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당황한 정부, ‘통신요금 감면으로 안되겠니?’

일반입력 :2008/06/11 16:24

김효정 기자 기자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정부가 일단 저소득층 416만 여명을 대상으로 휴대폰 요금을 인하해 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관련업계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파동과 경기악화 등으로 분노한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급조된 시국전환용 정책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1일 발표한 저소득층 대상 휴대폰 요금감면 확대 방침은 이동통신사와 긴밀한 협의 없이, 단 몇 일만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3개 이동통신사들 역시 공식적으로는 적극 협조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정부의 방침에 따라서 당장 10월부터 416만 여명에 대한 요금감면을 실시하게 될 경우, 연간 5천50억원의 매출을 손해보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점유율로 볼 때 SKT, KTF, LGT는 각각 5대3대2 정도의 수준으로 매출이 빠지게 된다. 전체 매출대비 큰 금액은 아니지만 통신요금으로 거둬들이는 ‘현금’이 줄어드는 것이 반가울 리 없다. 방통위 박준선 통신자원정책과장은 “이번 발표는 이미 1개월 전부터 이동통신 사업자와 협의를 통해 진행해 오던 것이며,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지원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 전혀 상반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우 민감한 상황이라 특별히 말할 수 없지만,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동통신사의 입장이다. 공식적으로는 이번 정부의 방침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것만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비공식적으로 업계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내용은 ‘방통위가 1주일 전쯤 이동통신사에 내용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 중 ‘이번 발표가 최근 한나라당의 통신비절감 방안에 따라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방통위 측은 “절대 한나라당 때문에 발표한 것이 아니다. 방통위 스스로 1달 전부터 진행한 것이다. 그 동안 이동통신사에서도 관련된 이야기가 안 나왔던 것은 방통위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 급조된 요금인하 발표, 실효성 있나?급조된 발표였던 만큼, 이번 저소득층 휴대폰 요금 인하 내용도 허점이 있다. 방통위의 발표대로라고 해도, 1개월여 동안 153만명에 달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휴대폰이용 행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방통위 측은 직접 이들을 만나서 상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 이를 적용할 경우 ‘요금제에 상관없이’ 3만원 한도에서 감면혜택을 준다는 것도 준비가 덜 된 발표임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기본료 전액무료에 통화료 50%할인을 적용한다. 만약 기본료가 3만원인 약정요금제를 선택한다면, 실질적으로 무료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35%의 할인혜택에서도, 소위 기초생활수급자에 준하는 ‘차상위계층’을 어떻게 파악해서 혜택을 부여할 지도 명확하지 않다. 차상위계층은 4인가족 기준으로 월 127만원 이하를 버는 사람이 해당되는데, 대상자를 파악하고 이들의 정보를 통신사와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방법도 모호하다. 게다가 차상위계층 스스로 동사무소에 가서 대상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충분한 캠페인이 없다면 실효성을 장담 못한다. 만약 차상위계층으로 확인됐다 해도 동사무소에서 증명서류를 발급받고 통신사 대리점에 방문해서 신청을 해야하는 복잡한 절차도 문제가 된다. 방통위 박준선 통신자원정책과장은 “차상위계층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선 1년 단위로 차상위계층에 대한 감면여부를 심사할 계획이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내용에 대한 미비점은 차차 고쳐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통계화해서 관리하는 비용을 누가 분담해야 하는지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방통위는 이번 발표가 이동통신사가 자발적으로 사회공헌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매출 손해는 물론 저소득층 데이터 확인 및 관리 비용까지 떠맡기게 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더구나 일부 이동통신사는 저소득층 요금할인 대가로 정부출연금을 인하해 달라는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정부의 저소득층 휴대폰 요금 인하 방안은 물론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이미 보편적 서비스로 인정 받은 통신 서비스 요금은 현 수준보다 내려가야 한다. 그렇지만 사업자들 간 경쟁을 통해 시장논리에 맞게 요금을 인하하겠다고 밝혔던 정부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는지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 업계 관련자는 “난관에 봉착한 정부가 시국돌파용으로 내놓은 정책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