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의 빈자리 샤오미가 차지하고

[이균성 칼럼] 누란지위 한국 ICT

데스크 칼럼입력 :2018/10/30 14:04    수정: 2018/11/16 11:12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이 2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를 매섭게 질타한 것은 애국심의 발로로 읽힌다. 역설적이지만 몰락해가는 한국 IT 산업의 현주소를 억지로라도 대변하고 있는 듯 해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존 리 대표의 술자리 문제까지 트집 잡고 나섰을까. 그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지만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코미디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같은 날 오전 중국 샤오미가 서울 한 호텔에서 스마트폰 '포코폰 F1' 한국 출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갓성비’ ‘괴물’ ‘인도 평정’ 같은 찬사가 뒤섞인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관련 기사들이 주요 포털 많이 읽기 상위권을 도배했다. 아이폰 정도는 아니지만 LG 폰에 대한 반응은 훨씬 능가했다. 어쩌면 팬택이 차지했어야 할 환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같은 날 새벽 IBM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전문업체 레드햇을 무려 36조원에 인수했다는 외신이 타전됐다. 세계 SW업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다. IT 시장이 클라우드 중심으로 흘러가자 IBM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아마존, MS, 구글 같은 클라우드 강자들과 겨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기에 새벽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샤오미 포코폰 F1.(사진=샤오미)

#우리 IT 산업의 현주소가 지금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첫 사례는 ‘플랫폼의 위기’를 대변한다. 구글과 애플의 앱 장터, 유튜브의 전방위적인 확장, 식지 않는 페이스북의 위세 등등. 앱을 만들거나 인터넷 기반의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자들은 이제 이들을 비켜설 수 없다. 기업이나 소비자나 미국 기업의 플랫폼 위에 우리의 모든 정보를 올려놓아야만 하는 세상이다.

#두번째 사례는 ‘제조의 위기’다. ‘외산의 무덤’으로 일컬어졌던 한국 휴대폰 시장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팬택은 망했다. LG전자는 14분기 연속 적자다. 이미 2조6천억 원이나 날려먹었다. 벤처의 대명사 삼보컴퓨터가 유명무실해진지는 이미 오래고 텔슨전자나 맥슨전자 같은 회사도 지금은 없다.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중계기 업체도 몇이나 남았는지 모르겠고 IT 제조업 저변은 말라버렸다.

#세번째 사례는 ‘SW의 위기’다. “SW가 중요하다”는 말은 기업이나 정부나 언론이나 수도 없이 외친 것 같지만 아직도 우리만의 변변한 솔루션이 기억나지 않는다. 주로 미국의 솔루션을 들여와 설치해주는 용역이 SW 업무이고 그런 기업들만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이런 관행은 기업의 규모와도 상관없다. 오히려 큰 IT서비스 기업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수출 되는 SW는 극히 일부다.

#한국은 한때 ‘IT강국’으로 불렸다. 지난 1997년 초겨울에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란 대재앙을 IT로 돌파하자는 국가 정책 덕분이다. 성과는 빛났다. 구글이 침투하지 못하는 인터넷 강국이 됐고, 모토로라를 잡으며 휴대폰 강국이 됐으며, 남부럽지 않은 전자정부 솔루션을 가진 나라가 됐다. 또한 반도체 1등이 됐고, TV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세계는 빛의 속도로 변했다.

#이제 또렷이 입증되는 일이지만 아이폰은 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쓰나미였다. 인터넷 시대에서 나아가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길 10년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마저 이 흐름을 주도하지 못했고, 정부는 과거와 같은 장기적인 안목의 진흥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언론도 수박 겉핥기 비판에 만족했고, 학자들은 이미 낡아버린 자료를 읊조리기만 하였다.

#생태계는 급변했다. 군소 기업과 소비자는 이제 미국 플랫폼에 더 익숙해졌다. 아이폰으로 페이스북에 접속해 친교하고, 유튜브에서 즐길 거리를 찾으며, 구글이나 애플 앱 장터에서 필요한 솔루션을 구매한다. 아마존에서 우리 상품을 직구하고, 회사의 업무 시스템 또한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기반이다. 영어만 쓰지 않을 뿐이지 우리의 삶은 이미 미국인과 엇비슷해졌다.

#30일 새벽 또 하나의 외신이 타전됐다. 영국 정부가 구글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에 2020년부터 ‘디지털 서비스’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소식이다. 영국에서 연매출 5억 파운드(약 7천315억원)를 웃도는 기업들에 매출의 2%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국제 조세 조례를 파괴하는 조치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우리는 이제 겪기 시작하지만 그들은 20년을 와신상담했다.

#이번 영국의 조치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미국의 IT 다국적 기업에 취해왔던 적대적 조치는 분명 ‘반(反) 세계화’다. 이미 사실상 국경이 사라진 ‘모바일 인터넷 사이버 영토’에 대한 쇄국조치다. 그것을 비판한다한들 정부로서는 그것밖에 할 조치가 없는 것이다. 기업이 사라지고 산업이 파괴되며 일자리 또한 없어지니 막무가내 조치라도 쓸 수밖에. 지금 우리 또한 그 길로 내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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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 종사자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목을 매는 이유가 이 핍진(乏盡)한 환경 탓인 듯해 눈물겹다. 물에 빠진 자가 잡고자 하는 지푸라기 같은 존재처럼 생각된다. 정책을 결정하는 당국자들이 이런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반도체는 잘 팔리고 있고 갤럭시도 그럭저럭 버티고 있으며 네이버 가입자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으니. 펀드멘탈은 견고하다 말 하겠지.

#CDMA로 통신 자립하고, 초고속인터넷으로 인터넷 세계 최강국을 만들었던 우리 저력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