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우버, '허핑턴의 마법' 통할까

전기작가→언론사 사주…'CEO 공백' 우버 개혁 주도

인터넷입력 :2017/06/19 16:10    수정: 2017/06/19 16:2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잊져지는 듯했던 아리아나 허핑턴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로 미국 미디어업계의 큰 손으로 군림하던 허핑턴이 이번엔 흔들리는 우버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현재 우버는 안팎에서 연이어 스캔들이 터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내 성희롱 폭로, 인도 성폭행 피해자 의료 기록 무단 열람, 자율주행 관련 영업 기밀 유출 등 곳곳에서 대형 사건이 뻥뻥 터지고 있다.

급기야 트레비스 칼라닉 최고경영자(CEO)가 장기 휴가에 들어갔다. 데이비드 본더만 텍사스퍼시픽그룹(TPG) CEO는 여성비하 발언으로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한 때 차량 공유란 새로운 개념을 앞세워 쾌속질주를 했던 우버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진 셈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빨간 불빛’ 앞에 선 우버를 다시 달리게 만들 모범 운전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워싱턴포스트는 허핑턴이 “성공 지상주의 때문에 번아웃(burn-out)된 우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호평했다.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리는 문화 대신 휴식과 복지를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왼쪽)이 트레비스 칼라닉(오른쪽)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씨넷)

■ 그리스 출신 촌뜨기, 케임브리지 첫 외국인 출신 토론팀 회장

아리아나 허핑턴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허핑턴포스트를 통해 미국 미디어 시장의 큰 손 노릇을 했다. 이런 모습만 기억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겐 우버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다소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 태생의 외국인으로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변신이 낯선 모습은 아니다. 물론 이 말 속엔 긍정적, 부정적인 일면이 모두 들어 있다.

잘 아는대로 아리아나 허핑턴은 그리스 아테네 출신이다. 이후 그의 성공 스토리는 다소 통속적인 부분도 있다.

어느날 우연히 사진에서 본 케임브리지대학을 동경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런던으로 이사왔다. 그리고 그 학교에 지원해서 장학금을 받는다.

케임브리지 입학 이후 한 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스 억양이 강했던 그의 영어 발음 때문이었다. 본토 영국 친구들에게 아리아나 스태시노폴로스는 촌뜨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스태시노폴로스는 허핑턴의 결혼 전 이름이다.

허핑턴포스트 시절의 아리아나 허핑턴. (사진=씨넷)

하지만 ‘촌뜨기 그리스 영어’를 구사했던 그는 졸업할 무렵엔 ‘케임브리지 유니언’이란 토론팀 회장을 역임했다. 이 팀이 생긴 이래 영국인이 아닌 사람이 회장을 맡은 건 그가 처음이었다.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한 동안 유능한 전기 작가로 활동했다. 그가 썼던 ’파블로 키파소’ ‘마리아 칼라스’ 등의 전기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렇게 경력을 쌓아가던 허핑턴은 어느날 석유 재벌의 아내로 변신한다. 그에게 ‘허핑턴’이란 성을 선사한 마이클 허핑턴과 결혼한다. 이 때가 1986년이었다.

하지만 ’야심가’와 ‘재력가’의 만남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아리아나는 결혼 11년 만인 1997년 마이클 허핑턴과 결별한다.

마이클 허핑턴과의 결혼 생활은 아리아나에겐 적잖은 발판이 됐다. 뉴욕 상류 사회와 정치계에 엄청난 인맥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무렵까지만 해도 그는 미국 보수의 중심인 공화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 2005년 허핑턴포스트 설립하면서 진보언론 대표로 변신

그리고 2005년. ‘허핑턴’으로 성이 바뀐 아리아나 허핑턴은 또 다른 깜짝 변신을 한다. 미국 진보주의 인터넷 언론의 대명사가 된 허핑턴포스트를 만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는 ‘드러지 리포트’의 진보주의 버전이라 불렸다. 한국의 시민 저널리즘 운동을 주도한 오마이뉴스를 참고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무렵 아리아나와 함께 허핑턴포스트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 조나 페러티였다. 조나 페러티는 요즘 미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미디어인 버즈피드를 창업해 또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이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2011년 또 다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공들여 키웠던 허핑턴포스트를 AOL에 매각한 것이다. 당시 매각 대금은 3억1천500만 달러.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아리아나 허핑턴의 탁월한 사교 능력이 빛을 발한다.

아리아나 허핑턴과 함께 허핑턴포스트를 만들었던 조나 페러티는 이후 버즈피드를 창업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리아나 허핑턴은 2010년 말 팀 암스트롱 AOL CEO와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회동한 뒤 다음 달인 2월에 허핑턴포스트 매각을 성사시켰다.

아리아나는 회사를 매각한 뒤에도 여전히 AOL에서 허핑턴포스트 관련 일을 했다. 그가 우버 창업자인 닐 칼라닉을 알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역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리아나 허핑턴은 2012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기술 컨퍼런스에서 칼라닉과 인사를 했다. 그 무렵 칼라닉은 스타트업인 우버를 막 출범시킨 상태였다.

칼라닉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면서 친분을 쌓았던 허핑턴은 결국 지난 해 우버 이사회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리아나 허핑턴은 우버 내에서 실력자로 떠올랐다. 최근 우버 개혁을 위해 나온 여러 조치들은 상당 부분 아리아나 허핑턴의 아이디어라는 게 외신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지난 주 칼라닉 CEO가 최근 장기 휴가를 떠나기로 한 사실을 공식 발표한 것도 아리아나 허핑턴이었다.

■ 허핑턴의 '힐링 전략'은 흔들리는 우버 새 활력될까

물론 우버 이사로 활동하는 아리아나 허핑턴에 대해선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대학 시절 이래 아리아나 허핑턴은 늘 야심만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리아나 허핑턴이 특유의 사교 능력을 앞세워 칼라닉과 친분을 쌓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물론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허핑턴이 우버의 고질적인 성공 지상주의 기업 문화에 손을 댄 것 자체가 핵심을 건드린 결정이란 평가도 적지 않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아리아나 허핑턴 역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위기에 압도되지 않으면서 그 위기를 잘 다룰 줄 아는 것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기의 순간엔 사람들이 과잉 반응을 하고 어두운 곳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장기 휴가를 떠난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CEO. (사진=씨넷)

실제로 아리아나 허핑턴은 최근 ‘수면 혁명’이란 저술을 통해 “숙면하는 직원이 일도 잘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촌뜨기 그리스 여성에서 케임브리지 토론 그룹 회장으로 변신했던 아리아나 허핑턴. 보수파인 공화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다가 진보 언론인 허핑턴포스트 사주로 변신했던 아리아나 허핑턴.

거침 없이 전진하다가 어느날 ‘번아웃’된 자신을 보면서 ‘수면혁명’을 통해 ‘힐링 전도사’로 변신했던 아리아나 허핑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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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성공 방정식이 지배하고 있던 우버의 구원 투수로 전격 투입했다. 과연 아리아나 허핑턴은 우버 전도사로 또 한번의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이 질문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제3자 입장에선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흔들리는 우버’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예의주시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