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G 최초 경쟁’ 포기시킨 이유

[이균성 칼럼] 화웨이 어부지리 경계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17 15:20    수정: 2018/11/16 11:19

어떤 업종보다 치열하게 ‘최초 경쟁’을 하는 통신서비스 업계가 17일 사상 처음으로 이색적인 합의에 도달해 그 배경이 주목을 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이통 3사 최고경영자의 간담회에서 5G 서비스를 한날한시에 개시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이통 3사는 ‘최초 보도자료’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면서 치열한 신경전을 펴오던 터여서 그 배경이 관심을 끄는 것이다.

이들 간담회에 앞서 정부가 ‘한날한시 서비스’ 보도자료를 낸 만큼 이번 합의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통신 3사가 앞장서서 그렇게 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점도 정부가 주도했을 것이라는 짐작에 힘을 싣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부가 요청하고 업계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게 옳다. 그래서 정부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 지가 우리의 관심사다.

사실 이 일을 비꼬아 보면 정부 행위는 도마에 오를 수도 있다. 기술 중심의 산업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은 기업 브랜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들이 틈만 나면 ‘최초 보도자료’를 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 정부가 그 경쟁을 제한한 셈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특정 기업이 최초가 될 수 있는 일을 ‘대한민국 최초’라는 의미로 바꿔버린 것이기 때문.

자, 그러면 정부는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들의 합의를 이끌어냈을까. 유 장관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신 3사가 1등 경쟁을 하다 보면 자칫 왜곡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최초 경쟁을 지양해 주시고, 5G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로 하는 게 의미가 있으니 보조를 맞춰 봅시다.” 일부만 인용해 두서와 맥락이 흔들리지만 이 말에서 중요한 두 단어는 ‘왜곡’과 ‘의미’라 봐야한다.

두 단어 다 한국 ICT산업의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차 산업혁명의 주무부처로서 문재인 정부의 ‘혁신 성장’을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부처다. 5G는 그중 핵심 아이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에서 네트워크로서의 대동맥이자 실핏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5G 서비스를 계기로 국내 ICT산업 생태계를 최대한 확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이미 있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CDMA는 이통 서비스 발전은 물론이지만 한국 휴대폰을 글로벌 1위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추진됐던 초고속인터넷은 네이버 같은 포털 서비스와 엔씨나 넥슨 같은 게임 업체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ICT 활용 영역에서 우리나라가 남부럽지 않게 된 데엔 정부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5G는 그 파급력 측면에서 CDMA나 초고속인터넷을 능가한다. 현재 서비스 중인 4G에 비해 일반인이 느끼는 이동전화 서비스 품질은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물인터넷(IoT) 등과 연계돼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클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런 분야에서 쓰임새를 만들어내는 게 통신사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 생태계를 어떻게 잘 꾸밀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 장관이 말한 ‘왜곡’이란 뭘 의미하는 것일까. 복합적이겠지만 5G의 과실을 외국 기업만 챙기는 것도 배제하지 못할 듯하다. 특히 화웨이가 대표적이다. 수조원대의 초기 장비 시장에서 이 회사가 큰 과실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기업이 손만 빠는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이 그 과실의 상당수를 차지해버린다면 특정 기업의 5G 세계 최초가 정부에겐 빛이 바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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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기반으로 여기서 레퍼런스를 축적한 국내 기업이 앞으로 전개될 세계 5G 시장에 진출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당장에는 스위치나 기지국, 그리고 스몰셀 같은 통신 장비가 여기에 해당되겠지만, 5G가 IoT 등과 결합해 다른 산업으로 확장될 때 글로벌로 진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 더 많아질 수 있다. 다양한 IT 솔루션과 이를 종합하는 SI 등이 그 아이템일 수 있다.

유 장관은 결국 통신3사 CEO에게 ICT 산업 생태계 정점에 있는 기업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조기에 저렴하게 주파수를 할당하고,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는 세금감면도 검토하는 등 5G 세계 최초 상용화에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할 테니 통신사도 ICT 산업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견인하는 데 함께 하자는 뜻이다. 그게 유 장관과 정부가 생각하는 5G 상용화의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