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라인의 암호화폐도 불법인가요?

[이균성 칼럼] 정부에 묻는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8/09/11 10:44    수정: 2018/11/16 11:13

우리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분리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미래를 바꿀 혁신 기술로 적극 지원하되, 암호화폐는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돼 있기 때문에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지요. 특히 암호화폐 공개(ICO)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ICO는 기업이 블록체인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발행해 자금을 모으는 과정을 말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를 할 수 없는 것이죠.

정부가 강력히 규제를 하다 보니 ICO를 하려는 기업은 이를 허용하는 외국으로 나가게 됩니다. 외국에 기업을 설립해야 하고 거기서 직원도 뽑아야 합니다. 외국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기도 하지만 국내 자금도 외국으로 빠져나갑니다.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기업으로선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죠. 블록체인 업계가 지나친 규제로 국부(國富)가 낭비된다고 비판하는 이유죠.

외국에 나가서라도 ICO를 하려는 기업은 그나마 작은 기업입니다. 비교적 정부 눈치를 덜 보는 곳이죠. 큰 기업은 ICO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더라도 이 방안은 일단 덮어놓고 봅니다. 이를 추진하다 정부에 밉보이면 다른 사업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정부가 기업을 압박할 방법은 아주 많습니다. 털어도 먼지 안 날 기업은 적고, 정부가 눈에 불을 켜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죠.

링크 분배정책(이미지=비트박스 캡처)

네이버 일본 자회사인 라인의 선택은 그 점에서 절묘합니다. 초기 자금을 모으는 ICO는 하지 않되 암호화폐(이름 링크)는 만들었습니다. 링크는 라인의 블록체인(이름 링크체인)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서비스를 쓰면 획득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사용 대가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보상형 토큰(암호화폐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라 합니다. 이 토큰은 링크체인 서비스를 이용할 때 현금처럼 쓰입니다.

중요한 것은 링크도 여느 암호화폐처럼 거래소(이름 비트박스)에서 사고팔 수 있다는 겁니다. 비트박스는 라인이 싱가포르에서 운용하는 거래소입니다. 비트박스는 특히 라인이 링크를 사용자에게 보상으로 분배하기 시작한 뒤 얼마 안 돼 세계 5위 거래소가 됐습니다. 이 분배가 시작되기 전에는 세계 100위권 밖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위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이겠죠.

라인의 선택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어 보입니다. 일본 회사이기는 하지만 한국 정부의 뜻(ICO 금지)을 거스르지는 않겠다는 것이 첫째입니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새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대개는 ICO를 하지만 라인은 다른 방법을 취했습니다. 신규 사업을 위해 전환사채(1조5천억 원 규모)를 발행했지요. 또 그중 절반인 7천500억 원 어치를 네이버가 인수키로 했고요.

네이버나 라인이나 이미 크게 성공한 기업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을 겁니다. 작은 기업들은 엄두를 못 낼 일이지요. 라인은 어찌됐든 블록체인 서비스를 위한 초기 자금을 전환사채로 수혈함으로써 정부의 우려를 비켜갔습니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경계하는 건 두 가지 측면 때문인 듯합니다. 거래소에 등록된 기존 암호화폐에 대한 일반인의 ‘묻지마 투자’와 실체가 불분명해 사기성 짙은 신규 ICO.

라인은 후자와 관련된 논란의 여지를 아예 없애버렸고 전자는 시장 원리에 맡긴 셈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묻지마 투자’가 진정된 상태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라인은 왜 이런 절묘한 방법까지 찾아내 암호화폐를 내놓아야만 했을까요. 미래 인터넷(앞으로는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 가운데 하나가 보상을 기반으로 한 ‘토큰 경제’를 누가 어떻게 잘 구현해 내느냐의 문제로 봤기 때문일 겁니다.

‘토큰 경제’는 마일리지 등 그동안 기업들이 다양하게 모색해왔던 소비자 보상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체계화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터넷 기반 서비스에서는 특히 절실하지요. 이게 활성화하면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 참여가 늘어나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좋은 일이고 이용자도 참여함으로써 더 많이 보상받기 때문에 나쁜 일이 아니지요. 사용자와 기업 사이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거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하는 정부의 관점은 투기 억제와 사기 방지라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생태계를 제한하는 문제가 큽니다. 정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단지 기술일 뿐입니다. 그것도 서비스 속도 등 앞으로 연구개발해야 할 숙제가 많은 기술일 뿐입니다. 기술은 서비스로 구현돼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를 구현하는 주체는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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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은 암호화폐 보상을 통한 ‘토큰 경제’ 방식으로 아직 부분적이긴 하지만 범용 블록체인 서비스를 구현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기술을 보강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토큰과 보상이 필요 없이 보안성 강화와 경비 절감을 목적으로 한 폐쇄적인 블록체인 서비스도 있겠지만 현재의 많은 인터넷 서비스는 ‘토큰 경제’ 방식으로 가야 의미가 있다는 걸 정부도 이해했으면 합니다.

투기와 사기를 막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하책(下策) 중의 하책일 겁니다. 피 뽑는 게 두렵고 귀찮아 아예 논을 쓸어버리는 일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생태계는 살리면서 투기와 사기를 막은 방안을 찾아내는 게 올바른 방법일 겁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죠. 그 과정은 고단할 것이며 가끔 탈도 날 것입니다. 그러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면 빈대도 죽고 사람도 죽어나갈 수밖에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