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인류, 우주유영을 하다

1984년 2월7일: 미·소의 우주경쟁 생명줄 없는 우주유영을 이끌어내다

일반입력 :2010/02/04 15:47    수정: 2010/03/21 12:24

이재구 기자

■우주공간에서 첫발을 떼다

1965년 3월 17일 8시34분 바이코누르 코스모드롬을 떠난 보스호드2호는 지구상공 475km부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승무원은 알렉세이 레오노프 중령과 파벨 벨라예프 대령이었다.

5682kg 무게의 우주선이 지구궤도를 2번째 회전을 시작할 즈음 레오노프 중령이 우주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련은 4년전 인류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톡호 비행을 성공시킨데 이어 이제 우주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 그 실현이 눈앞에 있었다.

그것은 우주선 외부에서의 우주산책(Space Walk), 즉 우주유영이었다.

궤도에 도착한 보스호드2호의 승무원 레오노프와 벨라예프는 EVA(Extra Vehiclular Activity·우주선밖활동)배낭을 레오노프의 우주복 베르쿳(금색독수리)에 붙였다.

흰색알루미늄으로 된 EVA배낭은 45분간 숨쉴 수 있는 산소와 냉각시스템을 제공하며 산소는 구조밸브를 통해 열,습기,그리고 날숨이산화탄소와 함께 우주로 방출될 것이었다.

보스호드2호는 새로이 만든 250kg짜리 공기감압장치(에어록)인 ‘볼가’를 우주선 뚜껑 밑으로 74cm까지 펼쳤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주선에 남은 사람은 파벨 벨라예프 대령이었다. 4분후 레오노프 중령은 외부해치를 열고 5.35m길이의 자신의 배꼽줄(생명줄)이 끝닿는 데까지 우주를 향해 나아갔다.

레오노프가 본 아래쪽 지구의 위치는 아프리카 북쪽 중부 수단과 남부이집트 상공이었다. 8시47분에 시작한 그의 우주산책은 동시베리아 상공에서의 산책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겨우 12분 9초 동안이었다.

■러시아의 '땀에 젖은' 우주산책

그것은 말그대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레오노프 중령은 우주에서 신처럼 우주선과 함께 지구를 내려다 본 최초의 인간이 됐다.

소련 우주발사계획의 명 지휘자인 세르게이 코롤로프는 레오노프의 우주선 밖 활동(EVA)에 대해 “그가 훨씬 더 오래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우주선 밖에서 레오노프는 컨디션이 좋았다”며 인류최초의 우주산책을 성공적이었다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이 후 그 역사적 순간이 동시에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기도 했었음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주유영을 마칠 즈음 레오노프는 자신의 우주복이 공기감압장치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록 딱딱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레오노프의 베르쿳 우주복은 부풀어 올랐고 구부리기 힘들게 됐다. 이 때문에 레오노프는 가슴에 달린 카메라를 사용하기 위한 가랑이사이의 셔터스위치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는 보스호드2호의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은 물론 볼가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회수할 수도 없었다. 물론 후배 우주인들을 위한 자신의 EVA활동을 기록한 볼가에 설치한 카메라회수도 할 수 없었다.

레오노프는 자신의 우주복 압력을 낮춤으로써 조인트부분을 굽힐 수 있도록 긴급조치를 했다.

의사들은 이 당시 그가 열상으로 인한 고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몸체 내부가 20분 만에 1.8°C나 올라간 것에 근거한 것이었다.

후일 레오노프는 “땀이 정강이 까지 차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보스호드2호에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더라면 자살약을 먹었을지도 몰랐다”고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신납니다. 재미있습니다.우주선에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러시아가 보스호드 2호의 경이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축하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미국은 소련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1인승 우주비행계획 머큐리프로그램을 성공시킨 미국은 제미니 계획으로 이어갔다. 61년 5월25일 케네디대통령이 의회연설을 통해 선언한 '60년대가 가기 전에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전단계 조치였다.

주된 목표는 우주에서의 장기간 비행,궤도변경,우주선끼리의 접근(랑데뷰)및 결합(도킹),우주산책 등이었다.

1965년 6월 3일 오전 10시36분 발사된 제미니 4호는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이정표였다. 지구궤도를 97시간 58분여 동안 비행했다.

비행중 우주비행사 화이트 주니어는 우주선과 연결된 7.5m 의 황금빛 생명줄을 이용해 21분간 우주산책을 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러시아의 레오노프 중령보다 77일 늦었지만 9분 동안 더 우주산책을 했다.

화이트는 우주선이 지구궤도를 세 번째로 돌기 시작했을 때 EVA장치를 입고 강력할 태양빛을 막아줄 금빛 안경을 쓰고서 생명줄에 자신을 연결했다. 산책 중에는 우주총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는 등 새로운 장비를 많이 이용했다.

발사후 4시간 43분. 화이트 주니어는 우주선 문을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우주총을 들고 하와이 동쪽 태평양 상공에서 우주선밖으로 나왔다.

“신납니다. 재미있습니다.” 휴스턴 관계센터에서 화이트에게 우주선으로 들어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는 “우주선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

거듭된 우주선 귀환 지시에 그는 우주선으로 기어 들어가며 “내 생애중 가장 슬픈 날”이라고 투덜댔다.

생명줄없이 우주에서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다

우주에서의 유영은 한 러시아우주인의 표현처럼 “마치 구멍뚫린 북극 얼음판 아래에서의 물속 유영과도 같은” 위험한 것이었다.

1984년 2월 우주왕복선을 타고 올라간 맥캔들리스와 로버트 스튜어트는 10번째 우주왕복선 임무(STS-41-B)를 수행 중이었다. 이들은 조만간 10번째가 아닌 우주항공기술사에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역사를 쓰게 될 터였다.

나사 관계자들은 이들에게 우주배낭 추진체인 MMU(Manned Maneuvering Unit)를 제공했다. 이 추진체는 가스화된 질소를 연료로 하는 배낭처럼 생긴 장치였다. 우주유영시 우주생명줄과 함께 이중으로 우주선밖(EVA)활동을 안전하게 보장해 줄 장비였다.

케블라섬유로 싸인 2개의 알루미늄탱크에는 각각 5.9kg의 질소가 담겨 있었다. 24개의 노즐이 추진력을 발휘했다.

맥캔들리스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공간에서 148kg인 MMU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수동제어판을 조작해 초당 24.4.m의 속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이제 우주작업시에도 우주인의 양손은 자유로왔다.

1984년 2월 7일 STS-41-B미션에서 우주비행사 브루스 맥캔들리스는 MMU를 이용해 생명줄 없는 우주유영에 성공한 최초의 인간이 됐다. 이들은 작동불능상태에 있는 미국과 인도네시아 통신위성을 회수하는 미션 등도 성공시켰다.

맥캔들리스는 지구궤도위성 궤도로부터 98m까지 최장거리의 우주산책을 한 인간으로 기록됐다.

2010년 2월 1일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나사 주도의 우주계획을 민간주도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우주여행 기술은 우주유영기술이 될 것이다.

미항공우주국(NASA 나사)는 이미 MMU기술조차도 위험하다며 초당 3m의 추진력을 가진 보다 작고 안전한 SAFER장치를 만들어놓았다. 물론 구소련도 지금은 사라진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이와 비슷한 장치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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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간업체주도의 우주여행이 향후 실현된다면 가장 부각되며 관심을 끌 기술가운데 하나는 단순히 우주선에 타는 것에 더해 안전한 우주비행을 지원할 우주유영장치 관련기술이 될 전망이다.

만일 우주여행을 간다면 창밖으로 우주를 내다 보다가 그냥 올 것인가, 아니면 우주유영까지 하고 올 것인가?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