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문재인 대통령

[김경묵 칼럼] 테크의 관점에서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25 17:08    수정: 2018/11/16 11:31

역사를 공부하면서 ‘세종의 한글 창제’는 늘 물음표였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세종이 한글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요즘 유행어로 ‘일’도 없었다.

그는 기득권의 최정점인 절대군주였고 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신하들의 반대도 극렬했다.

반대이유도 그럴듯했다.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자칫 한글로 똑똑해진 백성이 기득권층에 대들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런 신하들과 몇 십년 간의 지난한 싸움을 겪은 세종은 결국 ‘내가 다 책임지겠다’라는 일갈로 한글창제를 밀어 붙였다.

절대군주의 이같은 뚝심은 개인의 사욕에서는 답을찾기 힘들다. 아무리 실록을 찾아봐도그의 애민(愛民)정신 외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문맹때문에 억압받는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애민’의 마음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애민의 진정성이 어떻게 당시 백성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냐는 점이다. 애민의 정책을 머리로만 구상하고 말로만 외친다고 달라지는건 없다. 그런 레토릭(수사)로는 백성의 삶이,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후대의 역사도 기억 하진 않는다.

근데 세종은 애민 실현의 실질적이고 확고한 '수단'이 있었다. 바로 기술(테크)이다.

지금으로 치면 과학기술부 장관격에 상민 출신 장영실을 기용해 물시계인 자격루,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역법을 쉽게 풀어주는 칠정산 등 농업 생산력을 직접적으로 높여주는 기술들을 개발했다. 세종은 애민의 마음을 ‘기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눈에 보이는 ‘실체’로 구현해낸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세종 얘기를 한 것은 그의 애민정신과 문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진정성이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의 기술(테크)과 같은 진정성의 실체를 구현할 수단이 현 정부에도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통령도 이 점이 답답했는지 최근 강도 높은 규제혁파와 혁신성장을 언급했다. 대통령은 지난 월요일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앞으로 매달 직접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기엔 그간 강조해온 소득 주도 성장이나 혁신성장의 더딘 성과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 베여 있다.

지금의 규제개혁은 대통령이 강하게 질책할 만큼 답답한 부분이 많다.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주의자는 기득권이 만든 규제를 혁파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혁신의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무엇보다 그 원인은 종래의 혁신 방법에 지나치게 함몰돼 있는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기존의 혁신은 법이나 제도, 심지어 왕을 바꾸는 것처럼 정치적인 요소가 강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혁신의 아이콘은 단언컨대 기술이다. 기술이 삶의 양태를 변화시키고, 불가능하게 보였던 모든 장벽을 허물었다. 통신망의 진화로 시작된 인터넷 혁명’과 스마트폰 등장으로 촉발된 모바일혁명이 좋은 예다.

그런데도 600년 전 세종이 알고 있었던 그것을 ,우리는 여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엔 다시 혁신의 바람을 일으킬 블록체인 기술이 놓여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여전히 주저거린다. 한번 상상해보자. 600년 전의 세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검증되지 않았으니, 불확실성의 리스크가 크니 우린 안하고 이웃나라 중국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을까? 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통해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그의 성격이라면 현 정부를 꽤나 답답하게 바라볼 듯싶다. “600년이 흘러도 대신들은 한결 같구나” 하지 않았을까.

이제 암호화폐를 포함한 블록체인 시장은 글로벌 강국들의 각축장이다. 우리만 외면하고 안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중국 속담에 ‘중앙에 정책이 있으면 지방엔 대책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경험에 의하면 중앙의 정책보다는 민간의 대책이 늘 고퀄리티였다. 이번에도 민간의 대책이 가진 성장 잠재력을 믿어보고 규제를 혁파하는 ‘신의 한수’를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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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에게는 지금 기술에 대한 세종의 뚝심이 필요한 시기다. 세종이 했던 것처럼 ‘내가 다 책임지겠다’의 각오로 규제혁신을 통해 ‘진정성의 실체’를 증명해 주길 기대해본다.

그 뚝심의 결정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