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코인 '현미경검증' 왜 필요하냐면요...

에이치닥 저격글로 화제인 정우현 씨 인터뷰

컴퓨팅입력 :2018/05/29 08:48    수정: 2018/05/29 10:07

소위 암호화폐 발행(ICO)으로 대박난 프로젝트는 신성시되기 쉽다. 일단, 투자자들의 엄호가 뒷받침된다. ICO에 성공한 프로젝트일수록 코인을 보유한 투자자가 많다. 프로젝트에 흠집이 나 코인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우선 이들이 열혈 방어에 나선다.

블록체인 업계도 암묵적으로 보호한다. 정부가 ICO를 부정적으로 보고 단속하려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성공사례는 지켜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어지간한 흠은 못 본척 넘어가 준다. 괜히 논쟁을 키우면 '암호화폐, 그거 다 사기아니냐'는 식의 비난으로 이어질까봐 겁을 내는 분위기도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암호화폐 커뮤니티엔 무자비한 '저격글'이 올라와 화제다. 그것도 지난해 최대 규모 ICO로 꼽히며 토종 블록체인의 '국위선양' 사례로 회자되는 에이치닥(HDAC)을 정조준했다. 에이치닥은 현대가 3세인 정대선 현대BS&C 회장이 발행해 '현대코인'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에이치닥을 겨냥해 공개적으로 저격글을 올린 인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톰'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울이더리움밋업 창설자 정우현 씨다. 그가 암호화폐 커뮤니티 땡글에 올린 에이치닥 관련 글을 총 7 건이다. 모두 의혹이 있는 부분을 세세하게 파해친 '현미경 검증'의 결과물들이다.

그는 왜, 누가 부탁한 적도 없는 피곤하고 논쟁적인 일을 자처해서 하는 것일까. 이유가 궁금해 미국에 있는 그와 28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울이더리움밋업 창설자 정우현 씨.

그는 위에 언급한 이유로 "에이치닥을 하나의 개별 프로젝트가 아니라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수 있는 프로젝트"로 보고 "이에 대한 투명성 검토가 의미 있다고 판단 돼" 검증에 뛰어들어다고 한다. 또 "일방적인 규제일변도의 정책 보다 커뮤니티에서 투명성 검증 노력이 더 산업을 투명하게 정화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그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커뮤니티와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뮤니티와 소통하지 않고 숨어서 뭔가 대단한 기술을 하나 잘 만들어 내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꿈꾸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일갈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을 재구성했다.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한국에서 대학,대학원 졸업(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학사 85,석사 89)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오스틴) 정보통신학 박사 수료했다.

2000년대 초반 두개의 스타트업 파운더 경험이 있고, 2013년 하반기 이커머스에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해외결제용 솔루션을 찾다가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GPU 코인채굴로 관심이 확대됐다.

2014년 초반부터 땡글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커뮤니티에서 여러가지 코인들에 대한 다수의 글들을 올렸다. 2014년 하반기 이후 이더리움 코어와 분산앱(댑.Dapp) 개발을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커뮤니티 회원들과 서울이더리움 밋업 조직해, 이더리움에 대한 대중적 소개를 위한 활발한 온라인 활동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중반 이후 페이스북에 한국이더리움 사용자 그룹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해온 사업은 이커머스 솔루션 개발과 운영이다.

Q. 최근 에이치닥 프로젝트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한 것을 봤다. 어떤 생각으로 나서게 됐나?

A.작년에 프리세일과 스위스에서 토큰발행이벤트(TGE)를 해서 2017년 최고 규모의 자금을 모았다는 기사는 보았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스위스 FINMA 심사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고, 조만간 거래소 시장에 론칭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작년에 이룬 펀딩규모와 파운더가 현대 고 정주영 회장 친손자라는 이유 때문에, 상장과정에서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고, 이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좀 더 철저하게 이 프로젝트의 투명성에 대해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라도 투명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가진채 거래소 시장에 들어간 이후 나중에 이것이 이슈가 되면, 하나의 개별 프로젝트가 아니라 시장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클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난해 이뤄진 가장 큰 규모의 ICO로 꼽히는 에이치닥(HDAC) 프로젝트

더구나 한국은 아직도 ICO를 금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가중의 하나가 아닌가? 올 하반기 보다 긍정적인 ICO 정책으로 선회하기를 바라는 많은 한국의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들의 생존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기에 에이치닥에 대한 투명성 검토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커뮤니티의 투명성 검증 노력이, 일방적 규제일변도의 정책 보다 더 투명하게 산업을 정화시키는 데 일조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Q.에이치닥 메인넷 오픈 전 사전 채굴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사전 채굴이 왜 중요한 이슈인가?

A.사전채굴(또는 프리마이닝) 문제는 사실 좀 철이 지난 개념이다. ICO라는 클라우드 펀딩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이전에, 새로운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개발비를 확보하기 위해 취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논리적으로 사전채굴 자체가 바로 스캠(사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체인이 론칭되기 전에 개발팀이 선채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만큼만 실제 채굴해 가져갔느냐다. 이를 정확히 지키지 않고 더 많이 캐거나, 심지어는 더 많이 캤다는 것을 기술적인 편법을 사용해 의도적으로 숨길 경우 이것은 명백한 스캠으로 간주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약속한 만큼만 캐도 문제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개발팀이 자신들이 보유한 코인을 매우 초기에 대량으로 덤핑(저가 매매)하고 잠적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에이치닥이 백서에서 공개한 사전 채굴 계획. 실제는 이 것보다 더 많은 채굴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돼, 커뮤니티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에이치닥이 사전에 자신들이 백서와 코인 판매과정을 통해 발표한 계획에 따라 정확히 같은 수량만을 메인넷에서 사전채굴하고, 이후 공개채굴로 전환했다면 사전채굴과 관련한 아무런 투명성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에이치닥 측이 사전에 약속한 사전채굴량보다 훨씬 더 많은 코인을 사전채굴했고 이에 대한 공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얼마전 5월18일 메인넷이 공개되고 나서, 이미 만들어진 블록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보고, 사전 채굴된 코인수를 집계해보고서야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이렇게 초과 채굴된 물량을 전량 소각하라고 요청한 것이었다.(☞관련글)

Q.프로젝트가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되는 지 점검했을 때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국내 프로젝트가 많을까?

A.사전채굴 방식이나, 지금까지의 ICO 방식들이 여전히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본다. 비단 국내 케이스들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 ICO 프로세스 자체의 시스템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본다. 현재 ICO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액으로도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접근권을 보장해주고, 개발팀은 비교적 작은 비용으로 글로벌하게 펀딩을 진행할 수게 한다는 매우 큰 장점들이 존재하지만, 투자금 지출에 대한 통제와 투명성 확보에 있어 여전히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불완전한 시스템이라고 본다.

펀딩과정에서는 스마트컨트랙트를 사용해 보다 투명하게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지만, 펀딩된 자금의 집행에 있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꺼번에 너무 막대한 자금이 몰리는 것도 파운더와 개발팀의 의욕을 상승시키기 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낳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더 좋은 시스템과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시장에 안착시키는 노력에 대한 지속적인 보상 메카니즘이 너무 약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ICO를 전면금지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장점을 살리면서도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정부와 생태계가 같이 논의하면서 개선해야 될 문제라고 본다.

프로젝트의 성공적 진행에 따른 단계적 펀딩모델이나, 모금된 자금이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는 모델들이 더욱 활발히 연구되고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들의 정립에 있어서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판단해서는 시장의 역동성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다.

Q. 국내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ICO를 넘어 실제 제품이 나오고 서비스에 사용자를 모으고 운영하려면) 커뮤니티와 소통 능력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나?

A.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매스마켓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큰 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케일링 문제이고, 암호화폐 비지니스에 가장 잘 맞는 사용자 경험 구축 노하우의 축적이 필요하고, 크리티컬 매스에 해당하는 초기 네트워크 사이즈를 확보하기 위한 독자적인 시장 가동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금방 해결될 일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와의 소통이다. 암호화폐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는 바로 커뮤니티이다.

이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뭔가 대단한 기술을 숨어서 하나 잘 만들어 내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꿈꾸는 것은 큰 착각이다. 커뮤니티는 단순히 완성된 제품을 소비할 대상이 아니다.

이들이 새로운 네트워크안에서 어떻게 가치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분배하는지, 그리고 이를 이용해 어떻게 새로운 밸류시스템을 구축해 나갈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것이 암호화폐 또는 블록체인 비지니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개발사나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A.더 많은 부분들을 서로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같이 만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내에 있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내부에서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고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알길이 없다.

또는 공개해도 이에 대해 같이 토론하고 논의를 해 줄 사람들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한다.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는 내용들을 열심히 정리해서 올리고 있는 팀들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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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들도 너무 톡방중심으로 닫혀져 있는 공간 위주로 나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픈공간에서의 더욱 활발한 논의들이 절실하다. 국민청원에는 쉽게 수만명이 모이는데, 왜 정작 본인들의 주장을 하고, 그것을 같이 공유하는 것에는 소홀한가? 변화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대신 해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