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드메일 개발자, “메일을 너무 많이 사용해”

일반입력 :2006/11/27 22:04

Yosijawa Torusa

1981년 세계 최초의 메일 서버「센드메일(sendmail)」이 개발된 지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최근 개최되었다. 이 이벤트에서는 센드메일의 개발자이며「메일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릭 알만(Eric Allman)의 일본 방문 강연이 실시되었다.

 

알만은 센드메일의 오리지널 프로그램 개발자란 점에서「메일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진정한 메일의 아버지는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이라고 말했다. BBN 테크놀로지스의 과학자인 톰린슨은 1971년에 인터넷의 전신인 알파넷(ARPANET)에서 ‘@’부호를 이용한 메일 주소에 의해 메일을 송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69년 9월 2일에 캘리포니아 대학 UCLA의 호스트 서버가 있다. 그 호스트가 스탠포드 연구소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 바바라교 유타 대학으로 접속해 인터넷의 전신인 군사용 네트워크「알파넷」으로 확대되었다.

 

1971년에는 알파넷의 네트워크가 미국의 동쪽에서도 다이얼 업 모뎀에 의한 접속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톰린슨에 의해 세계 최초의 메일이 송신되었다. 이것은 2대의 로컬 머신 사이에서 송수신된 것이지만 복수의 머신으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일을 하라는 요구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한다. 1971년 11월에는 UNIX 1.0도 공개되었다.

 

그 후 메일의 안전성에 대한 검토도 이루어져 1974년에는 랄프 머클(Ralph Merkle)에 의해「머클 퍼즐스」라 불리는 암호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암호화 시스템으로 공개키 방식의 암호 파이오니아가 된다. 게다가 1977년에는 RSA 방식의 암호화 기술도 등장해 현재의 암호화 기술 기초를 쌓아 올렸다. 같은 해 알파넷의 노드수가 100 가까이 증가해 통신위성을 사용하여 하와이에 접속하는 일도 행해졌다.

 

1978년에는 통신 프로토콜 UUCP가 공개되어 이전에는 정부의 하청 기관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었던 알파넷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개방되었다.

한편 그와 더불어 최초의 스팸메일도 송신되었다. 이것은 디지털 이큅먼트(DEC)의 세일즈맨이 광고 메일을 대량으로 송신해 버린 일로 당사자의 사죄에 의해 소란은 일단 수습되었다고 한다.

1979년에는 뉴스그룹의 일종인 유즈넷(Usenet)도 시작되어 알파넷은 보다 커뮤니티화 된다.

 

알파넷에서 인터넷으로의 이행이 시작된 것은 1981년. 이 때 센드메일이 개발되었다. 1982년에는 4.1a BSD 및 센드메일이 발표되고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단지 당시에는 동작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크래쉬도 많았다고.

알만은 당시를 “RFC821, 822도 공개되어 개발 웅직임이 격렬했던 시대”라 말했다. 1983년 1월 1일은 인터넷의「플랙 데이(Flag Day)」로 여겨져 본격적인 운용이 시작되었다. 1983년 9월에는 4.2 BSD가 공개되어 네트워크 API를 탑재한 인터넷 OS로서 현재 BSD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그때까지 인터넷의 이용은 연구자나 개발자에게 한정되어 있었지만 1985년에 퀀텀(Quantum; AOL)이 설립되어 일반 사용자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에는 최초의 상용 인터넷 서비스 유유넷(UUNET)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노드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다.

 

넷스케이프가 설립된 1994년에는「그린 카드(Green Card)」라 불리는 스팸메일이 발생했다. 이것은 ‘미국에서 노동하기 위해 필요한 그린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내용의 스팸메일이었고 악질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이용자는 인터넷이 악의적으로도 이용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1995년에는 센드메일 컨소시엄이 설립되었고 S/MIME의 책정으로 보다 안전한 통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1996년에 최초의 무료 메일 서비스인「핫메일」이 설립되고 1997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익스체인지 SMTP」로써 인터넷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가했다. 또한 야후도 같은 해에 설립되었고 연말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핫메일을 인수했다. 그리고 1998년, 이전까지는 많은 자원봉사자에 의해 운영되어 오던 센드메일이 회사로서 설립되었다.

「멜리사(Melissa)」바이러스가 등장한 1999년 이후로는 바이러스나 웜의 발생이 현저하게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아이 러브 유」바이러스, 2001년에는「안나 쿠르니코바(Anna Kournikova)」바이러스, 2003년에는「소빅(Sobig)」바이러스가 각각 등장하여 그 사나운 기세를 발휘했다. 2000년에 미국은 암호화 기술의 수출 제한을 완화했고 센드메일 8.11에서는 암호화 기능을 도입했다. 같은 해에는 메일 필터 기술인「밀터(Milter)」가 발표되었다.

 

메일 송신자를 사칭한 기술도 많이 악용되었고 이것에 대응하기 위해 2003년에는 야후가 야후 도메인키즈(Domainkeys)를, 2004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센더(Sender)ID를 발표했다. 이것들은 동일한 문제를 다른 수법으로 해결하려 한 것. 알만은 “지금도 인터넷은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정보가 홍수와 같이 넘쳐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가지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정리했다.

 

알만에 의하면 현재의 인터넷이 탄생 초기와는 크게 변화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메일을 사용하기 위해 앞으로도 보안을 계속 유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그 때문에 최대한의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또한 “’웹 2.0’처럼「메일 2.0」도 있는가”란 질문에는 “메일의 영향은 적다”고 답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개선에 의해 애플리케이션의 사용도 개선되겠지만 SMTP가 달라지겠는가”란 의문이 있다. 이에 대해 알만은 “확실히 구글 어스가 대단히다고 생각하지만 메일 전송 프로토콜인「SMTP」에 이러한 극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현대는 메일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전화를 이용하거나 직접 이야기하면 될 일에도 메일을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주 ‘다음에 메일로 보내 주세요’라고 덧붙이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에는 단지 ‘지금이 아니어도 좋다’라는 뜻과 ‘좀더 검토를 해달라’는 뜻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메일이 대량으로 보내어지는 지금, 그 절반은 불필요한 메일이며 그것을 구분해야 하는 일은 너무나도 쓸데 없는 시간낭비이다. 만나서 전할 수 있는 것은 직접 만나서 전하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