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 왜 삼성의 상고신청 기각했나

"특허개혁보다 법적 안정"…애플 승소로 결론

홈&모바일입력 :2017/11/07 14:07    수정: 2017/11/08 06:5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또 한번의 역전 승부를 노리던 삼성전자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6일(현지시간) 애플과 특허소송 중인 삼성전자의 상고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짤막하게 판결했다.

이로써 1심부터 계속 엎치락 뒤치락했던 두 회사간 2차 특허소송은 사실상 애플의 승리로 최종 마무리됐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다. 밀어서 잠금 해제를 비롯한 이번 소송 쟁점들이 미국 정부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특허제도 개선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 대법원, 철저한 상고 허가제…수용비율 5% 남짓 불과

이번 소송은 밀어서 잠금 해제를 비롯한 애플 실용 특허권 세 개가 쟁점이 된 두 회사간 2차 특허소송이다. 2014년 열린 1심에서 패소했던 삼성전자는 2016년 2월 항소심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애플 측의 요구로 다시 열린 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시 항소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승부의 추가 또 갈렸다. 이에 삼성전자가 올 3월 대법원에 상고신청서를 접수했다.

우리와 달리 미국 연방대법원은 철저한 상고 허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해 동안 접수된 상고 신청 중 대법원 법정을 밟는 사건은 5% 남짓한 수준에 불과하다.

데이터 태핑 특허권 개념도. 165번과 167번이 별도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애플 특허권의 핵심이다. (사진=미국 항소법원 판결문)

미국 법조계는 오래 전부터 ‘사실관계를 다투는 재판은 두 번으로 충분하다’는 기조를 유지해 온 때문이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은 하급 법원의 법 적용에 심각한 흠결이 있거나 판례를 변경하는 등의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한해 상고를 허가해주고 있다.

삼성이 디자인 특허권이 쟁점이던 1차 특허소송 때 상고 신청에 성공했던 건 ‘달라진 상황에 따라 법적용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때문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디자인 특허 관련 상고심을 연 것은 120여 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1차 소송에 비해선 판례 변경 등의 강력한 요인은 적은 편이었다. 상대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움직일 여지가 크지는 않았단 의미다.

■ 법적 자명성-배상기준 등 쟁점 회피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상당한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몇 년 동안 ‘특허권 남용’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보였던 미국 정부 기조와 살짝 상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삼성의 상고신청 이유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삼성은 지난 3월 미국 연방대법원에 상고신청을 하면서 크게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법적 자명성 부분이었다. 이 쟁점과 관련된 조항이 미국 특허법 103조다.

미국 특허법 103조는 “그 발명이 이루어질 당시 선행기술과의 차이가 그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기술을 가진 자에 의해 자명한 것이라면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밀어서 잠금해제나 단어 자동완성, 데이터 태핑 같은 애플 특허권은 이 조항에 해당된다는 게 삼성 주장이다.

둘째. 전원합의체 진행과정. 특허 침해 배상 판결을 받기 위해선 특허침해 행위와 회복할 수 없는 피해 간에 긴밀한 인과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항소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부분을 간과했다는 게 삼성 주장이었다.

미국 대법원의 대법관 회의실. (사진=미국 대법원)

셋째. 침해 범위. 특허 청구항 전부를 침해했을 경우에 한해 침해가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이전 판례였다. 하지만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는 게 삼성 주장이었다.

물론 이 세 가지를 놓고 사실관계를 다툴 경우엔 상고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사실관계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기관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이 상고신청 이유로 제시한 것들은 특허 개혁과 관련해 중요한 화두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따라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 사안을 다룰 경우 이 부분이 새로운 쟁점으로 대두될 수도 있었다. 이번 결정이 다소 아쉽게 받아들여지는 건 그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나오기 전 ‘삼성과 애플의 두 번째 재판은 역사적인 특허개혁을 완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사진=미국 대법원)

당시 포브스는 삼성과 애플 간의 소송 진행과정을 소개한 뒤 “(2차 소송 같은 경우)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와 마찬가지로 실용 특허 문제도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길 원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포브스는 대법원이 삼성의 상고신청을 받아들일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고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특허제도 개혁 문제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소송 쟁점이 특허권 근본 흔들 정도 아냐" 판단한 듯

그렇다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왜 이런 가능성을 수용하지 않았을까? 대법원은 상고 신청을 수용하거나 기각할 때는 별도의 판결문이나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론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번 소송의 쟁점들이 특허법의 근본을 뒤흔들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삼권분립이 철저한 미국에서 대법원은 입법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까지 건드리는 건 극도로 조심한다. 자칫하면 영역침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삼성 승소 판결을 한 디자인 특허 소송 때도 특허법 289조는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절묘한 판결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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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상고신청 기각 결정 역시 이런 부분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쟁점이 된 애플 특허권이 완벽하게 무효가 된 상황이 아닌 이상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은 현행법의 기준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특허권 남용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 진한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