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범용과 특화, 스마트폰 삼국지의 독해법

전문가 칼럼입력 :2009/08/06 09:15

김국현

엑스페리아(XPERIA)를 산지 3개월이 지났다. 휴대에 용이한 초소형 키보드 단말의 기린아로 2008년 초부터 기다려온 제품. 일희일비 속에 쓰다 보니 지금은 일상 그 자체. 개인 맞춤 최적화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를 키우는데 보통 3개월은 걸리기 마련, 이 스마트폰은 지금 내게는 만렙이다.

일각에서는 윈도우 모바일(Windows Mobile)은 이제 늦었다고 비웃으며 모든 초점을 아이폰(iPhone)에 놓고 있지만 여기서 잠깐. 안드로이드(Android)까지 포함한 스마트폰 3강의 본색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윈도우 모바일은 그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대표적 범용(汎用, General Purpose) 플랫폼이다. PC를 떠올려 보면 좋다. PC는 학생에게도 사무직에게도 공장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전광판에서도 공평하게 유용하다.

왜냐하면 마음대로 주물러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 낼 ‘자유도’가 높고, 또 그 자유도에 기반한 파생 비즈니스를 누구의 허락 없이도 무한대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바로 무엇이든 만들어 바로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되니 거리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무한대의 자유는 반대급부도 있게 마련. 사용자가 상품을 손에 쥐는 바로 그 순간의 최종 체험을 누가 보증할지 애매해진다. OS를 만든 이, 단말을 만든 이, 망을 다루는 이, 유통하는 이가 뒤엉켜 내놓은 우연의 산물은 대개의 경우 최적화가 되어 있지 않거나, 어설픈 유저 타게팅에 맞춰져 있다. 사공이 많은 배에 21세기 컨슈머 제품의 상징이라 할 ‘폰’이 실린 셈. 범용 플랫폼의 우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내가 경험한 엑스페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출하시의 초기 상태는 안타깝게도 이 단말이 지닌 잠재력의 반의 반의 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라고 나는 직감했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다행히 나는 오랜 윈도우 CE(윈도우 모바일을 포함한 임베디드 코어) 사용자다.

처음 접했다면 아마 내려 놨을 수도 있다.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듯 사용자 스스로 단말을 키워 나가겠다는 각오랄까 도전의식이 없으면 좀처럼 친해지기 쉽지 않은 것이 윈도우 모바일과 같은 범용 단말임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3개월 전만 해도 그렇게 과묵하던 엑스페리아는 지금 내게는 사상최강의 머신이 되어 있다. 이러한 격차는 범용 단말의 장점이자 한계다.

반면 아이폰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전제군주적 결정권자의 혜안에 의해 설정한 후 이를 철두철미하게 집행한다. 대부분의 경우의 평균적 사용자는 이 과녁안에 놓일 것이다. 그 덕에 일상적 사용자는 대략 만족하지만, 특정 욕구를 지닌 사용자는 그 생래적 한계에 좌절한다. 예를 들자면 QWERTY키보드가 없으면 안 된다거나, 멀티태스킹으로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사용자층에게 그 한계는 명료하다. 그러나 선택지는 군주가 골라낸 오직 하나뿐. 맥OS에 태블릿 PC가 그동안 없었던 이유와도 비슷하다.

아이폰은 "jailbreak(아이폰 해킹)"를 해도 파워유저와 일반유저의 폰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윈도우 모바일은 천양지차다. 누구의 손길이 닿았느냐에 따라 도저히 같은 단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제품은 변모해 간다. 여기에 수십, 수백종의 단말이라는 선택지까지 포괄한다면 그 경우의 수는 무한대로 늘어 난다.

반면 아이폰은 철저하게 기획된 통일된 사용성을 제공한다. 앱스토어의 그 많은 애플리케이션도 적어도 사용성에 의해서는 기획된 룰을 꼭 지켜야 한다. 시장의 자발적 에반젤리스트들은 군주의 기사단이 되어 군주의 의도를 설파하고, 나아가 군주가 의도하지 않은 씀씀이를 보이는 이들은 가차없이 왕국으로부터 거부된다. 예를 들면 구글 보이스(Google Voice) 등도 최근 앱스토어에 의해 등록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대개의 경우 큰 문제없이 수요는 수용되며 그럭저럭 만족한다.

앱스토어는 분명 선구적이다. 그러나 개인과 소상공인에게는 엘도라도일지 몰라도 플랫폼을 확장해 자신 나름의 꿈을 펼쳐 보려는 진지한 기업들에게는 사방이 닫힌 놀이 공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플래시나 실버라이트조차 손을 잡을 수 없었을만큼 철저히 닫혀 있다.

닫히면 어떤가, 그래도 좋았다. 스마트폰은 유비쿼터스로 통칭되는 미래 기술의 첨병이기 이전에, 소비재 컨슈머 가전의 상징이다. 즉 타겟 마켓을 향한 특화 전략이 취해질 수 밖에 없는 시장이었기에, 아이폰은 괜찮았다. 동맹을 꾸리기 위해 자신을 여는 대신, 샘플링된 대중의 기호에 철저하게 특화된 공원을 만들고 그 안의 물관리를 하는 편이 빨랐다. 게다가 아이폰은 기업 애플이 순항하기 위한 충분한 규모의 경제를 이미 확보했으므로 굳이 개방을 무리하게 감행할 이유가 없다.

반면 윈도우 모바일 및 안드로이드 안에는 기본적으로 절대 군주가 없다. 대신 느슨한 연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연대 안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 LG, 삼성, HTC 등의 성장세는 그 기대감의 믿는 구석이다. 그러나 이 느슨한 연대에게는 과거 윈텔의 쌍두마차척 리더십과 추진력이 그립다.

 

앞으로의 볼거리는, 꼼꼼한 솔로 애플의 치밀한 최적화일까, 느슨한 연합군의 우발적 최적화일까, 최적 특화품을 누가 잘 이루어낼 것인가의 경합에 있을 것이다. 우발적 최적화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가 많은 괴물을 길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딘가 엉성하고 누구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초기 상태로 제품은 나오기 십상이다. 물론 오히려 지금까지는 이러한 해커빌리티(Hackability)에 재야의 조련사들은 흥분하곤 했다. 스마트폰 동호회가 북적이며 셋팅 놀이를 즐기는 것은 바로 그 잔재미 덕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렇게 덕후나 기크가 될 수는 없는 일. 일반적 사용자는 “이 엑스페리아를 누가 기가 막히게 설정해 주면 좋으련만,”하고 느끼기도 전에, 일반인을 위해 특화된 제품과 비교하고 바로 실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평균치에 특화된 기성품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특화된 수제품은 궁극적으로는 비교될 수 없다. 범용 제품의 잠재력은 여기에 있다. 윈도우 모바일을 채택한 동일 제품의 만족도가 극과 극을 달리는 사정이다.

범용 제품의 잠재력. 앞으로 어쩌면 셋팅 그 자체도 비즈니스가 되어 조련사만의 브랜드 특화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Tuned by goodhyun"과 같은 식으로 튜닝을 해 주는 샵이 생길지도 모른다. 동시에 제조사 자체가 하부구조에만 범용 플랫폼을 쓴 채 사용성은 완전히 특화한 제품을 내놓을 수도 있다.

즉 윈도우 모바일이지만, 사용자는 전혀 윈도우 모바일임을 느끼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도록. 실제로 소니에릭슨의 패널, HTC의 터치플로, 삼성의 터치위즈는 모두 그 과정의 시도다. 그 시도가 아이폰의 절대군주적 장인정신에 범접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시도가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렇게 돌연변이를 허락하는 자유도가 범용 플랫폼의 매력이다.

따라서 윈도우 모바일이 장기적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은, 결국 성곽 안에서 안분지족중인 아이폰이 아니라, 마찬가지의 범용성을 지닌 안드로이드일지도 모른다. 윈도우 모바일은 벌써 수년째 CE 5의 커널에 머무른 채, 차기 버전으로의 이행을 게을리 한 실수를 했다.

(신형 윈도우 모바일 6.5도 커널은 CE OS 5.2) 윈도우 모바일 7이 적시에 나오지 못한 빈틈을 안드로이드는 과연 얼마나 잘 파고들 수 있을까? 지금 PMP와 네비게이션을 석권한 CE 커널의 범용성은 얼마나 더 유비쿼터스해질 수 있을까, 차세대 윈도우 모바일은 예상대로 역습을 감행할 수 있을까?

윈도우7/윈도우 모바일 7과 안드로이드/크롬OS의 범용성을 이용한 파트너 섭외전이야 말로 앞으로의 볼거리다. 지금은 아이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지만, 군주의 혜안보다는 집단의 지혜 쪽이 돌연변이적 이노베이션을 기대할 수 있는 법.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부분은, 누가 과연 유비쿼터스의 모든 가능성과 기회와 미래를 포섭할 범용 플랫폼이 될 수 있을 지의 문제다. 3강 모두 어떤 패를 낼 것인지 심사숙고중이겠지만, 그들의 패는 의외로 이미 정해져 있다.범용과 특화, 그 패를 읽는 방법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