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에서 기업 경쟁력 해답 찾는다

[연중기획]② 2010 통신시장 '상생에서 길을 찾다'

일반입력 :2010/01/21 09:27    수정: 2010/01/21 10:58

김효정·송주영 기자

‘상생’. “함께 잘 살아보자”는 이 말은 이제 통신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영 키워드가 돼버렸다. 근래 국내 통신산업의 화두인 융합 트렌드가 상생의 개념을 전방위적으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상생은 대기업-협력사간 공정거래를 위한 개념에서 벗어나 이종산업간 기술 및 서비스 융합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 “함께 먹고 살자”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개념의 확장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동안 국내 산업계에서 상생경영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게 베푸는 '당근'과 같은 인식이 적잖이 형성돼 있었다. 특히 국내 정보통신(IT) 산업의 경우 중소 및 벤처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대기업의 횡포가 종종 지목되기도 했다. 상생은 그저 중소기업을 달래기 위한 생색내기에 치부되던 때도 있었다. 대기업에 있어서도 상생이 기업 경쟁력이나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그릇된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KT, SK텔레콤, 삼성전자 등 국내 IT산업을 이끌어가는 대기업들은 지난 수년간 미래의 경영화두로 상생을 강조해 왔다. 특히 산업 전반에 융합의 바람이 거셌던 지난해에는 모든 기업활동과 제품, 서비스가 상생과 연결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해 이들 대기업은 협력업체를 모아놓고 상생을 다짐했다. 우수협력업체 시상, 경영전략 공유 워크샵 등도 개최했다. 이 같은 사례는 이제 낯선 풍경도 아니다. 최근 통신 관련 서비스와 제품 전략을 살펴보면 ‘상생이 곧 살 길’이라는 인식이 왜 확산되는지 알 수 있다. 유무선 결합상품,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인 IPTV, 스마트폰과 앱스토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ICT 기술을 적용한 이종산업간 융합서비스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개방하고 다양한 계층의 조력자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경영마인드가 자라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생, 이제는 필수 경영요소

이러한 맥락에서 대기업에게 상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 경영요소로 자리잡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통신분야의 상생 움직임 외에도 이미 상생경영은 전 산업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혁신으로 인식해도 과하지 않다. 기업의 상생 관련 보고회도 점차 바뀌는 양상이다. 상생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지난해 11월 연말 분위기를 맞으며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 서울 삼성동에서 중소기업중앙회, 전경련중소기업협력센터,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상생협력 모범사례 설명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하이닉스반도체는 주성엔지니어링 등 협력사와 공동사업을 통해 수입 부품장비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하이닉스는 협력사와의 상생을 통해 무려 6천억원 이상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뒀다. 현대자동차도 협력사인 '모토닉'과의 상생협력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1천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뒀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업종에서는 상생협력을 통해 얻어진 성과를 보고한 사례가 더욱 많다. 상생하지 않고서는 치열한 국가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종 중소기업 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 협력사다. 매출액의 85%는 대기업과 연관됐다.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대기업과 협력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경부 관계자는 이를 바꿔 말하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부 차원에서 상생협력 추진을 권장하고 기술 협력, 구매조건부 대중소 기술개발 등을 추진하는 것도 대기업, 중소기업의 밀접한 연관관계를 고찰했기 때문이다. 지경부의 경우 스마트 프로젝트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컨소시엄을 통한 기술개발엔 가산점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맞은 협력업체 회생 작업을 도운 사례도 단순히 협력사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갈 만큼 위기를 겪은 협력업체와 손잡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인 태산LCD는 키코(KIKO) 가입에 따른 손실로 큰 위기를 겪었었다. 그러나 경영위기를 맞게 된 태산LCD에 삼성전자가 지속적인 물량보장을 해주는 등 회생 발판을 마련해줬다. 태산LCD는 상생협력을 통해 정상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제조공정을 혁신해 수백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창출, 삼성전자로부터 최근 우수협력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협력사가 어려움에 처해 문을 닫게 되면 결국 함께 일하는 대기업도 우수한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결국 ‘협력사 지원을 통한 상생’과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대중소 상생뿐 아니다…대기업간 혹은 동종기업간 상생 사례 속출

지식경제부는 상생의 개념이 바뀌는 추세에 맞춰 올 연말부터는 상생협력 실태조사 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성적 의미를 가지는 상생을 정량화하겠다는 시도다. 한 지경부 관계자는 “실제 중소기업에서 어떤 품질의 제품을 만드느냐가 대기업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좌우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 충분히 튼튼하다면 대기업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을 좀 더 넓혀보면 상생을 통해 윈윈한 사례는 대중소 상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업계에 최근 삼성과 LG가 손을 잡았다. 기존의 대중소 상생이 아닌 대기업간, 그것도 동종업종에서의 상생 사례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AMOLED 핵심장비인 ‘유기증착장비’를 공동 개발키로 했다. AMOLED 핵심장비는 일본으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는데, 이번 양사의 협력으로 2조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 이런 훈훈한 사례들이 가장 많이 등장하게 될 산업분야가 통신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통신업계는 그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사들이 유독 많다. 또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 구축의 영향으로 휴대단말 제조사, 소프트웨어 업계, 시스템구축(SI),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와의 상생 등 다양한 상생협력 사례가 속속 발굴되고 있다.

■ICT 활용한 이종산업간 융합서비스… 새로운 상생 트랜드 창출

특히 ICT를 활용한 이종산업간 융합 서비스로 신규 수익창출의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KT와 SK텔레콤은 이미 금융, 제조, 의료, 관광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KT의 경우, 올해 매출목표를 20조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이를 현실화시켜 줄 핵심 요소로 기업 ICT 시장을 손꼽았다. KT의 전략은 기업의 비용을 절감하고 이익은 최대화한다는 ‘S.M.Art’(Save cost Maximize profit ART). 즉 기업들이 KT의 서비스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솔루션을 만들고 유무선통합(FMC) 등 신성장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KT는 다양한 분야의 업체들과 협력하면서 국내시장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갈 것이다. 관련산업에 새로운 무대 만들어 이들이 성장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이미 지난해부터 ‘산업생산성증대(IPE)’ 전략을 발표하고 올해 중점 사업으로 정했다. IPE 역시 이종산업간 ICT 결합으로 생산성을 증대하자는 것으로,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SK텔레콤 차세대 성장엔진의 핵심이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전통적인 통신 사업을 벗어난 이기종간 융합을 올해 화두로 내세웠다. 그는 “지난해가 SK텔레콤의 중장기 성장 방향성을 마련한 해였다면, 올해는 산업생산성증대(IPE) 전략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극세척도'의 해가 될 것”이라며 “IPE 전략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을 추구하고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LG텔레콤 또한 최근 출범식에서 ‘탈통신’을 외치며 종합 솔루션 사업자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상철 LG텔레콤 부회장은 “제조업체와 SI업체와의 융합으로 통신사업자의 포지션을 종합 솔루션 회사로 만들겠다”며 “카드, 의료, 관광, 교육 등 이종산업간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산업 분야를 만들어 보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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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통신사가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수단이 아닌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겠다는 궁극적인 전략으로 상생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결국 통신업계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로 이러한 융합서비스 경쟁력이 주목 받게 될 것이다.

이렇듯 상생은 모두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지난 디스플레이 업계 협력 체결식에 참석해 몇 년 전만 해도 삼성, LG전자 협력은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협력할 때 협력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한 것이라고 제휴 의미를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