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투자 SK,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이유

의결권·정보접근 제한…소송 등 변수도 남아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7/09/29 11:27    수정: 2017/09/29 19:03

도시바가 28일 SK하이닉스 등이 포함된 미국 베인캐피털 컨소시엄과 반도체 사업 매각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향배가 주목된다.

특히 도시바가 SK하이닉스에만 따로 ▲10년간 의결권 15% 초과 불가 ▲기밀정보 접근 불가 등의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SK가 인수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얼마나 될 지가 관전포인트다.

도시바가 28일 SK하이닉스에만 따로 계약 조건을 내걸었단 점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회사가 인수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사진=TOSHIBA)

■ 투자는 허락하지만…정보 접근은 안 된다?

도시바는 28일 SK하이닉스, 애플, 델 등이 포함된 '한미일연합'과 도시바메모리(TMC)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도시바와 호야(HOYA) 등 일본 측이 의결권의 과반(50.1%)을 갖는 구도이며 매각 총액은 약 2조 엔(20조원)이다.

도시바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베인캐피털이 주도하는 한미일연합 컨소시움과 도시바메모리(TMC)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면서 "그러나 SK하이닉스의 경우 도시바메모리의 기밀 정보 접근이 제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SK하이닉스엔 전환사채(CB) 권리가 부여돼 있지만, 향후 10년간 도시바메모리 또는 판게아의 주식 15%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면서 "SK하이닉스가 전환권을 행사하려면 각국의 경쟁당국으로부터 반독점심사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도시바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향후 10년 동안 도시바메모리나,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 '판게아'의 의결권 지분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또 내부 정보에 대한 접근도 완전 차단된다.

즉, 도시바가 반도체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의 도움은 받되, 내부 정보·기술 유출은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바가 일본 내 여론을 고려하면서 각국의 반독점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고민 끝에 마련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각국의 반독점심사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도시바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시바 인수전에서 승기를 든 것처럼 보이는 SK하이닉스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업계는 이런 이유 때문에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득은 크지 않고,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대종 KB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참여로 얻을 수 있는 단기적인 성과는 투자수익에 그칠 것"이라며 "도시바의 반도체기술이나 생산시설을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장기적인 관점서 봐야할 것"이라며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 미국 웨스턴디지털(WD) 등이 도시바를 인수해 낸드 산업 경쟁이 악화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만찬에서 취재진에게

■ 최태원 회장 "도시바…'인수' 아닌 '투자'로 생각"

SK하이닉스는 당초 도시바메모리 상장 시 자본 이득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도시바가 정한 10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하면 투자 대비 효율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로 남았다. 당장 낸드플래시 공급을 받거나 기술 확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서 개최된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만찬에서 취재진에게 "(도시바 인수는) '인수'가 아닌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돈을 주고 산다는 개념이 아닌, 업계가 좀 더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아직 (인수 절차가) 모두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다 축하받고 끝날 만한 일은 아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나씩 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WD와의 법적 문제도 걸려있고, 각국의 반독점심사도 남아있어 도시바 인수 문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란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한편, 도시바와 한미일연합은 매각 작업을 내년 3월 30일까지 끝내기로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금까지는 도시바가 매각처로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인수전의 큰 관심사였다면 이제 도시바가 매각 절차를 어떻게 하루빨리 마무리짓느냐가 인수전에서 중요하게 됐다"면서 "각국 반독점심사와 WD 소송이 장애물로 남아있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독점금지법 심사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특히 중국에서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소송전을 불사하고 있는 WD 역시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WD는 국제중재재판소(ICA)에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중재해달라는 내용의 새로운 '매각 일시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힌 상태다. 앞서 WD는 세 차례에 걸쳐 ICA에 도시바를 제소한 바 있다.

현재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도시바다. 만약 내년 3월 말까지 도시바메모리 매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는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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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는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하겠다고 결의안을 발표한 지 딱 일주일만에 매각 계약을 서둘러 체결했다. 이는 현재 도시바가 지난해 미국 원전 자회사 손해 이후로 자금 상황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을 방증한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는 지난 8월 채무 초과로 도쿄증권거래소 1부서 2부 종목으로 강등된 바 있다"며 "내년 3월까지 매각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따로 자금을 융통할 곳도 없어 곧 도산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