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배아 호르몬결핍 결과' 이론 뒤집혀

"COUP-TFII 단백질, 여성으로 분화에 작용"

과학입력 :2017/10/02 10:34    수정: 2017/10/02 14:33

생물학에서 여성을 '기본' 상태로, 남성을 '추가 발달 과정을 거친' 상태로 간주했던 포유류 배아기의 성 분화 전제를 뒤엎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격주간지 사이언스뉴스는 지난 8월 18일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여성 쥐 배아에서 남성 생식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COUP-TFII'라 불리는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고 당시 온라인판 뉴스를 통해 보도했다. [☞원문보기]

초기 배아에는 울프관(Wolffian duct)과 뮬러관(Mullerian duct)이라 부르는 조직이 존재한다. 남성에게 울프관은 부고환, 정관, 정낭을 포함해 사정에 필요한 부분으로 발달한다. 여성에게 뮬러관은 난관, 자궁, 질로 발달한다.

포유류 배아 성 분화에 남성으로 분화하는 요인이 충분하면 남성으로, 그렇지 않으면 여성으로 분화한다는 생물학계 정설이 뒤집혔다. 이미지는 기사와 무관함. [사진=Pixabay]

알프레드 조스트(1916-1991)의 가설은 이런 현대 포유류 성 분화 이론의 일부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성 발달에 호르몬이 영향을 주는 방식을 연구한 프랑스 내분비학자다. 그는 오늘날 항뮬러관호르몬(AMH)이라 불리는 것을 발견했다.

조스트는 자신의 연구에서, 고환이 테스토스테론과 AMH 호르몬을 만들어, 울프관을 유지하고 여성조직 발달을 억제한다고 봤다. 그는 해당 호르몬이 결핍되면 울프관은 퇴화하고, 배아가 여성으로 발달한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게 교과서에 실린 정설이 됐다.

가설만 놓고 보면, 배아가 남성으로 발달하지만 않으면 여성으로 발달할 것이라 전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화하면 호르몬 작용에 따라 배아의 울프관이 퇴화한 여성이 되든지, 울프관이 유지돼 뮬러관이 퇴화한 남성이 되든지라는 얘기다.

2017년 10월 현재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는 "고환결정인자(TDF), 뮬러관억제인자(MIF, AMH를 가리킴), 테스토스테론, 3가지가 작용해 배아의 생식원기가 남성으로 성분화되고, 이것이 작용하지 않으면 여성으로 성분화된다"는 기존 학계 정설을 인용하고 있다. [☞참조링크]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된 성의 결정과정 설명 도안. 남성으로의 성분화 요인이 작용하지 않으면 여성으로 성분화된다는 기존 학계 정설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사이언스뉴스에 소개된 미국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NIEHS)의 연구는 배아가 여성으로 발달하는 데 별도 인자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담고 있다. 남성으로 발달하지 않는 것만으로 여성으로 발달하는 조건이 충족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NIEHS의 생식 및 발생 생물학자 험프리 야오(Humphrey Yao)와 동료들은 당초 조직들이 쥐 배아의 관 바깥쪽에서 그 통로 내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외부 층에서 생산되는 COUP-TFII 단백질이, 통로 내부와의 소통에 관여한다고 추정했다.

그래서 연구진은 COUP-TFII 생산 유전자를 제거해 초기 암컷 쥐 배아의 생식조직 통신을 차단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울프관이 뮬러관과 함께 암컷 쥐에게 남아 있게 됐다. 교과서에 나온 조스트의 가설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초기 배아 사진. 이미지는 기사와 무관함. [사진=Pixabay]

연구진은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쥐의 수컷 조직이 계속 유지됐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COUP-TFII 제거가 난소를 고환처럼 테스토르테론 생산처로 바꾸는 것인지 확인했지만, 아니었다. 추가 실험으로, 테스토스테론은 수컷 조직이 유지된 원인이 아님을 확인했다.

연구진의 판단에 따르면 COUP-TFII가 암컷의 울프관을 퇴화시키는 생화학적 인자다. 이 단백질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퇴화 현상은 벌어지지 않고 울프관은 남아 있게 된다. 다만 COUP-TFII 단백질 생산과 활동을 유발하는 신호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사이언스뉴스는 "COUP-TFII는 아마 인간을 포함한 다른 포유류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며 "연구자들은 생식 계통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서 COUP-TFII의 결함을 살펴야 한다"는 하버드의과대학 생식생물학자 패트리샤 도나호의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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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호에 따르면 여성이 드물게 울프관 흔적(remnants)을 지니는데 그게 때로는 종양을 유발한다. 그는 반대로 남성이 여성 생식 기관을 지니기도 하는데 이들은 불임이나 낭종같은 다른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COUP-TFII는 'COUP전사인자2'의 약어다. 생물학에서 DNA로부터 RNA를 만드는 과정을 전사(transcription)라고 표현하고 여기에 필요한 단백질을 전사인자라 부른다. NR2F2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NR2F2 유전자로 부호화된, 핵수용체(NR) 서브패밀리2의 그룹F의 멤버2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