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엔 당근, ICT산업엔 채찍만?

4차혁명 말하면서 ICT정책은 20세기 수준

방송/통신입력 :2017/07/12 10:44    수정: 2017/07/12 10:44

진통 끝에 11일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취임했다. 여야가 청문보고서 채택을 놓고 대치 상황으로 가는 듯 했지만 조기에 합의에 이르면서 유영민호(號)가 출범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첫 미래부 장관 취임을 바라보는 ICT업계의 표정은 밝지만 않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이를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지만 과학기술은 ‘진흥’, ICT 산업은 ‘규제’로만 정책의 방향성이 짜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부가 4차 산업혁명의 주관부처로 결정되고, 오는 8월 출범하게 될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미래부 장관이 대통령비서실의 정책실장과 함께 부위원장을 맡게 되는 등 역할과 비중이 ‘창조경제’ 주무부처였던 이전 정부와 비교해서도 결코 작지 않다.

여기에 국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되면 미래부에는 3차관에 해당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새로 만들어지는 등 조직체계도 강화된다.

4차 산업혁명 주관 부서인 미래부 장관에 유영민 포스코경영연구소 사장이 내정됐다. (사진=뉴스1)

■ ICT는 5G·IoT만 해당?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기반 인프라인 5G, 사물인터넷(IoT)이 등장할 때만 ICT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미래 육성을 위한 투자 지원 규제완화가 언급될 때는 대부분 과학기술 분야다.

ICT 업계의 한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겠다고 하면서 그 기반이 되는 ICT 정책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언급이 없다”며 “과학기술은 현 정부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단기성과에 급급해 하지 않고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데 ICT와 과학기술 정책을 동일시 하겠다는 것인지 통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ICT 업계가 ‘홀대받고 있는 것 아니냐’, ‘ICT 콘트롤타워 기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곳곳서 감지된다.

새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에는 ICT와 과학기술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수석 자리가 없어졌고 대신 과학기술보좌관이 신설됐다. 그동안 미래전략수석실에서 11명이 해왔던 일은 과학기술보좌관과 경제수석실의 산업정책비서관 아래 각각 행정관 1명이 담당하게 됐다. 산업정책비서관도 산업부 출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수석실에 ICT와 과학기술을 담당하기 위해 11명이 파견됐었다”며 “절반씩 업무를 담당했었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각각 1명으로 줄어든 것이지만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보좌관이 신설됐기 때문에 ICT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민주당은 과거 MB정부에서 정통부를 해체하고 관련 업무 상당수를 산업부로 이관해 지식경제부를 출범시킨 것을 놓고 ICT 경쟁력을 상실한 잃어버린 9년이라고 비판해왔다”며 “그런데 미래수석실을 없애고 산업부 출신의 산업정책비서관 아래 ICT행정관 한 명만을 두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또 최근 임명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상임위원과 후보자가 결정된 위원장 인사에서도 ICT 업계에 대한 새 정부의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방통위의 주요 업무가 방송 진흥과 규제 이외에 통신규제와 개인정보보호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대통령과 여당이 임명한 상임위원들이 모두 방송 미디어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 대통령비서실과 정부조직, 방통위 인사를 지켜보면 ICT 산업에 대한 고민이나 철학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로 대비하겠다면서 ICT는 인프라만 서둘러 구축하라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 4차 산업혁명 언급하면서 ICT 정책은 20세기

유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과학기술과 함께 미래성장의 또 다른 한 축인 건강한 ICT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며 먼저 5G, IoT 등 네트워크 고도화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렇게 고도화된 인프라에 빅데이터 체계 구축, 인공지능 및 양자정보통신 전문인력 양성, SW 필수교육, 블록체인 신기술 개발 등에 집중하겠다는 게 유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또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정보화 교육을 강화하고 모든 국민이 초연결시대의 고품질 방송통신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통신요금 부담을 낮추겠다”고 강조했다.

미래 산업의 핵심 키워드를 언급하면서 적극적인 진흥 육성정책을 펴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과연 이 가운데 정부나 소관부처로서 미래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또 관련 예산은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를 감안하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 산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기업의 규제 허들을 낮춰주는 등 앞으로 어떻게 진흥과 규제를 하겠다는 방향성만 제시하면 된다”며 “인력 양성이나 서비스 체계 구축, 신기술과 콘텐츠 개발 등은 정부가 언급할 일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5G, IoT 네트워크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면서도 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통신사에게는 통신비를 낮추라는 초법적 주문을 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SW 필수교육 역시 미래부가 소관부처가 아닌데 어떻게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 과학기술엔 당근 ICT엔 채찍만

유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4차 산업혁명 제1의 정책 아젠다로 ‘창의적·도전적 연구환경 조성’을 내세우면서 ▲기초연구 지원 대폭 확대 ▲청년여성 과학기술인 안정적 연구 환경 조성과 정부 간섭 최소화 ▲출연연 PBS 제도개선과 연구개발 목적기관 지정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지원 ▲과학기술혁신 컨트롤타워로서 R&D 예산 조정 주도권을 갖고 유관 부처 협력 추진 ▲결과 중심의 연구 평가제도 개선 ▲실패에도 재도전할 수 있는 연구문화 정착 등 당근책들을 열거했다.

하지만 이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유 장관이 언급한 ‘건강한 ICT 생태계 구축’에도 꼭 필요한 정책들이다. 지난 두 정부 동안 ICT 산업에 대한 홀대로 상실한 경쟁력 회복을 위해 업계에서 요구해 온 정책들이기도 하다.

IC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왜 ICT 정책에서는 과학기술과 같이 빅데이터, 인공지능, 양자정보통신 연구 지원 확대, 정부 규제 최소화나 법제도 지원, 실패해도 용인될 수 있도록 유관부처와 재창업 지원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ICT는 20세기 CDMA 상용화 때처럼 정부가 인력을 육성하고 개발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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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장관은 지난 4일 인사청문회에서 ‘우리나라 ICT 융합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란 서면질의에 "IT산업 경쟁력 지수는 66개국 중에 2007년 3위→2009년 16위→2011년 19위로, UN 전자정부 발전지수는 190개국 중에서 2012년 1위→2014년 1위→지난해에는 3위로 하락했다"며 “ICT 등 인프라는 과거 우리가 잘 해왔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5G, IoT 등 새로운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답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에서 ICT가 해야 할 일은 인프라 구축만 서둘러 하고 이를 국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요금만 인하해야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ICT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면서 당근은 없고 채찍만 들고 있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