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 “미운오리 스타트업, 백조로 키워야”

“안될 거 같은데 되게 하는 힘 필요”

인터넷입력 :2018/04/24 13:48    수정: 2018/04/24 15:30

“우리나라엔 스타트업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대해 너무 깎아내리는 문화가 있어요. 자수성가한 창업자들을 향해 박수치고 밀어줘야 하는데 이익을 내면 이익 낸다고 하고, 못 내면 또 못 낸다고 뭐라 하거든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의 말처럼 국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고 예민하다.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해외 투자를 유치하면 외국 기업이라 깎아 내리고, 우리 기술력과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며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쿠팡처럼 놀라운 매출 성장을 기록하는 기업도 적자폭만 보고 폄하하기 일쑤다.

임정욱 센터장이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바로 스타트업에 대한 이런 차가운 시선이다. 가까운 나라인 중국만 해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그렇다 보니 창업 열기에 비해 크게 성장하는 회사가 적다는 것이 임 센터장의 지적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

“중국과 같은 곳에서는 영웅으로 평가 받을 스타트업들이 국내에서는 욕을 먹는 경우가 많아요. (어느 정도 성공 궤도에 오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도 심적 부담이 큰 걸로 알고 있어요. 좀 잘 된다고 하면 공격이 들어오니 선배들이 나서지 말라고 조언하는 게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현실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바꿔야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더 클 수 있는데 말이죠.”

임정욱 센터장은 스타트업들이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스스로 “네이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를 물어보고 이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온라인에서나 벤처캐피탈 등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는데, 잘 모르고 창업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고객에게 집중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고객에게 물어보고, 회사 성장 단계에 맞는 적절한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또 리디북스처럼 네이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를 미리 자문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임 센터장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 될 거 같은데 되게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스타트업에게만 실패에 따른 책임과 부담을 지도록 하는 구조인데, 이를 정부와 투자사들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타트업만 실패를 감수하라고 하는데, 정부나 투자자도 똑같이 실패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봐요. 실패 감수가 이 업의 본질이거든요. 안전한 곳만 투자하면 딱 그 만큼만 성과가 나오는 게 금융의 속성 아니겠습니까? 한국이 힘을 모아 블록체인 세계 강국이 되겠다고 하면 세계에서 앞서 가는 규칙을 만들어 과감히 실패에 따른 손해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임정욱 센터장은 국내 벤처캐피탈에게도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기업들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피 튀게 경쟁하듯, 우리 투자사들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좋은 평판으로 몸값을 높이는 스타트업들도 늘어나야 하지만, 스타 벤처캐피탈들도 많아져야 한다고 봐요. 한 예로 알토스벤처스는 창업자들 사이에서 투자 받고 싶다는 브랜드를 갖게 됐잖아요. 스타트업만 해외로 진출할 게 아니라 벤처캐피탈도 해외에 진출해 해외 투자금을 끌어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 벤처캐피탈들은 글로벌 빅딜에 잘 들어가질 못해요. 이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임정욱 센터장은 최근 '나는야 호기심 많은 관찰자'라는 책을 통해 라이코스 대표직 시절 때부터 써온 인터넷 기업과 국내외 창업 생태계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 등을 자세히 풀어냈다.

임정욱 센터장은 이웃 나라인 중국의 변화에 감탄 반, 걱정 반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놀랍지만, 성공에 대한 구성원들의 열망이 무섭도록 뜨겁기 때문이다.

“얼마 전 텐센트를 방문했는데 중국 사람들은 정말 잠을 안 자고 일하더라고요. 성공과 돈에 대한 열망이 어마어마 하더군요. 열심히 해서 돈 버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보니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일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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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센터장은 중국인처럼 잠도 안자고 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면서도, 결국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은 새로운 기업을 열심히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대기업들이 할 수 없는 혁신적인 변화를 스타트업들이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과제는 사람을 줄이고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거예요. 조선이나 은행 등 모든 곳이 사람 줄이는 게 목표예요. 고용이 일어날 수 없죠. 새로운 기업들이 많아져야, 도전하다 망해도 괜찮은 창업 문화가 정착돼야 '토스'가 은행처럼 되고, '왓챠'가 넷플릭스나 방송국처럼 될 수 있다고 봐요. 절박한 목표가 있는 친구들을 과감하게 밀어주고,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변화가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