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왠지 어색한 IBM의 유비무환

기자수첩입력 :2009/02/02 17:32    수정: 2009/02/03 01:04

황치규 기자

끝을 알 수 없는 세계 경제 위기속에 글로벌 IT업계는 지금 자고나면 감원 소식이다. IBM,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MS), MS, 인텔, SAP 등 거물급 IT업체들이 앞다퉈 대대적인 감원에 나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원을 안한다는 회사 얘기가 오히려 뉴스가 되어버렸다.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에선 감원 뉴스 그만좀 쓰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다소 식상해졌고 멀쩡한 회사들도 감원에 나서도록 충돌질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구경꾼 입장에서 비용절감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경영용어를 명분으로 펼쳐지는 섬뜩한 감원 레이스는 마치 사람 자르는 게임을 보는 것 같다. 게임속에서 감원은 그저 감원일 뿐이다. 고달픈 월급쟁이들의 삶은 제각각일 터인데, 이런 얘기가 파고들 공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반복하지만 감원 뉴스는 다소 진부해졌다. 그렇다고 뉴스 밸류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름 스토리로 꾸미고픈 사례도 있다. '빅블루' IBM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른 회사들이 감원 규모를 미리 공개한 것과 달리 IBM은 비공식적(?)으로 해고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외신들은 직원들이 활동하는 웹사이트를 인용해 IBM의 감원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IBM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감원규모는 계속 커지는 모양새다.

IBM은 지난해 나름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불황이 직격탄으로 날라온 4분기에도 순이익이 12%나 늘었다. IBM은 경기 침체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이는 올해도 선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나아가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발표까지 내놨다. 앞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날린 다른 기업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도 IBM은 비교적 대규모 감원에 들어갔다. 당사자가 입을 열지 않으니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지금까지 많은 업체들을 인수했으니 과잉인력을 정리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다가올 경기 불황에 대비한 사전정지작업일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IBM이 순이익이 늘어난 가운데서도 수천명의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주근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IBM의 감원은 박수칠 일이지만 일자리 창출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미국의 지금 상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틈만 나면 고용을 강조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IBM 경영진들을 만난다면 "살살좀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점은 IBM이 오바마 정부에 IT를 통한 고용 창출을 적극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샘 팔미사노 IBM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전 새정부측에 정부 차원의 IT투자가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브로드밴드, 헬스케어IT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 기술에 정부가 300억달러를 투자할 경우 미국에서 9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IT를 통한 고용창출론을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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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IT투자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조직내 일자리는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팔미사노 회장 말대로 IT투자를 통해 일자리는 늘어날 수도 있다.  팔미사노 회장의 진정성 자체는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고개는 갸우뚱해진다. IBM이 외치는 IT를 통한 고용 창출론과 지금 진행중인 감원 그리고 주주들에 대한 배당으로 이어지는 3차 방정식의 답이 헷갈리는 탓이다. IBM에 묻고 싶지만 IBM이 시원스런 대답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감원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IBM이 정부가 쏟아부을 거액의 공적자금을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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