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인류최초의 반도체 트랜지스터 발명

일반입력 :2009/12/17 08:21    수정: 2010/01/11 00:17

이재구 기자

[이재구코너]최초의 반도체 발명

벨랩 3총사의 개가(1947년 12월 23일): 진공관을 대체하다.

■“진공관을 사용하지 않고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레이더,라디오,TV,전자교환기 등에 사용되던 진공관은 유리관에 금속물질을 입혀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 큰 부피와 엄청난 전기소비가 부담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전구처럼 자주 꺼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최대의 통신회사 AT&T가 간절히 원한 것은 깨지지 않고 오래가는 고체 반도체였다.

AT&T는 벨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고체물질을 이용하면 전화교환기의 잦은 통화단절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이에 가장 근접한 아이디어를 간직한 학자가 바로 윌리엄 쇼클리였다.

“이것이 떠올랐다. 진공관을 사용하지 않고 반도체를 사용해 증폭기를 만드는 것이 원리상 가능하다“

1939년 12월 29일 그는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실험노트에 써내려 갔다.

그리고 이 목표는 그로부터 8년 후 뉴욕 머레이 힐에 있는 벨연구소에서 실현된다.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도체와 부도체의 꼭 중간적 성격을 갖는 반도체를 구성하는 원자구조를 가진 게르마늄과 실리콘이란 물질을 알고 있었다.

벨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용융점이 낮아 다루기 쉬운 게르마늄(Ge)을 선택했다.

여기에 불순물을 섞어 최외각 전자의 배열을 바꾸면 말 그대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도체에 양극, 또는 음극 전류를 걸면 물질속의 전류흐름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반도체 전도율이 변환되면서 벨랩 3총사는 결국 증폭기를 개발하기 에 이른다.

■현대전자문명의 실마리를 풀다

“유레카(Eureka!)

1947년 12월16일 뉴욕 소재 벨연구소 실험실에 남아있던 월터 브래튼이 기쁨에 겨워 외쳤다.

그는 왜 왕의 금관이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을 알아내고 기뻐서 알몸으로 목욕탕을 뛰쳐나간 아르키메데스처럼 “나는 찾아냈다”고 소리쳤을까?

브래튼은 그것이 진공관을 기반으로 한 통신방송의 수신,증폭의 산업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혁신적 기술이란 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전파를 잡아내 이를 골라내고 증폭시켜 라디오세트의 소리가 나오게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진공관이 유일했다. 하지만 41년 만에 이것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이날 벨연구소 실험실에는 벨랩 3총사로 불리는 윌리엄 쇼클리, 월터 브래튼, 존 바딘 세사람이 함께 모였다. 그들은 트랜지스터의 증폭기능을 재확인했다.

그 고체는 지금까지 유리로 만든 진공관이 교류를 직류로 만들고, 전파를 걸려내 수신하고, 그 수신된 전파를 증폭해 소리나 영상으로 전환하던 기능을 대신할 터였다.

이로써 만물을 고성하는 공통단위인 전자는 진공관대신 트랜지스터로 갈아타고 전자제품 속으로 들어오게 됐다.

사실 백열전구 안에서 전자가 이동해 전구가 까맣게 되는 이른바 '에디슨 효과'의 발견에서 힌트를 얻은 진공관의 발명은 현대 전자산업의 첫단추를 끼운 발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불편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진공관의 모든 단점을 극복했고 너무나 편리했다.

이를 세상에 증명하기 이전에 먼저 회사내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게르마늄에서 시작됐다

일주일 후.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두고 벨 연구소는 부산한 모습이었다.

벨연구소에서 임시로 만든 트랜지스터에 마이크와헤드셋이 연결되었다.

그것은 게르마늄과 배터리 삼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고정장치, 금박지조각, 그리고 서류정리용 클립을 펴서 만든 스프링이 뒤엉킨 작고 볼품없는 물건이었다.

브래튼이 두 개의 전극을 게르마늄덩어리에 갖다대면서 마이크에 대고 말을 했다.

그의 목소리가 증폭되면서 헤드셋 속에서 울려퍼졌다.

벨연구소 중역들이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헤드셋으로 전달된 소리를 들었다. 출력된 소리가 입력된 소리보다 100배는 컸다.

드디어 이들도 벨랩 3총사처럼 지금까지 사용된 진공관이 아닌 반도체에 의해 증폭된 소리를 듣는 희열을 맛보았다.

이날 이들이 헤드셋에서 들은 소리는 에디슨효과에서 시작된 진공관 문명이 고체인 반도체 문명으로 세대교체를 이루는 소리였다.

반도체는 진공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발명품으로 소개되긴 했지만 도무지 그속을 알 수 없는 금속덩어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고체반도체 내부에서 전자가 이동하고 그 결과 증폭이 이뤄졌음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벨연구소의 3총사는 현대 정보혁명을 가져온 주인공이자 수천년간 인류가 지향해 온 연금술을 실현한 선구자로 영원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지구촌 IT 산업계의 황제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가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과거”라고 말했던 바로 그 순간이기도 했다.

■ '42살 먹은 유아'를 잠깨운 행사

1948년 6월30일. 벨연구소 자체 시연으로 반도체의 성능을 증명해 보인 지도 어느 새 6개월이나 지났다. 벨연구소는 뉴욕에서 반도체 발명에 대한 공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들의 ‘획기적 발명품’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것을 트랜지스터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항장치, 즉 반도체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전류가 입력단자에서 출력단자까지 이르는 동안 이 작은 부품조각안에서 증폭됩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진공상태나 필라멘트 혹은 유리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트랜지스터는 오직 차가운 고체물질로만 이뤄져 있습니다.”

기자들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사람은 벨연구소의 랄프 브라운 소장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 세기의 발명에 대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라디오 뉴스 란에 CBS디오방송국 여름개편기사를 싣고 그 아래 짤막하게 트랜지스터 개발소식을 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공관의 발명자 드 포레스트 박사 만큼은 당시 이 발표회의의 가치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벨연구소에“‘진공관 검파기라는 42살 먹은 유아를 잠에서깨우는 행사‘에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게 됐음을 진정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적은 초청장 회신을 보냈다.

‘42살 먹은 유아’라는 것은 물론 리 드포레스트박사 자신이 1906년 발표한 진공관 증폭기 오디온(Audion)을 말하는 것이었다.

1848년 1월 24일 캘리포니아 새클라멘토 강 근처 스위스 출신의 존 서터 장군의 목제소에서 자그마치 22캐럿의 황금덩어리가 발견된 지 꼭 100년째 되는 해였다.

관련기사

이 발명으로 벨연구소의 3총사는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들은 이후 소련의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발사(1957년 10월4일)로 위축돼 있던 미국의 과학계로부터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이렇게 발표된 반도체는 현대의 연금술이자 이후 전세계의 산업을 바꾸고 이어 정보산업혁명을 가져오는 진정한 전자산업혁명의 신호탄이 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