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정보공개..."中에 우리 기밀 떠 먹여주는 격"

정부 삼성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논란...업계 "30년 노하우 담겨"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8/04/06 18:03    수정: 2018/04/07 10:29

박병진, 박영민 기자

고용노동부가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를 국민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결정함에 따라, 반도체·디스플레이(반·디) 업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업계는 정부의 결정이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려는 본연의 의도를 넘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 공개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반·디 산업의 핵심 기술이 중국 등 경쟁국으로 넘어가는 게 시간 문제라는 설명이다.

6일 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사장)은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협력사와의 '상생협력데이'에서 "보고서엔 우리의 20년, 30년 노하우가 들어있다"며 "보고서를 공개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토로했다.

삼성 서초사옥. (사진=지디넷코리아)

■ 정부 "영업비밀 누설 아냐" vs 삼성 "기술유출 막을 것"

최근 고용노동부는 충남 아산시 탕정에 위치한 삼성디스플레이 공장과 경기 기흥·화성·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를 결정했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PD가 낸 정보공개 청구를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들은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의 유해인자 노출수준을 측정해 기록한 근로자 보건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며 "설령, 해당정보가 기업의 경영·영업상의 비밀이더라도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고 판결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한편, 수원지방법원에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걸 막으려는 게 아니라,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고용노동부와 삼성 측의 주장은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고용부는 "보고서 공개를 결정한 것이 마치 기업의 영업비밀을 유출하는 것이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에 기업의 영업비밀로 볼 만한 정보가 없다고 판결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 측은 "산재 신청과 관계없는 사람의 정보공개 요청도 받아들일뿐더러 보고서를 등기로 부치면 끝이고 관리가 어떻게 될지, 받은 사람이 어떻게 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보고서엔 경쟁사에 넘어가면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발판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정보가 있다. 산재 인정에 필요한 정보는 얼마든지 제공하겠지만 기술 유출만은 막겠다는 입장"이라고 맞섰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단지. (사진=삼성전자)

■ 업계 "기업 정보공개 신중 기해야" 우려

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단연 기술 유출이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각 업체들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들이 추가적으로 공개된다면 기업들의 핵심 기술 정보들이 무방비로 유출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근로자가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작업장은 6개월에 1회 이상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에는 세부적인 생산 라인 운용계획과 설비 규모, 사용되는 화학제품의 종류 등 핵심 기술정보가 포함된다.

업계는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는 한편, 정부가 기업의 정보를 공개할 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주력인 A사 관계자는 "동종 업계로서 상황을 상당히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다"며 "보고서가 제3자에게까지 공개되면 중국의 경쟁 업체가 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체 B사 관계자도 "이 (업계) 바닥은 '총성 없는 전선'과도 같다. 측정보고서엔 공정 순서, 공장 내부 배치도 등 기업 입장에서 대외비가 가득 담겨있다"며 "업체가 수년간 시행착오 끝에 축적한 노하우를 단시간에 빼앗길 상황에 놓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스플레이 업체 C사 관계자 역시 조심스럽게 정부의 결정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선례가 생겨 후폭풍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중국 등 경쟁 업계에 정보를 떠먹여주는 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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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용노동부가 법 해석을 자의적으로 확대했다는 의견도 있어 주목된다. 고용노동부의 이번 정보 공개 결정은 지난 2월 작업환경측정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대전고법이 판결을 내린 곳은 온양사업장으로,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정보공개를 결정한 기흥·화성·평택사업장과는 별개라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온양은 반도체 후공정 공장으로 비교적 기술의 중요도가 떨어진다"며 "기흥·화성·평택 사업장은 3D 낸드플래시 등을 생산하는 최첨단 공장이 가동되는 곳으로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더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