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시대 망중립성 "완화해야" vs "시기상조"

국회 세미나서 완화·유지 여부 놓고 이견 팽팽

방송/통신입력 :2018/09/07 13:14    수정: 2018/09/07 13:15

김민선, 김윤희 기자

"인터넷 개방성이 존중돼야 제2의 구글, 페이스북이 등장할 수 있다. 망중립성을 완화하면 수준 높은 통신 인프라가 쓸모 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

"시장 변화를 고려한 망중립성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망 차등 제공은 결과적으로 통신사뿐 아니라 콘텐츠사업자(CP), 이용자 후생에도 기여할 수 있다."

5G 상용화가 수개월 앞으로 다가면서 새로운 통신 인프라 시대에 망중립성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놓고 규제 완화론자와 반대 세력이 다시 팽팽히 맞섰다.

7일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한 '5G 시대의 망중립성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미나에서 통신사 측 입장과 콘텐츠제공업자(CP)의 입장이 대립했다.

먼저 '미국의 관점에서 본 망중립성'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EFF) 법률자문 변호사인 에르네스토 팔콘은 망중립성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도 "아직 국내에서는 망중립성 완화는 시기상조"라며 "CP 성장을 위해 망중립성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한양대학교 신민수 교수는 '5G 시대의 망중립성 정책 진화 방향'란 주제로 인터넷 시장 변화를 고려한 망중립성 완화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P 망 이용 부담 높으면 차세대 서비스 주도 기회 놓칠 수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막대한 망 투자 비용이 예상되는 5G 상용화를 앞두고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망중립성을 폐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EFF) 법률자문 변호사인 에르네스토 팔콘은 "트래픽 증가에 따른 ISP의 투자 부담이 실제로는 경미했다"고 주장했다.

에르네스토 팔콘

팔콘은 "초고속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지방 정부 소유의 ISP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망 투자 비용에 비해 매출 성장세가 더 가팔랐다"며 "가입자 한 명을 추가할 때 매출은 바로 증가하지만 망 유지비, 운영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ISP 매출과 망 투자, 유지 비용 증가세 분석. 매출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가파르다.

미국 사례를 볼 때 ISP와 CP 간의 망 이용 대가 협상이 불공정한 경우도 발견됐다.

에르네스토 팔콘은 "미국 케이블 회사인 컴캐스트와 넷플릭스가 분쟁 끝에 넷플릭스가 컴캐스트 측에 망 이용 대가를 내는 합의를 맺은 바 있다"며 "문제는 넷플릭스 측의 추산에 따르면 실제 컴캐스트의 망을 이용해 1시간 가량의 동영상이 전송되는 데에 소요되는 대부분의 비용을 넷플릭스가 지불하고, 컴캐스트 측에서는 1센트도 채 되지 않는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였다"고 언급했다.

이어 "ISP는 5G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무엇을 투자할 것인지, 초고속 인터넷에 대해 서로 경합할 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팔콘은 각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망 속도에 차등을 두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도입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에르네스토 팔콘은 "인터넷 개방성 덕에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아무 자본 없이 시작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는데 만약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콘텐츠 기업을 차별하면 이런 혁신이 불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팔콘은 또 "미국은 아직 통신 인프라 대부분이 구리선에 의존해 차세대 서비스가 출시되기 어렵지만, 한국은 수준 높은 통신 인프라로 인해 그런 여유가 있다"며 "한국은 망 이용 대가 수준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데, 인프라 여유가 있더라도 차세대 서비스 산업을 주도할 기회를 놓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5G 서비스 성장 위한 망중립성 네거티브 규제 정책 필요"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망중립성이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개념이 아닌, 시장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도구적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신민수 교수는 과거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신규 서비스들이 성장한 반면, ISP는 트래픽 증가에 따라 투자 부담이 확대되고 동시에 가입자 포화로 수익은 정체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VoIP 등 기존 ISP의 대체재 성격을 지닌 인터넷 서비스도 등장해 CP가 ISP와 경쟁 구도를 이루게 됐다고 분석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

미국의 망중립성 정책 변화는 이같은 시장의 변화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신민수 교수는 "FCC는 네트워크의 양면시장을 통한 가격 책정이 투자의 선순환을 실현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ISP는 플랫폼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이용자와 CP의 수를 최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책정하고 네트워크에 투자하며 결과적으로 ISP, CP 모두의 수요가 진작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망중립성이 완화될 경우 이론적으로 이용자 접근성을 높여 광고 수익을 올리는 CP의 수익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신 교수는 "CP가 망 이용대가를 부담함에 따라 이용자의 통신요금 부담이 완화되고, 트래픽이 늘어날 수 있다"며 "이같은 방향은 결과적으로 중소 CP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네트워크 트래픽이 크게 늘어나는 5G 시대에 맞춰 국내 정책 변경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ISP는 통신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적 조건이나 제한을 부과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신민수 교수는 "트래픽 관리 자유도를 높이기 위해 불허를 원칙으로 일부 예외를 허용하는 현행법 체계를 개선해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인 불허를 두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며 "획일적 망중립성 규제는 투자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5G 시장 전망이 불확실한 만큼, 혁신 서비스의 출시가 촉진될 수 있도록 전세계 시장 공략 관점에서의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망 차별, 인터넷 서비스 혁신 억제"

망중립성을 지지하는 정보인권단체 오픈넷 소속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CP가 통신망 구축에 비용을 분담해야 할 타당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박경신 교수는 “CP가 무임승차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이용자뿐 아니라 CP들도 물리적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각 사용자가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

박경신 교수는 통신사나 CP들의 매출 규모를 비교해도 통신사가 CP에게 망 투자 비용 분담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경신 교수에 따르면 작년 통신 3사의 총 매출액은 53조 1천867억원, 총 순이익 3조 7천673억원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네이버와 다음의 총 매출은 6조 6천억원, 순이익 총 6천억원이었다. 연봉 면에서 봐도 SK텔레콤의 평균 연봉은 1억 이상이나 네이버, 다음의 평균 연봉은 6천400만원 정도다.

박 교수는 “인터넷 차별 중계로 인터넷 생태계의 안정적인 혁신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실제로 카카오톡 보이스톡 차단의 문제가 생기면서 카카오는 해당 서비스를 지속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망사업자들이 망사용료를 더 받고 싶다면 인터넷의 기본구조를 훼손하는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협상을 통해 전용회선료, 상호접속료 등을 더 높여 받으면 될 일”이라며 “원가공개 등을 통해 시장지배적 지위에 대한 의심을 불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경신 교수는 통신사가 망중립성 완화에 근거한 중계 수수료를 주장한다면 중계 수수료와 반대되는 개념인 패킷 시작 부분에 대한 수수료도 누가 내야 하는지도 가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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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프랑스 ISP인 텔레콤 오렌지가 구글로부터 받는다고 주장했던 중계 수수료가 사실 중계 수수료가 아닌 오렌지 자회사 이퀀트가 통신사와 접속하면서 지불하는 돈(패킷 시작 수수료)이었던 사례로 보아 대용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사업자는 CP가 아닌 망 사업자일 수도 있다”며 “이는 학교 진입로를 학교가 지어야 하는지 마을에서 지어야 하는지 따져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또 박 교수는 자사 제로레이팅이 이용자의 통신 요금을 인하하는 효과를 가져오지만, 통신사와 제휴하지 않은 중소 CP와 차별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