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PC통신사「천리안의 몰락」

일반입력 :2001/11/30 00:00

조태종 기자

2000년 한때 유료 가입자 300만을 넘나들던 데이콤 천리안은 ‘꽃다운 시절'을 보냈다. 유료회원수를 기준으로 미국의 AOL과 컴퓨서브에 이은 세계 3위에 해당하는 ‘덩치'를 자랑했다. 그런 천리안이 이제는 유료회원의 급격한 감소와 큰 적자를 기록하며 데이콤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현재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중이며 뚜렷한 사업비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인터넷천리안이 작금의 참담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인터넷의 등장 때문이다. 한때는 인터넷이 천리안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 했다. 사실 국내 인터넷 도입은 천리안의 노력도 일조했다. 천리안은 국내 인터넷 초창기인 95년부터 PC통신과 인터넷의 접목을 시도했다. 텔넷 접속 서비스와 FTP, 이메일 등의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PC통신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방법인 PPP서비스를 도입해서 많은 네티즌들에게 인터넷을 맛보게 하는 데도 앞장섰다. 인터넷의 확장과 함께 천리안 가입자는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사이버세상의 패러다임은 폐쇄적인 PC통신이 아닌 개방형 인터넷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었다. 천리안 내부적으로도 97년부터 차세대 천리안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완전한 인터넷 기반의 변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앉아서 돈 잘 벌어들이는 PC통신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천리안 내부적으로는 다음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비롯한 초기 인터넷 비즈니스가 출발할 때부터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건의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천리안은 국내에서 다음의 한메일이 성장하기 시작할 때 ‘국민 천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200만이 넘는 천리안 아이디를 기반으로 한 메일계정 사업은 네티즌들의 외면을 받았고 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검색포탈을 꾸리기 위해서 ‘심마니‘를 인수했지만 이 역시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다가 다시 분사 시켰다. 천리안의 목을 죄어온 결정적인 올가미는 초고속통신망의 보급이었다. 현재 프리챌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천리안에서 나와 둥지를 꾸린 모임들이 수없이 많다. 초고속통신망을 가입하면서 굳이 PC통신 천리안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시기를 허송세월로 보내다천리안 퇴사자들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꼽는 결정적인 악재는 99년 말 LG로의 경영권 이양이다. 이때 천리안을 비롯한 데이콤 전체가 갈팡질팡하게 된다. “인터넷과 통신환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지만 LG로 경영권이 이양되면서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다. LG에서 온 인사들은 상황 파악하기 바빴고 기존 인사들도 복지부동이었다. 천리안은 아주 중요한 시기를 이렇게 허비해버렸다." 전 천리안 사업 담당자의 말이다. LG그룹의 입성에 맞서 자부심 강하기로 유명했던 데이콤 직원들은 유래 없는 80여일 간의 파업을 단행했고 안팎으로 상처를 남기고 많은 인력이 데이콤을 떠나게 된다. 천리안은 잘 정리된 컨텐트와 다양한 커뮤니티가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제 천리안 밖 인터넷에는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운 컨텐트와 커뮤니티들이 존재하고 있다. 천리안의 실패는 PC통신의 짐을 덜어 놓지 못하고 인터넷 생태계로 진입하는데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AOL이 곧 인터넷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천리안은 곧 전화접속 PC통신이라는 낡은 이미지가 따라붙고 있다. 90년대 후반 천리안이 지닌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사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인터넷 기반의 웹메일, 채팅, 커뮤니티 서비스를 런칭시켰다면 지금의 한메일, 세이클럽, 프리챌이 존재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이제 천리안에게 미래는 없는 것일까. 아직 판결을 내리기는 이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환경은 언제 어떤 변수에 의해서 요동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무선 통합, 유료화 문제 등 앞에 놓인 갈림길은 많다. 과연 천리안호의 침몰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