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마트폰 시대, 씁쓸한 모바일UX

일반입력 :2009/09/02 17:53

옥상훈

필자가 어렸을 때 시외전화를 걸려면 교환원에게 요청하고서 기다리면 연결전화가 와서 시골의 할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 시절만 해도 전화는 집 또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휴대폰은 시내외 통화는 기본이고 국제전화, 문자메시지, DMB, 카메라, 캠코더, MP3플레이어, 전자사전, 무선인터넷, 폰뱅킹, 모바일 결제 등 다양한 모바일 UX(사용자 경험)를 제공한다.

이렇게 거치면서 국내 휴대폰은 매우 그럴싸해 보이지만 껍질 속에 들어가 있는 내용물을 까보면 그리 먹을 만한 것이 없다.

마치 최신 PC에 운영체제만 깔려 있어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지뢰찾기와 카드놀이 정도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휴대폰이 전화만 잘 걸리면 된다고 생각하기에는 기술의 진화속도가 더 빠른 세상이다. 하지만 요금은 참으로 빠르게 진화하는 것 같다.

스마트한 요금과 스마트하지 않은 폰

한국소비자원 자료에 따르면 15개국 중 한국의 이동통신사 요금 가장 비싼 것으로 나왔다. 더군다나 11초만 사용해도 20초 요금을 부과하여 9초치 요금을 거저먹는 스마트한 요금제를 쓴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무선 인터넷 요금은 더욱 스마트해진 정액제와 통합요금제로 사용자를 유혹하고 있다.

멍청한 휴대폰은 '확인'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무선 인터넷 접속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이미 영리한 사용자들은 무선 인터넷을 쓰러 들어갔다가 통화료+정보이용료+데이터이용료에 삼중으로 데인 이후로 무선 인터넷 버튼을 잠궈 놓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사용자는 폰이 아무리 좋아도 전화기로만 쓸 수 밖에 없다.

유저는 HW가 아니라 SW를 터치한다

최근 스펙만 따지면 아이폰 이상의 터치폰도 있긴 하지만 모바일 UX측면에서 명심할 것이 있다. 사용자는 HW를 터치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다양한 SW(애플리케이션 또는 모바일 컨텐츠)를 터치한다. 국내 터치폰에도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위젯, 게임 등)들이 들어가 있지만 문제는 다양성이다.

국내폰에 적용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은 공장에서 나오는 그대로이거나 해당 이통사 홈페이지에서 몇 개 다운로드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이폰의 경우 6만여 가지의 다양한 유무료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 마치 시골의 조그만 도서관과 없는 게 없는 세계적 규모의 도서관처럼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모여있다.

모바일 플랫폼 산업혁명

18세기 산업혁명이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산업혁명의 시대라 하겠다. 하지만 기계적인 '대량' 생산이 아니라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만들어내는 소비자의 '다양성' 욕구 충족이란 점이 다르다. 여기에 '모바일'이라는 환경이 주는 '이동성'과 '연결성'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소비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의 성공적인 모델은 단연코 애플의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전분기에 비해 6배 이상 많은 520만대가 팔렸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모든 단말기 기종을 합쳐 5,200만대라는 것에 비하면 경이적인 숫자다. 아이폰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앱스토어'라는 곳에 모이고 아이폰 유저들은 이곳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앱스토어 등록을 위해 매주 8500개의 새로운 애플리케이션들이 심사를 받고 있으며, 2008년 7월에 오픈 한 이래 6만여 가지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등록되어 있으며 올 연말은 10만개로 예상한다. 등록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20만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사용자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수는 10억이 넘었다. 이러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만들어내는 시장 규모는 무려 연간 3조원에 이른다.

씁쓸한 위치정보 융합 서비스

모바일 비즈니스의 핵심은 '이동성'과 '연결성'을 이용한 서비스다. 이동성은 단말기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이용하여 그 사람 위치 또는 주변 지리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연결성은 물리적 네트웍(WiFi 또는 무선인터넷)을 통해 논리적 네트웍(SNS같은 인적 네트웍)에 연결되는 것이다.

제자리에 가만 앉아서 혼자 주사위나 굴려대는 애플리케이션과 이동 중에 주변의 맛집을 추천해주고, 주소록에 등록된 주변 친구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중 어느 것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그런 어플리케이션도 없는데다 한국의 모바일 환경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여러 가지 쇄국적 장애물에 의해 막혀있다. 그 덕에 위치정보 융합 서비스가 일상화된 아이폰의 경우 출시된 지가 몇 달이 지났는데도 한국출시는 다음 달로 계속 미뤄진다는 루머만 풍성한 상황이다.

국내폰도 위치정보 융합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속히 쇄국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는데 요금제만 진화하고 있다. 좁은 논두렁길 위에 아스팔트를 깐다고 해서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 든다.

아이폰이 들어와야 하는 3가지 이유

필자는 애플을 신봉하는 유저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폰'은 국내 무선 인터넷 비즈니스와 글로벌 경쟁력 관점에서 국내에 꼭 도입되어야 하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1) 아이폰보다 더 나은 폰을 만들려면 일단 사용해봐야 한다. 

요리사가 만들려는 음식의 맛을 모르고 요리를 할 수 없듯이 아이폰에서 6만여 가지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체험하는 것은 세계 음식이 모인 부페에서 맛난 음식을 고르는 맛일 것이다. SW뿐만 아니라 HW적인 아이폰의 뛰어난 터치감은 다른 폰이 감히 흉내낼 수 없기에 그 보다 더 좋은 터치감을 가진 폰이 나오기 위해서는 개발자든 이용자가 써보고 많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2) 아이폰의 앱스토어는 글로벌 모바일 마켓 진출의 교두보다

요즘 골프를 보면 한국인 남자, 여자 선수들이 국제 대회를 휩쓸고 있다. 국내에 골프장이 없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국내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년간 3조원에 달하는 시장을 재패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아이폰 사용자 저변이 마련되어야 한다.

3) 스마트폰과 무선 인터넷 비즈니스 활성화

해외의 경우 스마트폰을 이용 무선 인터넷 접속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선두가 애 플의 아이폰이다. 아이폰이 들어오면 국내 무선 인터넷 비즈니스를 키우는 씨앗이 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단말기부터 어플리케이션, 컨텐츠, 무선 인터넷 요금 등 서로 얽혀 있는 국내 무선 인터넷 비즈니스 문제를 한 올씩 풀어 나가야 한다.

국내 제조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육참골단의 무한경쟁정신

아이폰을 도입하면 당장 단말기 제조사가 아이폰 수요만큼 매출이 감소되는 것이 첫 번째 우려다. 하지만 해외 단말기 제품들도 버젓이 국내 제품과 경쟁하고 있다. 그 누구도 해외 제품이 국내에서 팔리는 있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소비자는 국내외 제품을 따지지 않고 좋은 제품만을 선택할 뿐이다.

설령 아이폰이 나은 점이 있더라도 경쟁을 피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승부하면 되는 것이다.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도 그랬고 텔레비전도 그랬듯이 해외의 좋은 제품은 들여와 충분히 장점을 경험해봄으로써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저력이 있지 않은가? 살을 내어주고 뼈를 잘라가는 육참골단의 무한경쟁정신이 필요하다.

국내 이통사에게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 플랫폼 비즈니스

이통사는 데이터 요금제가 아니라 다양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컨텐츠 제공을 통한 무선 인터넷 비즈니스 활성화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이통사가 독자 구축하려는 모바일 플랫폼 서비스가 아이폰의 앱스토어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우수한 컨텐츠 제공자다.

우수한 컨텐츠 제공자는 변방의 운동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대회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아이폰 이용자와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저변이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스마트폰 비즈니스를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삽질보다는 스마트폰과 무선인터넷 비즈니스 활성화, 글로벌 모바일 마켓 진출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찾아보자.

[필자소개]

97년에  한양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자바개발자로 IT 무림에 입문한 12년 차 IT 맨으로, 자바크래프트닷넷, 자바스터디 운영자로 활동했으며 한국 자바개발자 협의회 (JCO, JavaCommunity.Org)의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연합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으며, 매크로미디어 컨설턴트를 거쳐 한국어도비 시스템즈에서 RIA 아키텍트를 맡았었다. 현재 ‘okgosu.tistory.com’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트위터 유저 아이디는 @okgosu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