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세계 최초의 라디오방송 "메리 크리스마스"

페선던의 새로운 시도(1906년 12월24일):크리스마스 이브 프로그램

일반입력 :2009/12/24 11:36    수정: 2009/12/25 07:13

이재구 기자

[이재구코너]세계최초의 라디오방송

페선던의 새로운 시도(1906년 12월24일):크리스마스 이브 프로그램

■인류최초로 육성이 무선을 통해 전달되다

1906년 12월 초 캐나다 출신의 한 남자가 대서양을 오가는 배에 “크리스마스이브와 새해 이브에 있을 이벤트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내용의 모스전신부호를 보냈다.

드디어 1906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자 그는 매사추세츠 브랜트 록 기지국에서 가족과 함께 송신기 마이크 앞에 섰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축하한다는 육성을 내보냈다. 이어 원통형 에디슨 축음기로 헨델의 ‘라르고’를 들려 주기 시작했다. 곡이 끝나자 마흔살의 이 남자는 직접 바이올린을 들어 구노의 ‘거룩한 밤(O Holy Night)’을 연주하면서 그 중 한절을 직접 불렀다.

또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뜻에서 성서를 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선 그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구절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에게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말하며 31일 밤 신년인사차 다시 방송으로 인사를 하겠노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 남미와 보스턴을 오가던 미 동북부 대서양 상의 과일회사 선박과 미군함의 무선통신사들은 경악했다. 지금까지 모스신호음만 수신할 뿐이던 마이크로폰에서 갑자기 사람의 노래소리와 음악이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캐나다 퀘벡 출신의 레지널드 페선던이었다. 그의 목소리,연주,음악은 멀리 버지니아 주 노퍽에서 더 멀리는 320km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 이날 일들은 인류 최초의 무선을 이용한 공개 방송으로서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고 있다.

■마르코니, 불꽃방전으로 무선을 이끌다

전선을 이용하지 않고 전신메시지를 보내는 무선전신의 가능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87년의 일이었다. 36살로 요절한 함부르크 출신의 물리학자 헤르츠가 전자기파(전파)를 발생시켜 그 존재를 확인했다.

헤르츠의 발견에 대해 아일랜드의 수학자 조지 피츠 제럴드는 “주피터에게서 천둥과 번개를 강탈했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헤르츠는 전기를 담는 이른 바 ‘라이덴’병으로 충전한 두 개의 금속공 사이에 전기를 흘려 불꽃을 만들었고 이것이 전파를 발생시켰다. 불꽃간격의 크기가 파장의 길이를 결정하고 있었다.

불꽃 방전에 의해 발생한 전파는 이후 마르코니에 의해 모스부호송신의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마르코니가 만든 무선송신기는 전류를 공급할 전지와 충전코일, 그리고 둘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기도록 고정된 놋쇠 공 두 개가 전부였다.

모스(Morse) 키를 누르면 콘덴서에 축적된 고압전류가 흘렀고 전기는 방전봉 사이에서 청황색 불꽃을 일으키며 전자기파를 발생시켰다.

마르코니는 아메리카요트컵 소식 전송, 영불해협통신 성공, 대서양무선통신 등을 실현해 내면서 무선통신시대를 리드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유럽의 마르코니라는 젊은 발명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캐나다의 발명가 페선던에게 기상청 프로젝트를 맡기는 등 북미 출신의 인물이 미국에서 무선산업을 개척해 주길 바랬다.

■ “눈이오고 있다면 전보를 보내 주시오“

마르코니의 불꽃송신기와 코히러 수신기는 수백마일 떨어진 기지국들을 연결하면서 꽤 잘나가고 있었다.

페선던으로서는 무선파가 먼거리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마르코니의 성과를 새삼 재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마르코니의 불꽃방전장치가 이미 제역할을 다했고 결정적인 흠이 있다고 느꼈다.

마르코니가 모스부호를 더 이상 빠른 속도로 보낼 수 없을 것이며, 언어를 송수신할 가능성도 없다고 보았다.

페선던은 대안으로 교류발전기를 발신기로 이용해 1초 동안에 10만회전이라는 맹렬한 회전수까지 끌어올림으로써 교류주파를 정상전파로 만들어 내려 했다. 불꽃방전 방식에서는 전파가 급속히 줄어들어 모스신호전송이 가능한 대신 음성전송을 할 수 없는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는 결국 금속판이 액체에 잠겨있는 새로운 형태의 수신기인 버레터를 고안해 냈다. 이를 통해 모스부호를 더욱 빠른 속도로 수신할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티센씨, 거기에 눈이 오고 있습니까? 만일 눈이 오고 있다면 내게 전보를 보내 주시오.”

1900년 12월 23일. 페선던은 드디어 고속송신기와 버레터를 이용해 자기 조수 한 사람에게 구두로 메시지를 송신하는데 성공했다. 메릴랜드에서 1.6km 떨어진 곳에서였다.

언어를 송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달에 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말한 친구 에디슨의 말을 뒤집는 순간이기도 했다.

라디오방송의 선구자 페선던과 RCA

알 수 없는 공기 중의 매질인 에테르에 의해 전달되는 전파의 성질은 아직까지 충분히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1912년 타이타닉호의 비극이 발생할 즈음 사람들은 전파의 성질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무선신호 가운데는 대기 상층부에서 반사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전파를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페선던의 성과가 그대로 라디오방송으로 발전하려면 좀더 시간이 지나야 했다.

마르코니가 유선전신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무선전신을 생각한 것처럼 페선던도 무선전화를 유선전화의 보완수단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진공관 증폭기를 개발한 미국의 리 드 포레스트가 나섰다. 그는 1907년 뉴욕에서, 그리고 파리 에펠탑에서 선구적인 라디오 방송실험을 지속했다. 전파는 파리 남쪽으로 550마일 떨어진 마르세이유까지 갔다.

1920년대 중반. 드디어 페선던과 포레스트의 선구적 노력과 실험은 빛을 보게 된다. 1925년 미국 전역에 설치된 방송시설에 힘입어 수백개 기업들이 라디오수신기를 생산하면서 라디오방송 대중화시대가 열린다. 1926년 라디오수신세트 시장은 RCA 등을 중심으로 평정되고 1934년에는 18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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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A에 흡수된 페선던의 수많은 무선통신 관련 특허는 이후 40여년간 미국 라디오 및 TV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는 RCA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페선던은 오늘날 세가지 업적만으로도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다. 그의 유산은 ▲최초의 라디오에 의한 음성 전송(1900) ▲최초의 양방향 대서양 무선전송(1906) ▲최초의 라디오에 의한 음악 전송(1906)와 수백개의 특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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