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155년 전신시대 끝나다

2006년 1월27일: 웨스턴유니언의 마지막 전보···155년 전통의 통신 막 내리다

일반입력 :2010/01/21 11:21    수정: 2010/01/23 19:00

이재구 기자

■155년 간 버텨 온 발명품 '전신'

‘155년 역사가 막을 내렸다.’ ·

2006년 2월 2일. 이날 전세계 주요 언론은 로이터,AP 등을 통해 타전된 웨스턴유니언의 전신(텔레그래프)서비스 중단 소식을 뒤늦게 보도했다.

언론은 “웨스턴유니언이 155년 된 서비스의 종료사실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인터넷사이트에 올렸다. 2006년1월27일부터 모든 전보와 상용메시징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이 회사 사이트에 나온 공지사항 (http://www.telegramstop.com)를 인용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겨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언론보도 중 유독 눈에 띈 것은 뉴욕에서 발행된 '선(The SUN)'지의 기사였다.

지면 한 쪽에 모스부호를 이용한 전신서비스 방식을 그대로 빌어 ‘마지막 텔레그래프 서비스’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독자들에겐 낯선 방식이었다. 전신 전송방식 그대로 쓴 이 문장은 정말 생소했다.

토요일 콤마(,) 웨스턴유니언은 마지막 전보를 보냈다. 스톱 155 하이픈(-)년 하이픈(-)된 서비스의 종말은 간단한 노트와 함께 웨스턴유니온어파스트로피 에스(의)웹사이트에 올랐다콜론(:)

인용부호(“)2006년콤마(,)1월27일부터 유효콤마(,)

웨스턴유니온은 모든 전보와 상용메시징서비스를 중단한다 스톱 종료인용부호(”)

실제로 이 기사가 전신으로 보내졌다면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알파벳은 도트( ․ )와 대시(-)를 이용하는 모스보호(Morse Code)로 전송됐을 것이다. 웨스턴유니언은 자사의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한세기 반 동안 이어져오던 기술과의 결별을 만천하에 고했다.

■미대륙의 풍속도를 흔들어 놓다

“만일 여러분이 내 사무실에서 나와 20분만 앉아 있으면 나는 여러분에게 언제든, 미국내 어느 지역의 사업 현황이든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1870년 당시 윌리엄 오튼 웨스턴 유니언 사장은 의회에 나와서 자신감 있게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철로 주변으로 가로등처럼 세워진 전신주와 역사에 설치된 전신소를 통해 들어오는 전보로 그 해 중서부 곡창지대의 수확량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오튼은 오늘 날의 인터넷처럼 미국 전역에 펼쳐진 최대의 비즈니스 신경망을 총괄하는 사령관이었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아날로그형 기계식 인터넷 정도에 해당하는 전신시스템에 대한 그의 믿음은 확고 했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대륙의 미국인들에게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인 전신기술은 마치 축지법과도 같았다. 철도 주변으로 세워진 전신주는 곧 정보포트를 의미했고 이를 통해 나온 정보의 판매나 이용은 곧 돈을 의미했다. 이를 간파한 탐욕적인 사업가 J.P.모건은 중소 철도기업체에 이어 결국 웨스턴유니언을 손아귀에 넣기에 이른다.

아내가 세상을 뜬 줄도 모르고 귀가했다가 원거리 통신방법에 눈을 뜬 34세 청년 새무얼 모스. 1844년 워싱턴과 볼티모어간 통신을 성공시킨 그의 열정은 20년도 채 안돼 이처럼 19세기 후반 미 대륙의 정치,경제,사회 풍속도를 통째로 흔든다.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우편배달 역마차 포니익스프레스 기반의 기존 통신체제가 빛을 잃었는가 하면 여론조사가 전신을 통해 각 당으로 보내지기도 했고, 경마순위 조작이나 외국의 주식 등 경제관련 소식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면서 경제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배경은 미국 동부에서 태평양까지 영향을 뻗친 전신의 힘이었다.

■전신, 인류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다

모스의 희망대로 전신시스템과 모스부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아무리 먼 거리에서라도 같은 생활권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위대한 발명품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후 1세기 반에 걸친 역사의 일부는 전보지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보다 빠른 정보 전달 및 공유 수단으로 활용된 전신은 인류에게 ‘세 개의 사과’못지 않은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를 노란 전보지에 남겨 놓았다.

전보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트로이전쟁을 가져온 비너스의 사과, 뉴턴의 만유인력의 사과에 비견될 정도로 의미있는 역사적 사실의 단편들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그 시작은 1844년 5월24일이었다. 볼티모어 전신국의 전신기에서 가는 띠에 ‘신이 만드신 것(What Hath God Wrought)'이란 글자들이 찍혀 나왔다. 새무얼 모스가 워싱턴에서 볼티모어로 사상 최초로 보낸 유선전신 내용은 당시 코네티컷 주지사의 딸이 준비한 구약성서 민수기 23장23절의 구절이었다.

라이트 형제 역시 전보를 통해 역사를 남겼다. 1903년 12월17일. 인류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이들은 아버지에게 성공 소식을 알리고 잡지에 실리도록 조치해 달라고 전보를 보냈다. ‘키티호크 모래언덕 바람 속에서 4번을 비행해 모두 성공시켰으며 최장 57초 동안 날았다’는 내용은 웨스턴유니언을 통해 전해졌다.

전쟁을 불러 온 이른 바 ‘짐머만 전보’도 빼놓을 수 없다. 1차대전 중인 1917년 1월 16일 독일 외상 짐머만이 일본과의 동맹을 주선해 달라며 멕시코를 꼬드긴 전보였다.무제한 잠수함전 재개, 미국과 싸울 전쟁물자 공급 제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중립국 미국을 참전시킨 최악의 전보가 된다.

불법 이민노동자 덕에 살아난 웨스턴유니언

전신·전보 서비스의 쇠락을 더욱 부추긴 것은 인터넷 이메일이었다. 휴대폰으로 모바일 인터넷 서핑까지 즐기는 시대에 화석같은 아날로그 통신인 전보가 통할 리 없었다.

실제로 전신서비스 종료 한달 전인 집계된 2005년 한해 전신서비스 건수는 2만에 불과했다. 사업을 접어야 할 만한 심각한 실적이었다. 과거의 통계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29년에는 2천만건의 서비스가 이뤄졌었다.

경쟁서비스인 전화 통화료 인하 움직임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 장거리전화 요금은 (거의 전부는 아니라 해도) 충분히 값싸게 매겨져 서서히 전보 수요를 대체하고 있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웨스턴 유니언의 모회사인 퍼스트데이터는 전보서비스 중단과 함께 이 회사의 연말 분사를 발표했다. 어떤 생존의 비밀이 숨어있었던 것일까?

웨스턴유니언은 “전신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은 우리 회사가 금융서비스회사로의 전환을 완료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비결은 웨스턴유니언이 1871년부터 시작한 송금, 즉 전신환 사업으로의 성공적 체질 개선에 있었다.

관련기사

불법이민 노동자 고향을 포함, 200여개국 27만개 지역에 2억7천500만회 이상의 송금을 위해 사용되는 전신환서비스는 원금의 6%를 수수료로 쏠쏠한 수익을 과시했다. 이 해 웨스턴유니언은 매출 40억달러, 이익 11억2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전보시대의 종언을 고했지만 이제는 상업용 위성, 대륙 횡단 극초단파 무선전신망, 정보 교환 및 자기식 저장시스템 등을 통해 첨단 통신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꺼져가는 아날로그 통신기업의 불씨를 살려 준 동력은 세계화에 편승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정상적으로 은행을 사용할 수 없는 불법이민 노동자들이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