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전문가들 "제로레이팅…콘텐츠 생태계 악화시킬 것"

인터넷입력 :2017/09/15 19:17    수정: 2017/09/16 09:22

통신사가 자회사가 서비스하는 콘텐츠에 대해서만 이를 소비하는 사용자들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제로레이팅(zero rating)'이 장기적으로 콘텐츠 생태계 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15일 다자 간 인터넷거버넌스협회(KIGA) 주최로 열린 2017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에서는 '제로레이팅, 과연 통신비 인하의 정답인가? - 시장경쟁질서 측면에서 살펴 본 제로레이팅'을 주제로 한 워크숍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발제 및 사회를 맡은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와 패널로 참석한 호서대 류민호 교수, 한국소비자원 이금노 연구위원, 네이버 이상협 부장은 현재 통신사에서 제공 중인 제로레이팅 서비스 현황을 소개하며 이런 방식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통신사, 자회사에 데이터 비용 받아"

사용자가 특정 콘텐츠 이용시 안 내도 되는 데이터 사용료는 누가 부담하게 될까?

이날 발제를 맡은 박지환 변호사는 현재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통신사들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회사들 간 금전 거래 현황을 발표했다. 해당 내용은 대규모기업집단현황 공시 내용(올해 2분기 기준)을 참조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SK텔레콤 자회사인 SK플래닛은 오픈마켓 11번가로 발생하는 데이터 비용을 SK텔레콤 측에 소비자 대신 납부하고 있다. SK플래닛은 SK텔레콤 측에 데이터 판매수익으로 80억900만원을 지불했다.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다. LG유플러스 자회사 미디어로그는 LG유플러스 가입자에 한해 시간 당 요금제 체제를 운영 중에 있다. 3시간에 1천100원, 24시간에 2천750원의 요금을 내면 데이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미디어로그는 통신서비스 이용료로 165억1천500만원을 지불했다.

KT의 경우 앞서 두 곳과 달리 통신사에서 콘텐츠 자회사에 콘텐츠 사용료를 지불한다. KT는 음원 콘텐츠 등 명목으로 지니뮤직에 95억9천600만원을 지불했다. KT 가입자는 월 9천600원에 지니뮤직 스트리밍 서비스와 함께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박지환 변호사는 "제로레이팅이 통신비를 아껴주는 좋은 정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이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며 "계열사 관계를 살펴볼 때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오픈넷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호서대학교 류민호 교수, 한국소비자원 이금노 연구위원, 네이버 이상협 부장.

■"글로벌 경쟁력 악화 우려…정부 규제 필요"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 호서대 류민호 교수는 제로레이팅이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통신사들이 근본적으로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왜 내놓는지 질문하고 싶다"며 "이들이 제로레이팅을 제공하는 첫 번째 목적은 통신 사업 모델이 한계에 부딪쳐 콘텐츠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망이라는 자원을 활용해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자회사 등 콘텐츠 사업자와 협력하면 이들이 통신비를 내리지 않고도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면서 대신 사업자들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결국 통신사가 망으로 획득한 시장 지배력을 콘텐츠 영역에 전이시키려는 것인데 콘텐츠 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인지는 매우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네이버 이상협 부장은 제로레이팅이 확대되기 전에 정부에서 불공정 경쟁의 소지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협 부장은 "망 중립성 원칙에 따라 업체 간 차별 없이 서비스를 소비자에 선보일 수 있고, 지속적인 경쟁이 이뤄질 수 있게 보장돼야 한다"며 "제로레이팅이 특정 사업자나 소수 자본력이 상당한 국내외 기업에 유리한 틀로 작용해 시장 구조를 왜곡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또 "현재 국내에서는 자회사나 계열사 간 협업 차원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 전이 과정이 국내 시장의 여러 사업자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 있고, 많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제로레이팅에 대해 사후 검토한다는 입장인데 시장 규칙은 한 번 정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원 이금노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제로레이팅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살펴야 한다"면서도 "통신비 인하의 대안인지는 다른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단기적으로 볼 때 제로레이팅이 특정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한다고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지 않으면 무조건 규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다만 장기적으로 인터넷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고, 통신비 상승 요인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사실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로레이팅으로 인한 데이터 비용 면제 등 소비자 후생이 통신비 인하의 답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봤을 때 소비자 후생이 일반 소비자 통신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는지를 일차적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로레이팅에 대한 느린 정부 반응을 지적하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박 변호사는 "한국에서 제로레이팅 관련 구체적인 논의는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번 워크숍에 통신사 입장을 대변하는 패널은 초청하지 못했는데 함께 논의할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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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위원은 "최근 방통위에서 관련 고시를 만들었지만 막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시 적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며 "통신비가 장벽인 소비자들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 국가가 좀더 공공 차원에서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관련 논의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류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 망 중립성 관련 기본 규칙이 법제화돼 있지만 한국은 가이드라인이라는 어중간한 형태로만 관련 규칙이 존재한다"며 "유럽이나 미국처럼 시정 당국에서 감시를 통해 문제가 있을 경우 언제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국도 개입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