니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WAC의 성패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추가로 기술 외적인 요인이 하나 더 있다. WAC와 같은 비즈니스 연합체는 이해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해 여러 참여사가 모두 공감할만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수립하기 힘들고, 설사 수립했다고 하더라도 강력하게 추진하기는 더욱 힘들다. 교통정리하면서 시간을 다 허비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불만을 품는 업체가 꼭 나오게 되어있고, 탈퇴를 하거나 나아가서는 배신을 하기도 한다. 동조 세력을 모아 다른 연합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 일이 한번 생기면 참여사들간에 신뢰가 흔들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협력업체들도 불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단순한 생각에 쉽게 모였다가도, 추진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면서 쉽게 와해되는 게 이런 비즈니스 연합체의 특성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동병상련의 업체들간의 절박한 위기감 공유, 그리고 잠재적으로 WAC 고객이 될 수도 있는 30억 명의 기존 가입자들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WAC의 긍정적인 요인이다. 반면에 무엇보다 부정적인 요인은 WAC 참여사들이 모두 소프트웨어에 대해 무지한 업체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업(業)이란 참 미묘하다. 단순히 사업 이상의 어떤 영감(靈感)이 존재한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적합한 전략과 전술, 나아가 사람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그들이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말해서, 필자가 언급한 장애요인들을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WAC는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 지는 여러분 각자가 생각해보기 바란다.

소프트웨어에 무지한 대규모 연합체가 소프트웨어에 정통한 단일 업체를 이길 수 있을까? 팬보이가 전혀 없는 대규모 연합체가 강력한 팬보이를 가진 단일 업체를 이길 수 있을까? WAC라는 대규모 연합체가 온갖 장애요인을 모두 극복하고, 기존의 기득권을 계속 지켜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이런 일에 있어서 성공의 결론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반면, 실패의 결론은 생각보다 빨리 난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