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의 연인에서 ★이 된 남자

[이택칼럼]노무현은 IT와 인터넷이 사랑한 '연인' 이었다.

일반입력 :2009/05/28 23:47    수정: 2009/05/29 09:56

이택 기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다. 유서 형식의 마지막 육필이 워드프로세서를 통해 남겨졌다. 환갑을 훌쩍 넘긴 정치인 노무현의 마지막 새벽 이었다. 

이례적이다. 한국사회 최후의 IT 취약계층은 정치인들이다. 본능적으로 디지털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나누고 함께하는 디지털의 속성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집단이다. 

결코 나눌 수 없는 '권력'을 쫒는 무리들에게 디지털은 근본 개념부터 제어하고 제압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노무현은 그 정점의 권력자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마지막 모습은 더욱 이례적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불행했다. 불꽃 같은 삶이었지만 비극적 최후를 선택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영원한 도전자요, 비주류였다. 도전은 늘 정면돌파 였고 당당했다. 원칙을 앞세우고 부조리한 현실세계의 전복을 꿈꾸었다.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마침내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대통령에 올랐다. 

논쟁의 중심에서 몸으로 부닥쳤던 비주류 정치인은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는 세력교체를 겨냥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 분단을 거치면서 고착화된 주류 기득권 세력에게 맹공을 펼쳤다. 권위로 포장된 모든 불합리한 권력의 해체를 시도했다. 

탄핵이라는 당연한 반격에 직면했지만 국민은 다시 그를 지지했다. 그래도 결론은 실패였다. 혁명 보다 어려운 개혁이다. 훨씬 정교하고 치밀한 프로세스가 준비되었어야 했다. 추종세력들은 좀 더 겸손하고 똑똑했어야 했다. 도적적 자산만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21세기 정치에는 '유치찬란'에 다름 아니다. 

강고한 기득권 주류세력의 벽을 넘기에는 함량미달의 추종자들이 너무 돋보였다. 덕분에 노무현의 비전과 정책은 실종됐고 임기내내 자신과 핵심지지자들의 말실수에 시간 을 허비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에서 "배 째달라는 말이죠"로 증폭되고 "옳은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법"에 이르러서는 지도층의 품격이 사라졌다.

덕분에 아쉬움과 회한의 연속이었다. 편가르기와 '악질적 진군'만으로 얻어낼 것은 없었다. 자신들의 미숙성과 아마추어리즘만 강조될 뿐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몰입된 경제는 양극화 심화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그토록 바로잡아 보려던 '투기성 땅부자'들의 자산만 되려 늘려 준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뀌자 화려하게 되살아 났다. '강부자'의 이름으로 거칠 것 없는 제 세상을 만났다.

국민의 힘으로 지켜줄 것이기에 어떤 정권도 못 고칠 것이라는 부동산 정책이 하루아침에 원위치 됐다. 어떤 논리와 이론을 들이대도 현실 정치에서는 노무현의 실패였다. 지난번 대선이 심판이었다. 

일부 추종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언론 탓, 보수 탓 하지만 국민 우습게 보지 말라. 사상 최대의 조문인파가 역사를 만들고 있는 현장을 보겠지만 오버하지 말라. 노무현의 정책을 기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사람 됨됨이를 기리는 일반인들이 더욱 많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의 정책적 성패와는 별개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착과 애도가 훨씬 진하게 깔려 있다. 그의 일해내는 능력에는 비판적이지만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인정한다. 여기에는 부자 편향주의 정책에 경도된 현 정부에 대한 불만도 반사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인간 노무현'이 이토록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IT적 해석으로 접근하면 '나눔'과 '소통'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획득했지만 그는 늘 국민들과 나누려 했다.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상징적이다. 

IT와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제도언론을 통한 목소리 전달 못지 않게 직접 소통의 길을 걸었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이메일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 공간적 시간적으로 마주했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과 정직한 성품은 2.0 커뮤니케이션 시대 노무현이 가진 또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노무현은 바로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고 만들어나간 사람이다. 그의 가치관과 철학은 IT와 인터넷의 본질에 정확히 일치한다. 기쁨만이 아니고 IT와 인터넷도 나눌 수록 커진다. 거대담론 들먹일 것도 없이 지금은 2.0 시대이다. 

그에 대한 추모 열기는 시대상의 반영이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도 더 이상 구조적인 폐쇄성을 거부한다. 나눔과 소통을 외면하며 오프라인의 개방성을 상징하는 광장(서울광장) 조차 사용허가 내는데 머뭇거리는옹졸한 살아있는 권력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은 IT와 인터넷이 사랑한 '연인' 이었다. 이성적 정서적 동질감은 '신화'를 잉태했고 출산했다. 오늘 그 연인은 IT와 인터넷의 꿈(★)이 되어 하늘의 별(★)이 된다. 

오늘 하루만큼은 정치적 소신 다르고, 철학적 견해가 엇갈려 막말하는 수구꼴통과 개혁 장사치들도 입 다물고 고인을 추모하자. IT와 인터넷이 보내는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 을 소리 죽여 가슴으로 읊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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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자 /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중략)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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