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잡고 부동산은 못 잡고...왜?

[이균성 칼럼] 정책의 원칙과 디테일

데스크 칼럼입력 :2018/09/07 17:02    수정: 2018/11/16 11:14

#두 개의 광풍(狂風)이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부동산과 암호화폐.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이 두 개의 바람은 심상치 않았다. 이 바람은 마냥 꽃바람인 것만은 아니어서 잘 관리되지 못 하면, 일부는 쾌재를 부르는데, 다수 서민의 얄팍한 옷마저 벗겨버릴 만큼 고약한 구석이 있다. 당연히 잘 관리하면 봄날 부는 꽃바람처럼 많은 사람에게 상큼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고약함을 알았다. 정부의 유일한 힘, 즉 규제를 발동해 두 바람을 길들이고자 했다. 현재 상황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암호화폐는 김빠진 사이다처럼 맥없게 됐다. 어느 정도 길을 들였고 정책 취지도 시장에 먹혔다. 놀라운 것은 부동산이다. 고삐를 죄면 죌수록 되레 더 난동을 부리며 절대 길들지 않는 야생마 같다. 쥘 수 없는 물처럼 정책과 법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두 마리의 야생마는 왜 똑같은 조련사 밑에서 다르게 반응한 것일까. 이 둘이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비슷한 점은 자칫 틈만 나면 투기 광풍을 불러온다는 게 거의 유일하다. 다른 점은 아주 많지만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길들이려는 규제의 대상과 범위다. 암호화폐는 주로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이 대상이다. 부동산은 적지 않은 국민이 대상이다. 규제 칼이 더 잘 들 곳이 어딜까.

암호화폐 비트코인(이미지=이미지투데이)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간명하고도 강력하다. 암호화폐 공개(ICO) 불허. 이 하나로 충분하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이를 어기고 움직일 수 없다. 털어 먼지 안 나는 기업 없고, 규제기관인 정부에 미운 털이 박히면 다른 사업도 곤란해진다. 국민에 대한 규제는 복잡하고 희미하다. 숫자가 너무 많고 사정도 다 달라 획일적으로 규제하면 뜻하지 않는 피해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크다.

#하나는 눈에 안 보이는 새로운 기술 자산이고, 하나는 눈에 보이는 오래된 부동자산이라는 점도 큰 차이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선택적인 반면 후자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전자는 관심 없을 때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자는 그럴 수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집을 사나 안 사나 누구든 이미 시장에 참여해 있는 것이다. 정책 여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하나의 큰 차이가 있다. 가치를 늘리는 방식이다. 기술은 노동의 산물이다. 또 창업의 기반이 되어 노동을 재생산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핵심 연결고리다. 건설 노동은 새 건물을 지어 부가가치를 늘리지만, 사실 부동산은 노동과 별로 관계가 없다. 지대 상승을 통해 가치를 자기 증식하는 게 본래 속성이다. 불로소득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시장근본주의자들은 ‘J노믹스’를 통째로 거부한다. 자영업자의 위기, 고용의 악화, 기업경쟁력 약화, 빈부격차 확대,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이 모두 J노믹스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런 문제는 요즘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오래 숙제라는 점이다. 최근 조금 더 악화했을 수는 있지만 한두 이유로 생긴 골병이 아니다.

#시장에 맡겨 스스로 자정될 일이었다면,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지난 수십 년간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왔는데 왜 이런 문제들이 점점 더 심화돼 온 것인가. 그리고 정부는 왜 필요하며, 정책은 왜 써야 하고, 법과 제도는 왜 만드는가. 법 아니고는 시장 참여자끼리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거 아닌가. 택시 노조와 정보기술 카풀 기업의 갈등만 봐도 너무 자명한 이치 아닌가.

#당정청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J노믹스는 시장근본주의가 낳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그림이다. 시장근본주의자들한테 역공당하지 않으려면 큰 원칙을 지키되 더 섬세하고 현실적인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원칙만 있고 디테일이 없으면 공허하다. 정책이 공허하면 신뢰를 잃고 경제 주체들은 혼란에 빠진다. 원칙에 흔들림 없이 일관되면서 풍부한 디테일로 무장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부동산과 암호화폐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길게 쓴 것도 그 때문이다. 원칙은 알겠으되 디테일이 허약해 보인다. 규제는 다짜고짜 두들겨 패는 ‘두더지 잡기’ 게임이 아니다. 부가가치 생산자에겐 따뜻한 자양분이 되고, 불로소득엔 엄격하게 과세하며, 불공정행위는 따끔하게 징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옥석을 구분해야 하고 현장에 밝아야한다. 많이 듣고 공부하고 좋은 사람을 계속 영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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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암호화폐 정책이 그랬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급변하는 기술 추세에 대한 몰이해 탓에 부가가치 생산자를 위한 따뜻한 자양분이 되기는커녕 훼방꾼 역할을 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고, 표와 인기를 위해 불로소득에 너무 관대한 게 아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정무직 고위 관료들은 현장에 더 자주 가 디테일을 보충하라. 그렇지 않으면 원칙이 흔들리고 원칙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목민(牧民)은 현장에 밝아야 신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