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퍼스트, 금융 이용 소외되는 고령층

뚜렷한 방안없이 이용 격차 심화돼

금융입력 :2018/04/13 06:00

#1 서울시 도봉구에 사는 김정호(68)씨는 은행 거래를 위해 1km 가량을 걷는다. 집 근처에 있던 KB국민은행 창동아이파크지점이 지난 해 사라진 때문이다. 창동지점이 사라진 뒤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쌍문동지점에 가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김 씨는 "매달 각종 공과금을 내기 위해 버스를 타고 두 세 정거장을 간다. 버스비가 아까워 걸으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걷기엔 다리가 아프다"며 "젊었을 때 은행이 곳곳에 있었는데 요새는 잘 안 보인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2 전라남도 해남에 사는 권희동(71)씨는 보험설계사를 통해 모든 보험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최근 보험설계사가 바뀌었다. 생면부지의 설계사인데다 전화 상담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런 저런 업무를 할 수 있다며 스마트폰 사용을 권유한다. 권 씨는 "스마트폰을 아예 쓰지도 않고, 앱같은 거 깔면 돈 나간다고 자식들이 말을 해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고 말한다.

서울 시내를 걷고 있는 노인들.(사진=지디넷코리아)

노인을 위한 금융이 사라지고 있다. 금융업권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에 점차 젊은층과 고령층의 금융 이용 편의성 격차가 벌어지는 추세다. 은행 및 보험업계가 빠르게 모바일과 인터넷 등 비대면 채널에 주력하면서 고령층은 점차 금융 이용에서 소외되고 있다.

■사라지는 은행 점포와 보험 설계사들

이 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은행은 인건비와 건물 임차비를 이유로 점포를 줄여가고 있다. 보험 가입부터 보험료 대납·보험금 청구를 도맡았던 보험 설계사는 모바일 채널에 밀렸다. 작년말 국내 은행의 지점과 출장소를 포함한 영업 점포 수는 6천791곳. 2016년말과 비교해 312곳이 줄어들었다. 1999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최대 감소폭이다.

손해보험보다 상대적으로 상품이 까다롭고 보험금 청구가 어려운 생명보험업계의 전속 설계사 수는 올해 4월 기준으로 12만1천233명으로 전년 12만5천5584명 대비 4천351명 줄었다. 최저를 기록했던 2012년 보험 설계사 수 16만6천967명보다 4만여명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을 중심으로 금융 민원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016년 금융민원 형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연령대 별 민원 비중이 높은 연령은 30대(251.3건)였으나, 40대(174.1건)·50대(137.6건)·60대(108.6건)으로 고연령층 비중이 적지 않았다.

특히 상품이 복잡하고 약관이 어려운 보험에서의 민원 비중이 높았다. 전체 금융권 민원 가운데 보험은 63.7%(생명보험 25.6%·손해보험 38.1%)를 차지했으며, 은행은 11.6%로 집계됐다.

■최고소비자보호책임자는 어디에?

금융업권의 고령층 소외는 금융지주사의 조직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부터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 최고금융소비자보호책임자(CCO·Chief Customer Office)를 둘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를 제외하고는 최고소비자보호책임자를 단독으로 맡고 있는 은행 지주사 경영진은 없다. 하나금융지주는 김희대 상무가 CCO를 역임 중이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브랜드전략이나 소비자전략부서의 책임자가 이를 함께 맡고 있다.

다만 생명보험사 빅3로 꼽히는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은 소비자보호책임자를 둬 운영 중이다.

금감원은 금감원의 소비자보호제도 팀장은 "CCO 선임을 강요할 수는 없다. 모범규준이기 때문이며, 영업과 무관한 업무를 한다면 CCO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만약 준법감시인이 CCO업무를 맡는다더라도 소송과 연루된 일을 수행할 경우에는 소송은 소비자 영업과 관계가 있다고 봐, CCO를 동시에 할 수 없게 한다"고 설명했다.

■시대 역행보다는 금융 공공성 차원 생각해야

디지털과 모바일 플랫폼으로 흐름이 변화고 있는 가운데 대면 채널 무조건적으로 고수하는 것도 어렵다고 업계는 항변한다. 또 은행에서는 어르신 전용 전담 창구를 지점별로 운영 중이며, 쉬운 용어를 쓰는 어르신 전용 전화 상담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일보 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대 역행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금융 접근성에 대한 연령별 공평한 기회 보장과 금융이 갖고 있는 공공성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작년 국내서 벌어진 지급결제행태를 연구했던 한국은행의 금융결제국 결제연구과 관계자는 "최근 모바일 뱅킹과 모바일 카드 이용 실태를 살펴본 결과 연령층 간 이용 격차가 심화되고 있었다"며 "모바일 뱅킹·카드를 쓰면 할인 혜택이 제공되고 있지만 이를 쓰지 않은 고령층은 이 혜택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주 쉬운 사례"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그는 "젊은 층들의 모바일 뱅킹·카드 이용이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고령층의 성장 속도는 미미하다"며 "권장하거나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연령대가 소외되고 있다. 금융접근성 측면과 포용적 금융을 위해 고령층도 이용이 가능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감원도 고령층의 금융 소외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검토 중이다. 보험금 수령 시점이 다가온 고령층들을 위해 보험금 지급에 불편이 없게끔 한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안은 아직 없다. 금감원 보험제도팀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들이 고령층 전용 지점을 운영하곤 있지만 많진 않아 독려 중이다"며 "100세 시대인 만큼 고령층에 대한 보험금 지급 채널의 접근성은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저변 확대는 쉽지 않은게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