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사라지는 시대…인류의 미래는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월터 모스버그의 마지막 칼럼

데스크 칼럼입력 :2017/05/26 11:17    수정: 2017/05/26 15:1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개인용 컴퓨터 쓰는 게 너무 어렵다. 그리고 그건 여러분의 잘못은 아니다.”

1991년 10월 17일. 중견 IT기자 월터 모스버그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칼럼을 발표한다. ‘퍼스널 테크놀로지’란 기명 칼럼의 출발을 알리는 글이었다.

첫 칼럼은 ‘PC 걱정을 그만하고 최대한 많은 걸 얻어내는 법(How to stop worrying and get the most from you PC)’이었다. 이 칼럼엔 PC와 각종 IT 기술들을 직장과 가정에서 좀 더 잘 활용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그의 야심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IT 칼럼니스트 월터 모스버그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한 첫 칼럼.

그로부터 26년. 월터 모스버그는 최고 IT 기자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흔쾌하게 인정했던 기자 중 한 명이었다. 또 그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던 탁월한 기획자이기도 했다.

■ 인간의 직관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시대

모스버그가 25일(현지시간) IT매체 리코드에 고별 칼럼을 올렸다. 이미 지난 달 ‘6월 은퇴’를 선언했던 터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이상 주간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는 일은 없을 것이란 공언은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스버그는 첫 칼럼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고별 칼럼’을 시작했다.

“개인 기술은 대체로 쓰기 매우 쉽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그건 여러분 잘못은 아닌다.”

모스버그는 단순히 자신의 첫 칼럼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런 화두를 던졌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대다수 기기들은 예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사용법이 간단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신기술들은 일반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이를테면 가상현실(VR) 기기를 사용하거나, 아마존 알렉사 같은 음성인식 비서를 활용하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다.

월터 모스버그가 리코드에 올린 마지막 칼럼.

떠나는 모스버그가 주목하는 건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이다. 앰비언트 컴퓨팅이란 인간의 직관에 의해 작동하는 컴퓨터를 의미한다. 음성인식 기술 보급이 확대되면서 자주 거론되는 ‘제로 UI’ 처럼 인간과 컴퓨터 간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모스버그는 최근 주요 IT기업들의 행보를 토대로 앰비언트 컴퓨팅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두뇌로 각종 증강현실(AR) 기기를 작동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애플은 침 같은 것을 삽입하지 않고도 당뇨병 환자의 포도당 수치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구글은 아예 ‘AI 퍼스트’를 선언했다. 앞으로 모든 구글 서비스를 AI로 작동시킬 수 있도록 하겠단 야심이다.

모스버그는 이런 주요 ‘앰비언트 컴퓨팅’들이 10년 내에는 실현될 것으로 내다봤다.

■ 보안과 독점 비롯한 부작용에 대한 경고

하지만 그가 ‘사라지는 컴퓨터’(The Disappearing Computer)란 마지막 칼럼에서 얘기하는 건 앰비언트 컴퓨팅이 만들어낼 멋진 신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앰비언트 컴퓨팅의 어두운 면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사생활 침해 위협부터 각종 보안 우려까지 챙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란 얘기다. 앰비언트 컴퓨팅 시대가 되면 원격으로 누군가 내 집을 잠궈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가 앰비언트 컴퓨팅 시대를 주도할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진단한 내용도 흥미롭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애플은 다섯 업체 중 가장 강력하다. 최근엔 AR, 자율주행차, 헬스케어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엄격한 프라이버시 정책 때문에 머신러닝에 요구되는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한 무대에 오른 스티브 잡스(왼쪽에서 세 번째)와 빌 게이츠(맨 오른쪽).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은 건 월터 모스버그(맨 왼쪽)였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영상 캡처)

MS는 장기인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경험을 하드웨어와 결합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광고가 기본 비즈니스 모델인 구글과 페이스북은 외부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다섯 중에선 아마존이 유일하게 하드웨어 성공작을 내놨다. 바로 킨들이다.

모스버그는 더 이상 이들의 제품을 리뷰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들이 어떻게 다음 시대를 열어갈 지를 면밀하게 살펴보겠다는 말로 칼럼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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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시대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모스버그는 ‘PC(로 대표되는 IT기기)의 종말’로 함께 멋진 은퇴를 선언했다. 현역 시절 멋진 기사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멋진 퇴장으로 박수를 받았다.

그는 고별 칼럼을 통해 “국가나 세계는 (애플, MS 같은) 과두체제 지배자들이 지나치게 강해진 건 아닌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 권고는 앰비언트 컴퓨팅 시대를 앞둔 IT업계와 국가가 새겨들어야 할 얘기인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