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대화로 풀어본 '망 사용료' 갈등 내막

[백기자의 e知톡] ISP "망 사용료 당연" vs CP "너무해"

인터넷입력 :2017/06/01 16:28

페이스북과 SK브로드밴드의 갈등을 계기로 망 사용료를 둘러싼 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통신사로 대표되는 망사업자들(ISP)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국내 콘텐츠 사업자(CP)뿐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구글 유튜브와 같은 해외 사업자들도 당연히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CP들의 입장은 조금 미묘합니다. 일단 일반 사용자들로부터 데이터 비용을 받는 ISP들이 자신들에게까지 망 사용료를 요구하는 건 과하단 입장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낼 순 있지만, 비용이 너무 과하다"는 볼멘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불만은 역차별입니다. 페이스북 같은 해외 사업자들에 비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울상입니다.

그래서 '백기자의 이지톡' 코너에선 망 사용료 갈등 이슈를 한번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이슈는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와 이해관계들이 엉켜있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 인물들 간의 대화체로 풀어봤습니다. 비록 형식은 가상 대화이지만, 가능하면 양쪽 입장을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통신사 “우리는 땅 파서 장사하나”

통신사업자들은 역시 투자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 강합니다. 여기에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 이래저래 '정당한 망 사용 대가'는 꼭 받아야한다는 입장이 강한 편입니다.

가상 인물들 간의 대화를 한번 감상해보시죠.

A: 몇천억, 몇 조원씩 들여 전국에 인터넷 망을 깔아놨는데, 정작 엉뚱한 업체들이 돈을 벌어가고 있어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누가 벌어간다더니, 우리가 딱 그 꼴입니다. 괜한 소리가 아니에요. 국내 이동통신사 1위 SK텔레콤 시가총액이 20조인데, 네이버 시가총액은 27조원이에요. 이게 말이 됩니까?

B: 아예 우리가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을 직접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C: 벌써 해봤어요. 망해서 그렇지. 여하튼 골치 아파요. 골치 아픈 문제는 또 있어요. 데이터 사용량은 늘어나는데 정부에선 기본료를 없애려고 하니, 이만저만 걱정거리가 아니에요. 계란이나 우유 값은 잘만 오르는데 통신비는 올리지도 못하고,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그래도 큰 걱정은 덜지 않았습니까. 미래부의 상호접속료 고시가 개정됐잖아요. 덕분에 접속통신료가 기존 정액제 방식에서 쓴 만큼 내는 종량제 방식으로 전환됐으니까요. 콘텐츠 회사들이 앞으로 늘어나는 데이터 사용량만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테니, 그나마 다행이죠.

B: 아, 그렇군요. 제 아무리 좋은 인터넷 콘텐츠도 망이 없으면 말짱 꽝이지요. 도로가 없는 데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가져다준단 말이오. 앞으로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받은 '통행료'로 기존 회선도 더 보완하고, 5G망 구축에도 쓰면 되겠군요.

C: 속 편한 말씀 마세요. 지금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콘텐츠 사업자들이 정부와 국회, 언론에 뭐라고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십니까? 일반 사용자들한테도 통신비를 받으면서 왜 콘텐츠 회사들까지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계속하고 있어요. 이중과금이라고 아우성입니다. 또 정산 방식이 종량제로 바뀌면서 과도한 비용이 나온다고 울상을 짓고 있어요. 이 비용 때문에 작은 콘텐츠 회사들이 앞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저희에게 돌리고 있는 거 모르세요?

B: 거참, 이해가 안 되는군요. 일반 이용자만 고객인가요? 콘텐츠 회사들도 엄연한 고객인데, 왜 그들에게 이용료 받는 게 이상하단 겁니까. B2C, B2B 사업이 엄연히 다른데요. 그 뿐 아니에요. 콘텐츠사업자들이 발생시키는 데이터 용량 때문에 우리는 매년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망을 구축하고 있어요. 그 돈이 땅에서 솟는 것도 아니고 이기적이기 짝이 없군요. 네이버, 카카오 같은 곳이 이용료를 못 내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요?

A: 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들은 사실 역차별 문제를 더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유튜브한테는 망 사용료를 안 받으면서 왜 한국 회사들만 물어야 하냐는 불만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한 말로, 우리가 받기 싫어서 안 받는 건가요? 유튜브와 협상 때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닙니까. 또 그 땐 이렇게까지 데이터 사용이 늘어날 줄 몰랐고 말이죠.

B: 그럼 유튜브한테도 받으면 되지 않소. 그럼 역차별 이슈도 없고, 돈도 더 벌고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A: 당연히 받고 싶지요. 그런데 계약 기간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또 지금 와서 돈 받겠다고 하면 유튜브가 낼 것 같습니까. 그러다 유튜브 캐시 서버 철수하겠다고 하면, 그 많은 트래픽을 다 국제망을 통해서 들여와야 하는데 이 비용이 얼마란 말입니까. 속도 느려지면 사용자들이 가만있을 거 같으세요?

C: 요즘 페이스북 하는 거 보십시오. 사용자 많아지고 잘 나가니까 유튜브처럼 망 사용료 못 내겠다고 하는데, 이거 쉽게 볼 일이 아닙니다. 페이스북까지 공짜로 해주면 넷플릭스는요, 트위터는요? 다 공짜로 해 달라 할 거 아닙니까. 또 국내 콘테츠 회사들은 왜 우리한테만 받냐고 난리칠 테고. 유튜브 때는 굴욕 협상이었다 쳐도, 페이스북한테는 반드시 망 사용료를 받아야합니다. 한 발도 물러서지 맙시다.

A: 맞습니다. 작년부터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이 시작된 뒤부터 트래픽이 장난 아닙니다. 저희도 서버 증설이 필요한데, 무임승차 시켜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광고도 동영상으로 띄우고, 그러면서 돈은 다 긁어가고 저희가 호구입니까.

■콘텐츠 사업자 “이중과금 부당, 역차별 억울”

콘텐츠사업자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한껏 높아진 이용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도 빠듯한 상황인데, 갈수록 망 사용료 부담은 커지다보니,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겁니다. 해외 사업자들은 그냥 놔두고 만만한 국내업체만 들들 볶는 것도 영 마땅찮다는 입장이구요.

D: 오늘도 사용자들한테 욕 바가지로 먹었습니다. 화질이 엄청 떨어지고 광고만 덕지 덕지 붙였다고 다시는 이용하지 않겠다더군요. 솔직히 저 같아도 유튜브 보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듭니다. 저희 애도 유튜브만 봅니다. 속상합니다, 정말.

E: 정부는 통신사만 애지중지하는 건가요. 누구 좋으라고 상호접속료 고시다 뭐다 해서 우릴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정산 방식을 종량제로 바꿔서 저희를 못 잡아먹어 안 달이냐고요. 사용자들 눈높이가 높아져서 이제 고화질 아니면 안 보는데, 풀HD로 화질을 높이면 저희가 한해에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 아십니까. 이제야 회사가 흑자 태세로 전환됐는데, 거의 100억을 더 내야할 판입니다. 죽으라는 소리지요.

F: E사한테 죄송한 말이지만, 솔직히 저희 회사는 망 사용료 낼 여력은 됩니다. 통신사 말대로 우리나라가 빠르게 통신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도 듭니다. 이중과금 논란이 있긴 하지만, 안정적인 서비스를 해준다면야 비용을 지불하겠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유튜브는 안 내고, 우리만 낸다는 생각이 날 때면 도저히 잠이 안 옵니다. 낼 거면 다 내든가, 안 내도 되면 다 안 내게 해주든지 해야지 이게 뭡니까.

D: 그나마 요즘 제가 위안 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제 친구도 요즘 동영상이 대세라고 해서 동영상 서비스 오픈했는데, 꽃을 피우기는커녕 싹부터 마를 처지더군요. 그나마 저희는 망 사용료가 오르기 전에 기반을 잡았기 망정이지, 이제 시작하는 회사들은 콘텐츠 서비스 꿈도 못 꿀 겁니다. 90년대로 돌아가서 텍스트로만 하는 채팅 서비스를 한다면 모를까 말이죠.

E: 그러니까요. 그나마 저희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저희 인터넷 산업은 어떻게 되라는 말인가요. 유튜브, 페이스북은 규제도 잘 안 받고, 돈도 덜 내고, 세금은 제대로 내는지 알 수도 없고, 사용자들은 자꾸 외산 서비스만 찾는데 저희는 동네북도 아니고 이러다 저희마저 사라지면 그 다음은 누가 있을까요.

F: 4차 산업혁명이다, 글로벌이다 떠들지만 말고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회사들과 싸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통신사들 우리나라 말고 해외 가서 뭐 성과 낸 게 있습니까. 다들 쭉 쑤고 온 거 그나마 우리 콘텐츠 회사들이 조금씩 성과 내는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이제 안방 시장에서마저 역차별 당하고 이리저리 물어뜯기고 있으니 정말 화가 납니다. 나중 가서 후회하면 뭐합니까.

D: 통신사들, 어렵다어렵다 괜히 불쌍한 척 하는데 단통법 때문에 영업이익 늘고 신사업 벌여서 매출 성장하고 있잖아요. 일반 사용자들한테도 돈 받고, 저희한테도 수백억씩 챙기고 양심이 너무 없어요. 다른 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솔직히 아무리 잘 깔아놓은 통신망도 우리 같은 콘텐츠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같이 살 궁리를 해야지, 지금 정부나 통신사들 하는 거 보면 자기 혼자 살겠다는 거 같아요.

관련기사

이들의 열띤 공방을 옆에서 들은 정부 관계자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마도 이렇게 달래지 않을까요?

정부: 여러분들 불만과 고민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달까지 서로 의견 교환한 거 기억하고 있지요? 올해 안에는 양쪽 의견을 바탕으로 데이터 비용 정산에 대해 보다 합리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내놓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런데 사실 저희는 문재인 정부 들면서 저희 부처가 어떻게 될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일 안 한다는 얘긴 아니고요, 조금만, 올해까지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