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기업 '머크'는 어떻게 350년을 계속했나

소유·경영 분리, 무한책임, 미래 위한 지속혁신

디지털경제입력 :2018/06/27 17:54    수정: 2018/07/01 10:48

독일에 본사를 둔 생명과학기업 머크(Merck)는 올해로 350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꼽히는 두산그룹이나 동화약품, 우리은행 등은 역사가 120년 내외 수준이다. 국내 최고(最古) 기업으로 불리는 두산그룹은 1896년, 동화약품과 우리은행은 각각 1897년, 1899년부터 시작됐다.

머크의 장생 비결은 무엇일까?

■ 13대에 걸친 안정적 지배구조

글렌 영(Glenn Young) 한국머크 대표가 지난 26일 머크의 혁신 역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사진=한국머크)

최근 기자간담회를 개최한 글렌 영(Glenn Young) 한국머크 대표는 안정적인 지배 구조 덕분에 머크가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 대표는 “머크는 창립 가문이 13대에 걸쳐 소유하고 있다. 이 점이 머크가 안정적으로 성장을 구가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전 세계에 퍼져있는 머크 자회사들을 관리하는 회사는 머크 KGaA며 해당 회사는 머크 가문이 지분의 70.3%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크는 1688년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독일 담스타트의 천사 약국(Angel Pharmacy)을 인수하며 시작됐다. 머크 가문은 1995년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머크의 지분 29.7%를 독일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고 2007년 머크가 닥스(DAX)에 들어갔지만 70%대 지분율은 공고히 지키고 있다. 닥스는 독일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30개 회사로 구성된 종합주가지수로 한국의 코스피 같은 개념이다.

영 대표는 머크 가문이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당금 등 머크로부터 얻는 수익을 최대한 높이기보단 회사에 머크 자산이 묶여있도록 하고 많은 자금이 연구 개발에 투자될 수 있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재무 구조를 봐도 전체 매출은 153억 유로(약 19조9천361억원)이며 연구개발비는 21억 유로(약 2조7천363억원)을 나타냈다. 전체 매출 10분의 1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자한 것이다.

영 대표는 “가족 경영기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가 우수한 지배구조”라며 “머크 가문 입장에서도 회사 운영을 부적절하게 한다면 위험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 연구개발·투자에 선제적으로 나선다

머크가 강조하는 ‘장기적 관점으로 운영’은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제약사로 출발한 머크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1904년부터 액정(LCD) 연구를 시작했으며 1955년 자금 수혈 후 1960년 최초의 액정응용제품을 개발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디스플레이 사업을 펼쳐나갔다. 바이오 분야 역시 1955년부터 진출했다.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인수, 합병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머크는 2007년 스위스 생명과학기업 세르노를 인수하며 난임, 내분비계, 제2형 당뇨병, 심형관계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난임은 현재 머크의 3대 사업 분야 중 하나인 헬스케어 사업에서 주력하는 분야기도 하다.

이외 ▲2010년 미국 생명과학기업 밀리포아 ▲2014년 하이테크 소재와 기능성 소재기업 AZ일렉트로닉 머티리얼즈 ▲2014년 네덜란드 스마트 원도 전문업체 피어플러스 ▲2015년 미국 생명과학기업 씨그마알드리치 등도 인수했다.

영 대표는 “머크는 미래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1955년 기업공개와 이후 굵직한 인수가 이어지면서 회사 구조도 바뀌게 됐다”며 “제약과 특수화학을 넘어 과학기술 중점 회사가 됐다”고 밝혔다.

■ 이제는 디지털화…AI·블록체인도 관심

머크는 현재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이를 활용한 기존 사업 발전과 새로운 사업 모델 모색에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화를 또 한 번의 계기로 발판 삼아 35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영 대표는 “머크가 밟아온 역사가 회사 가치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머크가 항상 집중하는 것은 미래다. 탄탄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 중요한 모든 혁신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화로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맞춰 비즈니스 전략도 변해야 한다”며 “디지털화는 헬스케어나 디스플레이 소재 등 모두 적용될 수 있다. 디지털화에 성공하면 머크 수익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크는 디지털화에 대응하게 위해 독일 담슈타트에 지난 5월 이노베이션 센터를 설립했다. 이노베이션 센터는 머크의 아이디어 센터 같은 역할을 할 예정이다.

영 대표는 “이노베이션 센터를 세운 이유는 머크의 연구자, 비즈니스 직원 등 각 사업 분야의 직원들이 함께 벤처 기업처럼 자유롭게 교류, 소통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며 “머크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한 유의미한 투자였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신 기술에 대한 연구, 고민도 이뤄지고 있다. 영 대표는 “머크 역시 AI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당 기술로 새로운 기능성 소재나 신약 물질 등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AI 기술은 이미 데이터 확보와 분석, 공급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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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영 대표는 간담회 자리에서 머크처럼 지속 성장하길 바라는 한국 가족경영 기업에 필요한 조언을 요청받았다. 영 대표는 “한국에도 가족 경영기업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업 운영 사정 등을 알고 있지 못 하므로 답변하기엔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머크 가문과 머크 지분을 가진 주주들은 머크가 항상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하고 건전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신경썼다”며 “독일을 넘어 세계로 나가고 해외 기업들을 인수한 후 독일은 물론 미국 등 다른 나라 규제에도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