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2]차세대 먹거리 'SW'…③"강력한 SW지원책으로 IT강국 2막 열어야"

일반입력 :2009/05/20 19:45    수정: 2009/05/25 14:38

송주영 기자

지난 2007년 기준으로 국내 SW기업의 수는 6,341개에 달했다. 산업 종사자수는 약 12만8,000명 수준이다. 숫자만 놓고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이 영세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는 R&D, 마케팅, 해외진출 역량 부족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매출액 100억원을 넘는 SW기업도 몇개되지 않는다. 대기업인 IT서비스 업체들도 아직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해외로 나가면 거의 무명에 가깝다.

SW인력 또한 초급기술자 위주의 양적 공급 위주로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낙후된 SW개발 프로세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SW업체간 폭력적인 갑을관계로 인해 산업 경쟁력은 점점 저하되고 있다. 한국SW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SW산업의 생산증가율은 2005년 16.8%에서 2006년 8.8%, 2007년에는 4.4%로 점점 둔화되는 추세다.

미래는 더욱 우울하다. 창업 열기가 식다보니 새로운 피가 수혈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IT서비스 및 SW생태계는 언제부터인가 '고인물'이 되었다. '고인물'이 어떻게 되는지는 다 아는 사실이다. 우수 인력 유입도 막혔다. 전산을 공부한 학생들이 의학대학원으로 방향을 트는 사례도 부쩍 늘었단다.

그나마 의욕을 가진 개발자들은 속속 대기업과 외국기업으로 옮기고 있다. 벤처는 상대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다. 특히 SW의 경우 3D 업종이란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보니 인력 확보에 비상등이 켜진지 오래다. 관련 업계가 구인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마디로 악순환이고, 총체적 난국이다.

최근에는 비교적 이름이 있던 SW업체들까지도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지난달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이던 핸디소프트는 오리엔탈리소스란 업체에 매각됐다. 핸디소프트는 회사 건물 매각 등 생존을 위해 자구책을 펼쳐왔으나 결국 '회사 매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향후 행보도 안개속이다.

국민기업으로 불리는 한글과컴퓨터도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경제 위기와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가 맞물리면서 중소SW업체들은 점점 '그로기' 상태로 내몰리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략적 가치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진 SW산업이 한국에서 처한 현주소다. SW를 키워야 한다는 함성과 정부 정책은 아직 체감할 수 있는 효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갈길은 그만큼 멀다.

■국내 대표 SW업체, 몇 개나 되나?

결국 큰 틀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 정부 차원의 인력 양성 지원, 제도 개선, SW업체들의 체질개선이 맞물려야 SW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은 아직 구호에 머물고 있다. 안철수 KAIST 교수는 상생만이 해결책인데 아직 상생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중소기업이 중요하다고 하면 대기업을 도태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보는 흑백논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국가 경제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도 둘다 건전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한쪽만 잘되서는 안된다고 거듭 상생을 강조했다.

안 교수의 지적은 SW와 제조업간 융합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주목할만 하다. 융합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이 분위기를 이끌 수 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 기조가 자리잡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융합은 중소SW업체에 그 혜택이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상생이 담보되어야 해외 시장 진출 기회도 늘어난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 개선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 교수는 지금은 기업간 가격을 깎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계약서를 쓴 뒤 부당하게 더 요구했는지, 아니면 계약서없이 말로 했는지 등 계약서 쓴 전후에 발생하는 불법적인 부분들에 대해 대응이 있어야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내 SW업체는 통신이나 IT서비스 업체와 달리 대기업이 없다.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업체는 티맥스소프트 정도다. 대표 기업으로 부를만한 곳도 손에 꼽을 수준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구도가 고착화됐다.그런 만큼, 정부가 산업 육성에 좀더 의욕을 보일 필요가 있다.

관련 업계는 정부가 통신 중심의 IT정책을 펴면서 '성장할 기회'를 잃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몇몇 경제 강국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도와 아일랜드, 이스라엘이 글로벌 SW업체를 육성하는 동안 한국은 'IT강국'이지만 실상은 '통신강국'에 그쳤고 SW강국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 정보통신부 시절에도 30여개의 관련 부서 중 SW관련 부서는 2~3개에 그쳤다. 통신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을 두다보니 SW는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았다. SW육성 정책이 지식경제부로 넘어오면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련 부서는 여전히 적은 편이고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하드웨어에 조단위 지원 정책이 쏟아질때도 SW는 수백억원대 지원에 그치고 있다. 관련 업계에 상대적 박탈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유다.

그런만큼 업계는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SW산업 육성에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IT 균형 발전론이다. SW는 그럴만한 전략적 가치를 지녔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경제 구조에서 지금처럼 외면할 분야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진형 교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며 정부가 SW산업에 갖고 있는 뜨거운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상황이 너무 나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통신 등 IT인프라와 관련된 네트워크 산업 육성이 1막이었다면 1막은 이제 끝이 났다며 SW개발를 중심으로 2막을 열어줘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이 통신 등 인프라에서 콘텐츠로, 다시 컨설팅, 서비스 등으로 순차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정부 IT정책은 통신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다행히 최근 공공부문에서 다양한 제도 등이 보완되고 있지만 개선의 여지는 남아 있다.

■지경부, 분리발주 등 다양한 제도 '쏟아내'

정부는 올해 초 다양한 제도를 내놓으며 SW산업 육성의 의지를 불태웠다. 지식경제부는 SW분리발주 의무화, SW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사업 금액 하한 상향조정, 사업대가 기준, 프로세스 품질인증제 등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섰다.

지경부 김태희 사무관은 올초 SW산업 육성과 관련해 대대적인 개정이 있었다며 하반기에는 새로운 제도를 내놓는 대신, 발표된 새로운 제도에 대한 정착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W 업체들이 가장 환영했던 것은 분리발주. 분리발주는 기존 시스템 통합 발주에서, SW영역만을 따로 떼어 내 발주하도록 한 제도다. 통합 발주를 통해 대형 IT서비스 업체들이 관장했던 마진율을 SW업체가 직접 계약해 챙기도록 한 것이다.

SW 업계도 분리발주에 대해 상당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SW업체 사장은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며 그동안 IT서비스 업체가 SW업체에 낮은 마진을 강요했던 것을 분리발주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 중소기업 프로젝트 참여 금액 하한 상향조정, 사업대가 기준 등은 SW기업보다는 중소 SI업체가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제도들이다.

올해 정부는 더 이상 새로운 제도를 발표하기보다는 최근까지 발표된 제도 정착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소프트웨어진흥원, 소프트웨어산업협회 등과 함께 공공기관 교육, 제도 모니터링 등을 해나갈 예정이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민병수 팀장은 제도 시행은 잘 될 것으로 본다며 하반기가 되면 분리발주 등의 제도 정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은 이를 위해 발주자 교육 프로그램, 분리발주 컨설팅 등을 준비하고 있다. 민 팀장은 제도 정착에 시간이 좀 필요하겠으나 발주자들도 제도에 대해 인식하고 있고 의지도 있다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은 공공 발주자를 대상으로 이틀 동안의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EA(전사 아키텍처), ISP(중장기정보화전략계획) 작성, 유지보수, 운영관리 등 사업단계별 교육이 포함된다. 5월과 6월은 기획, 7월 이후에는 계약 이후의 사업관리에 대한 교육 내용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분리발주 참 잘 만든 제도지만…

SW 업체는 분리발주에 대해 지금과 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SW업체 육성을 위한 정부 정책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모 업체 사장은 기업들이 IT비용을 절감하면서 프로젝트 규모는 줄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분리발주를 통해 SW업체의 마진폭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또 과거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통합발주 형태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꼬집었다.예를 들면 SW와 관련해 미들웨어, DBMS, 개발툴 등 몇가지 품목을 정해놓고 통합해 발주하는 형태가 있다는 것. 이에 대해 그는 통합분리발주는 생색이고 과거 통합발주와 별 다른 차이가 없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분리발주 등의 단편적인 제도보다는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KAIST 김진형 교수는 정부가 다양한 제도를 내놓고 있지만 이같은 제도로 산업을 육성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쁘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부 제도 하나하나가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너무 나쁘니 해봤자 안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면서 범정부 차원의 시장 확산 정책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또 한쪽에서는 살려볼까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오히려 산업을 죽이는 정책이 나오면 될일도 안된다면서 지식경제부 SW산업 육성 정책과 공공IT시스템 구축 정책을 주도하는 행정안전부간 공조를 적극 주문했다.

정부는 SW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공공IT 부문 예산 축소와 SW지적재산권에 대한 부족한 인지도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최근 어려움을 겪었던 핸디소프트가 주력했던 시장인 그룹웨어의 경우도 정부가 예산을 줄인다는 명목 하에 개발 소유권을 확보, 여러 부서가 돌려 쓰는 형태를 취하면서 오히려 그룹웨어 솔루션 업체를 어려움에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김진형 교수는 SW산업 육성이 행안부 임무가 아니다보니 예산을 줄이는데만 초점을 맞춘 공공IT 정책이 나오고 있다면서 공공IT만이라도 시장을 키울 수 있는 부처간 협력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책이 좀더 디테일을 갖춰야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지금의 IT정책은 예산이 배정되면 대기업만 덕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IT특보는 SW 생태계 마련에 관심 기울여야

소프트웨어 업계는 현재의 산업 정책이 각 부서별로 쪼개져 있어 다양한 부서를 아우르는 청와대 IT특보 신설에 나름 기대를 걸고 있다.

김진형 교수는 IT특보가 다양한 부서를 총괄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며 과거 정통부가 통신산업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SW, 지식산업에 대한 성장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SW 업체 한 관계자도 SW산업이 원활하게 육성되도록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라며 현실을 아는 전문인력이 IT특보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IT서비스 업체가 수금도 제 때 할 수 있어 전문 SW업체가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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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검수가 끝나야 입금이 완료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빠르게 자금회수가 이뤄지면 관련 업계에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란 얘기다.

SW산업 육성은 어렵고도 험한 길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그래야 하드웨어 사업 경쟁력도 키우고 고용 문제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부 차원의 보다 강력한 의지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