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생태계, 정부-거래소 같이 키워야"

美 거래소 비트렉스 대표 빌 시하라 단독 인터뷰

컴퓨팅입력 :2018/02/28 15:01    수정: 2018/02/28 15:30

암호화폐(혹은 가상통화, 코인, 토큰) 시장에서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하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거래소를 규제할 게 아니라 오히려 거래소와 협력해 합리적이고 적절한 규제기준을 찾아내는 게 옳은 방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암호화폐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와 같아서 아직 그 누구도 진로와 방향성에 대해 장담할 수 없고, 시중에 나와 있는 암호화폐마다 그 성격과 본질이 천태만별이어서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규제로만은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방식은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의 빌 시하라(Bill Chihara) 최고경영책임자(CEO)는 27일 지디넷코리아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거래소 규제가 지나치면 투자자는 더 불투명한 해외로 빠져나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투자자가 해외로 빠져나가면 국내는 그만큼 손해라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어차피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가 완벽하게 사라질 수 없는 것이라면 정부와 거래소가 머리를 맞대 좋은 시장을 만드는 게 해법"이라고 말했다.

비트렉스는 지난 2014년 설립됐으며 일일 거래금액 기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대형 거래소다. 현재 200여개 암호화폐를 취급한다.

빌 시하라 비트렉스 CEO

국내 거래소 업비트와 제휴해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암호화폐 거래는 세계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로 나가버리면 투자자 보호는 더 어려워지고 암호화폐 산업으로 발생할 경제적 효과도 놓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투자자도 보호하고 국익도 챙기려면 정부와 거래소가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공부하며 협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토큰 성격 천차만별...규제 명확성 확보가 핵심

이날 인터뷰는시하라 CEO는 물론이고 비트렉스의 키란 라이(Kiran Raj) 최고전략책임자(CSO)와 비트렉스와 제휴를 맺는 국내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이석우 대표도 자리를 함께해 ICO 규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라이 CSO는 "코인마다 워낙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규제가 불가능하다"며 "코인별로 맞춤형 규제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의 명성 때문에 대부분의 코인(혹은 토큰)에 대해서도 뭉뚱그려서 암호화폐라는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각각의 토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다. 화폐 기능이 전혀 없는 토큰도 많은데 이를 화폐의 이름으로 규제하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며 산업의 씨를 죽여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 유가증권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토큰도 많은데 이를 주식의 범주에서 규제하면 그 결과 또한 위와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키란 라이 비트렉스 CSO

이런 이유로 현재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CT), 증권거래위원회(SEC) , 금융범죄집행네트워크(FinCEN), 외국자산통제국(OFAC), 국세청(IRS) 등이 ICO와 암호화폐 관련 규제에 관여하고 있다.

ICO와 토큰의 성격에 따라 감독기관과 관련규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토큰의 성격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이를 교통정리할 기준(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상황이고 숙제이다.

라이 CSO는 "ICO 기업들이 자신의 토큰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명확한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업계 목소리가 높다"며 "정부에서 주도해 여러가지 법규가 서로 어떤 관계를 갖는지 교통정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

이석우 대표도 "한국에서도 아예 규정이 없는 것이 큰 애로"라며 "정부에서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고 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금융위에서 지난해 9월 ICO가 유사수신행위와 투기 수요를 부추긴다는 이유를 들어 금지한다고 발표를 했지만, 이 또한 법적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정부가 금지했어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의미 있는 기업들은 해외에서 ICO를 하고 더 불투명한 기업들만 국내에서 ICO를 할 가능성도 있다. 알짜는 해외로 나가고 오직 돈에 눈먼 쭉정이들만 정부 시선을 피해 떴다방처럼 ICO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산업과 투자자 모두 피해만 보는 셈이다.

암호화폐 생태계, 'ICO 기업-거래소-정부-투자자'함께 만들어야

암호화폐 시장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워낙 초기여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사기 ICO를 비롯해 자금세탁 등 불투명한 거래, 그리고 토큰의 실체에 대한 학습 없이 깜깜이 진행되는 묻지마 투자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규제 권한을 가진 정부가 이 시장에 대해 더 디테일하게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사업자와 더 자주 토론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거래소도 최선을 다해 이런 부정적인 요인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정부와의 협력도 불가피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왼쪽부터) 비트렉스 키란 자이 CSO, 빌시하라 CEO, 두나무 이석우 대표

한편 비트렉스의 경우 자체 기준을 가지고 코인별 거래 등록 여부를 심사한다. 현재 한 달에 120 건씩 요청이 오지만 이 기준을 통과하는 것 한두 건이다. 이미 등록된 토큰일지라도 명백한 사기 가능성이 있으면 정부 수사권이 발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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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시하라 CEO는 "거래소의 경우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ICO를 발굴해 투자자에게 연결하며 생태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지금까지 이더리움, 카르다노, 네오 등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비트렉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거래소 노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라며 "정부를 포함해 모두가 힘을 합해 이 생태계를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