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규제 공백…국내 암호화폐 정책 '혼돈'

사전적 정의, 분류없이 마구잡이식 규제로 혼란만

금융입력 :2018/10/30 17:05

암호화폐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분류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업계는 물론이고 관계부처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규제 공백이 길어지면서 관계 부처에서도 암호화폐 관련 상품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이 커진 상황이다.

정부는 내달 암호화폐나 코인공개상장(ICO)에 대한 방침을 밝히기로 했다. 하지만 투자자 피해를 사전에 막고 혼란을 줄이기 위해선 제대로 된 입장을 빨리 내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암호화폐 펀드, 합법적으로 나올 수 없는데…

30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암호화폐의 정의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시급하다.

금융감독 수장은 그 동안 암호화폐는 '금융투자상품'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지난 24일 갑자기 바뀌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날 암호화폐 거래소 '지닉스'가 낸 암호화폐 펀드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 중 집합투자업 부분을 위반했다고 간주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펀드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사전 심사를 받지 않았다는 점,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수탁사가 인가받지 않은 점이 위법적이라는 게 금융감독 당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암호화폐가 금융투자상품이 아님에도 불구, 자본시장법을 어겼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상 제시한 금융투자상품 분류에 암호화폐가 어디에 해당되는지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법조계 관계자들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되는 일부 토큰이나 코인이 있지만, 모든 암호화폐를 정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인가받은 운용사가 암호화폐 펀드를 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가받은 A운용사가 암호화폐를 투자 자산으로 한 펀드를 만들고 금융감독원에 제출해도 심사가 통과되지 않는 구조다. 규정은 없지만 정책적인 판단때문이라는 게 금융감독당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정책 상 암호화폐 펀드를 내지 않도록 하고 있도록 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 애초에 펀드 심사가 통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이미지=이미지투데이)

금융감독당국도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정부 입장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업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을 모집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착안해 집합투자 규정 위반을 들여다본 것"이라며 "코인과 토큰 개별적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가상통화를 금융투자상품으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 가상통화 자금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향방은?

행정부와 사법부 간의 의견도 엇갈린 상태다.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재판장 구회근)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이즈'가 NH농협은행을 상대로 낸 입금 정지 조치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지난 9월 코인이즈의 주거래은행인 NH농협은행이 금융위원회의 '가상통화 자금 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거래를 종료했고, 코인이즈는 이에 입금 정지 조치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금융회사 등이 금융회사 등의 고객이 신원확인 등을 위한 정보제공을 거부하여 고객확인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좌 개설 등 해당 고객과의 신규 거래를 거절하고, 이미 금융거래 관계가 수립되어 있는 경우에는 해당 금융거래를 종료해야 한다.

코인이즈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비전의 김태림 변호사는 "법원은 은행이 금융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입금 정지 조치를 하는 것이 정당한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한 조치임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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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도 암호화폐 거래소 캐셔레스트와 이 같은 맥락의 가처분 금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만약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금융위의 가이드라인이 유명무실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를 두고 법조계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재빠르게 판단하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시일이 너무 소요된 면이 있다"며 "정확한 지침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암호화폐 업계를 적대시하다보니 충돌이 생겼다고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