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모빌리티 시장...혁신 실종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⑦] 우버법

인터넷입력 :2018/07/25 08:56    수정: 2018/07/25 08:59

문재인 정부가 '혁신 성장'을 위해 규제 혁파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달라 논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에따라 혁신성장의 도구이자 핵심인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 12개를 골라 '나쁜 규제, 이것만은 꼭 풀자'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⑦ 모빌리티 혁신 가로막는 낡은 '우버법'

우리나라는 소위 '우버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사업용 자동차가 아닌 자가용 자동차를 유상운송에 사용하거나 임대, 중개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 법 때문에 2014년 일반인 차량호출 서비스인 ‘우버엑스’가 한국에서 철수했고, 2016년 버스 공유 서비스인 콜버스는 전세버스 예약서비스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올해에는 카풀 서비스인 ‘풀러스’가 대표 사임과 구조조정을 선택했고, 경쟁 서비스인 ‘럭시’는 사업 확장에 한계를 느끼고 저평가에 회사를 카카오에 팔았다.

2년 단위로 모빌리티 시장에 규제 악몽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탓에 사용자는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에 택시와 유사하거나 더 편리한 운송수단을 잃었다. 대중교통이 끊긴 시간, 귀가를 못한 시민들은 여전히 대로변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언제 잡힐지 모르는 택시를 애타게 기다리지만 빈 택시가 없거나 승차거부를 당하기 일쑤다.

규제혁신을 넘어 혁파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던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선 이동과 관련한 혁신은 물 건너 갔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스타트업이 무조건 규제 개선만을 외치고 적절한 대안을 함께 제시하지 못한 탓도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기득권 편에 선 낡은 법과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란 지적에는 변함이 없다.

■ 2013년 우버 사태로 시작된 모빌리티 ‘흑역사’

우버 반대 시위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람들의 이동을 더욱 편리하고 똑똑하게 돕는 ‘스마트모빌리티’ 기술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흐름에 우버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둬 기업가치 73조가 넘는 회사로 성장했고, 중국 차량호출 기업 디디추싱도 빠른 성장을 거둬 60조가 넘는 스마트모빌리티 회사로 발돋움했다.

반면 국내에서 교통의 혁신을 일으킨 서비스로는 ‘카카오택시’ 정도다. 기존 전화로 이뤄지던 콜택시 서비스를 모바일로 편리하게 옮겨 승객과 택시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국내 모빌리티의 ‘흑역사’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우버가 국내법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출한 잘못이 컸지만, 세계 70개 지역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우버는 2014년 불법 유상운송행위로 규정돼 퇴출됐다. 서울시는 경찰 고발과 ‘카파라치’ 제도를 운영해 우버엑스 서비스를 차단했고, 법원은 우버의 공동 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에게 2천만원 벌금형을 내리기도 했다.

2016년 심야버스 콜버스도 국내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였지만 국토부의 과도한 영업 제한과, 택시 및 버스 업계의 반대로 정식 운행조차 하지 못했다. 콜버스는 이용자가 스마트폰 앱으로 출발, 도착 지점을 입력하면 미니버스가 실시간으로 경로를 바꿔 이들을 태우거나 내려주는 서비스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콜버스 운행 시간과 운행 구역을 최소한으로 축소함으로써 콜버스의 사업을 사실상 가로막았고, 이 회사는 전세버스 예약서비스로 사업모델을 전환했다.

모빌리티 혁신의 좌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카풀 서비스인 ‘풀러스’가 지난해 출퇴근시간 선택제 도입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자 택시 업계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허용하는 출퇴근 시간의 범위를 사업자가 임의로 과대 해석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같은 갈등이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풀러스는 계획했던 사업 확장에 차질이 빚어졌고 경영난과 투자사의 압박 등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결정과 사업방향 전환 결정을 내렸다. 대표이사는 급작스럽게 사임해 업계 충격을 안겼다.

■ 2025년 226조 시장...한국은 역주행

모바일 기기로 택시 등 이동수단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먼 얘기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IHS마켓에 따르면 차량공유 관련 사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5년 2천억 달러(약 22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2040년이 되면 3조 달러(약 3천40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내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에서 ‘자가용 자동차를 유상운송 및 임대 알선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신 자가용 자동차 운행 억제와 교통혼잡 완화 취지로 제정된 예외 규정으로 출퇴근 시간에 한해 카풀 서비스를 허용해 왔다. 그런데 풀러스가 출퇴근 시간의 개념을 유연근무제 등으로 변화된 통근시간에 맞춰 확대하려 하자 아예 예외조항을 없애는 법안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11월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하고, 현재 출퇴근시간에 한해 허용된 카풀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빌리티 혁신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제도 혁신을 위한 해커톤 방식의 토론회를 열어 카풀 서비스 규제를 풀어보려 했으나, 택시 업계의 불참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사실상 양보를 강요받게 될 택시 업계 입장에서 반발이 컸다. 이에 앞서 국회와 서울시가 열기로 한 토론회도 생존권이 걸린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대로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됐다.

■ 투자사 눈길은 해외로..."대화 방식 고쳐야" 자성 목소리도 나와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

결국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 한계를 느낀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래에셋이 디디추싱에 2천800억원을 투자했고, 현대자동차도 그랩에 약 266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삼성전자도 그랩과 전략적 제휴(MOU)를 체결했다.

말로만 규제혁신과 혁파를 외칠 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시장 환경에 염증을 느끼는 스타트업들의 한숨만 깊어졌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전체 국내 모빌리티 시장 측면에서 볼 때 우버, 풀러스와 같은 이동과 관련된 부문뿐 아니라 로켓배송과 같은 화물운송 분야, 바로고나 부릉과 같은 이륜차 배달 대행 등에 여러 문제와 한계를 갖고 있다”면서 “이에 통합물류사업법을 만들어 모빌리티 문제를 정리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이에 앞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일몰제 방식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우선 허용한 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개별법을 개정하거나 제정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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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인 이재웅 쏘카 대표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과도한 걱정 때문에 국내에서 규제가 안 풀리는 부분이 있다. (풀러스, 우버 등이 가진) 잠재력이나 사람한테 돌아가는 가치와 효용보다, 택시 산업에 영향을 미쳐 이 분들이 힘들어질까 하는 걱정 때문 같다”며 “우려대로 피해가 크지도 않을 텐데, 스타트업이 정부나 관 쪽을 잘 설득하면 빠른 시일 내에 (규제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협의가 어려웠던 이유 중에는 대화 방식에 잘못된 부분도 있었다”며 “(스타트업 측이) 적극 대안을 제시했느냐, 문제를 제기하면서 기존 업계들과 충분히 대화했느냐를 보면 그렇지 못했다. 쉽진 않지만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 주고 직접 소통을 통해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고 만들어 간다면 충분히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