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2009 전파 개국론

전문가 칼럼입력 :2009/01/07 14:10    수정: 2009/01/07 15:24

김국현

이 경제 난국 속에서도 올해는 '모바일'에게는 뜨거운 한 해가 될 것이다. 모바일은 PC와 웹과 함께 현실 밖 이상계로 뚫어 놓은 필수적 '창'이 될 것임이 증명되는 전환점에 우리는 서 있기 때문이다.

불황 속에서 옴니아가 히트하고 있는 것도, 아이폰 출시에 대한 풍문이 늘 뉴스거리가 되는 것도 모두 그러한 미래 예상을 다 함께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통신 인프라, 전자 제조업, 사용자 행동 패턴 등을 고려해 볼 때 모바일이야 말로 한국이 IT산업 9회 말에 맞게 되는 역전 찬스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이든 가능하게 해 온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보편적 힘을 모바일에서 개화할 차례다.

위피 의무화 폐지가 이루어졌으니 그걸로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 플랫폼 의무화와 같은 희대의 넌센스가 시정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충분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직 모바일 개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필요 조건조차 충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편적 힘이 발휘될 열린 공간으로서의 무선망을 마련하는 일이다.

2008년 한국의 유심 개방은 무용지물을 묘사한 한 편의 촌극이었다. 원래 글로벌한 관점에서 유심락(USIM Lock) 그 자체는 일종의 할부 또는 인센티브 제도의 산물이다. 선도 악도 아니다. 유심락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말기와 계약회선 사이에 일종의 계약을 강제함으로써 보조금을 적용할 수 있게 하여, 유심 프리의 경우에 비해 저렴하게 폰을 살 선택권을 사용자에게 주기 위함이다.

즉 유심 프리 폰으로 제 가격에 살지, 유심 락 폰으로 보조금과 함께 살지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으면 된다. 후에 유심 프리로 하고 싶으면 외국과 같이 비용이나 수수료를 내고 프리로 만들면 된다. 철저한 경제 원리에 의한 제도다.

이를 막무가내로 정책적으로 유심 프리로 하라고 하면, 한국과 같이 보조금에 시장이 장기간 길들여진 국가에서는 사업자는 비용 보전을 위해 우물쭈물 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분명 보조금이 얹혀진 폰으로 가입만 하고 사라지는 '먹튀' 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사업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단말들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사업자 간에 교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방법은 단순했다. IMEI라는 일종의 단말 제조 번호를 망 접속시마다 체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유통시킨 폰이 아니라면, 설령 유심 프리가 된 폰이라도 망에 접속하는 순간 튕겨져 나간다. 유심은 개방되었으나 망은 닫혀 버린 꼴이다. 기발하다.

IMEI는 외국에서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는데, 배터리 삽입부의 스티커에 버젓이 적혀 있고, 또 *#06#을 눌러 확인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박스에도 적혀 있다. 이렇게 사용자의 눈에 띄게 노출하는 이유는 유통과정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포장이 일치함을 확인하게끔 하는 목적과 만약 분실시에 이 번호로 폰을 정지시키기 위함이다.

즉 망사업자간 공조체제로 신고된 폰에 대해서만 망으로의 접속을 차단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IMEI 번호를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자신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폰을 차단하기 위한 값으로 활용되니, IMEI를 알려주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다. 어쨌거나 유심 따위 아무리 개방돼도 사업자가 얼마든지 단말을 통제할 수 있음을 여실히 실력행사로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애초에 왜 이 말 많은 유심은 등장한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사용자의 선택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용자는 보조금을 받고 싶을 수도 있고, 또 일괄 납입을 원할 수도 있다. 폰을 거의 거저 주고 그 비용을 장기 계약으로 묻어 가는 가격 구조는 폰을 아껴 쓰는 이들에게 불리하고 폰을 자주 갈아 타는 이들에게 유리하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사용권'과 관련 있다. 유심을 채택한 3G의 네트워크는 전화 만의 네트워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3G를 누릴 자유는 망사업자가 낙점해주지 않은 곳에서도 향유되어야 한다. 이미 3G 기능이 내장된 노트북 등이 해외에는 판매중이다.

유심카드만 삽입하면 바로 이 노트북이 3G네트워크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고, 또 헤드셋으로 음성 통화도 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의 다양한 전자기기에는 3G 통신 기능이 옵션으로 들어갈 것이다. 망사업자는 예측하기 힘든 미래가 자신의 네트워크에 허락 없이 뛰어 들어 오는 것이 영 불편하다.

필요에 따라 유심을 뽑아서 상황과 필요에 맞는 단말에 삽입하여 그 단말에 네트워크 기능을 부가 하는 활용예가 유심이 약속한 미래다. 개방되어야 할 것은 바로 이 미래였다.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외산 단말을 사용할 수 있는 점은 지극히 현실적인 매력이다. 외신으로만 접하던 상품도 유심 프리 단말이라면 유심을 꼽기만 하면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우 모든 이동통신사가 자신들의 유통망을 통한 단말이 아니라면 네트워크에서 즉시 추방해 버린다.

유심이 의도했던 시장 경제 하에서라면 신규 계약시 유심카드만으로도 개통이 가능해야 한다. 그 유심을 어디에 꼽던 사용자의 자유일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요금제, 예컨대 데이터에 특화된 요금제와 가족 요금제를 두 통신사업자와 계약하고, 하나의 단말로 시간 별로 활용 환경 별로 구분하는 것도 가능해져야 한다.

거꾸로 하나의 계약으로 퇴근 후에는 큐빅이 박힌 패셔너블한 폰을 쓰고, 지하철에서는 웹 전용 대화면 스마트폰을,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시에는 유심을 노트북에 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차량에도 유심 슬롯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내비게이션 및 ECU 등 커뮤니케이션에 절실한 애마를 위해. 이러한 선택권이 허락 없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 유심의 꿈이다.

유심 개방은 사용자의 경제적 선택권과 사용자의 사용권을 의미하는 상징인 것이거늘 한국에서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규제를 제정하거나 혹은 거두어 들일 때, 시장 참여자 및 지배적 사업자가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에 대한 일차적 시뮬레이션조차 하지 않고, 아니 그러한 수고는 굳이 하지 않더라도 초보적 게임 이론만 학습하였어도 예견 가능한 현재 상황을 우리는 현실에서 직접 학습하고 있다.

결국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선택권과 사용권이 반납되어 위태로움을 인지조차 못하는 소비자의 침묵 탓이거늘.

답답한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제 표준에 충실해야 할 3G에서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비표준적 SMS도 큼지막한 걸림돌이다. 예컨대 스마트폰 OS에 기본 탑재된 SMS 기능으로는 문자 수발신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그 이상 증상 또한 국내 사업자 별로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국내의 어떤 프로그래머가 혁신적인 문자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어도 그 기능은 외국에서는 쓸 수 없다. 모바일에 있어서는 웹 시대를 살고 있나 PC 통신 시대를 살고 있나 헷갈릴 지경이다.

E.164 문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모 통신사의 경우 국제 표준의 전화 체제를 받아 주지 않는다. 예컨대 +82-10-3***-****와 같은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면 없는 국번이라고 나온다. +기호를 인지 하지 않는 듯 하다. 그 덕에 VoIP, PC, 모바일을 망라하는 통합 커뮤니케이션(UC, Unified Communication)의 연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3G의 기본 약속이 무시되는 이러한 국지적 폐쇄성은 글로벌한 혁신의 장애물일 뿐이다.

비표준은 근시안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쇄국의 보루로 기능하니 달콤하다. 특히 변화의 와중에서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을 때는 표준화나 개방으로 인한 득실을 파악하기는 힘들기에 자연스럽게 판단 보류를 하게 되는 것이 상례다. 그렇게 닫힌 벽은 잠시나마 현재의 수익 구조를 유보하게 해 주고, 또 다른 사업 모델을 설정할 시간을 벌어 준다.

그러나 2009년 우리는 PC, 웹, 그리고 모바일의 창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대안 세계를 맞이해 갈 것이다. 이 임박한 세계의 규모를 놓고 볼 때 모바일에서 사업자 독자적 생태계를 마련하려 했던 지난날의 수구정책은 임종 직전임을 모두 함께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여기서 게으름을 피운다면, 우리 IT산업 전체에 주어지려 한 큰 기회를 흘려 보낸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인터넷의 시대가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 사업자는 결코 사용자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서비스들은 사업자가 원하는 대로 사용자가 따라 주어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사업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기발한 사용 방법을 역으로 보여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것이 아이디어가 되고, 입소문이 되고, 또 다른 혁신을 부르고, 그 것이 거대한 자장을 형성하여 생태계를 만들었다. 플랫폼 사업자는 사용자들이 혁신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그 혁신이 자신 위에서 일어나게 한 대가로 불로 소득을 얻었다. 그 혁신의 플랫폼이 이제 모바일로 이어지려 하고 있다. 이 것이 어느 누구도 계획하지도 통제하지 않았던 웹과 인터넷을 만든 자생적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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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계획주의적인 통신업의 눈에 이러한 자유 방임은 두려울 수 있고, 특히 손실 요소나 단점은 눈에 잘 들어 오기 마련이다.

물론 개중에는 인프라와 제도를 악용하는 듯 보이는 무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란 진화의 비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변화와 플랫폼의 확장은 글로벌하게 우리의 가치를 파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향후 10년을 이어갈 큰 변화의 서막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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