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본질은 융복합과 혁신"

28년 NASA 근무한 신재원 박사

인터넷입력 :2017/05/24 18:25

손경호 기자

"4차 산업혁명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때문에 저는 이런 변화를 '21세기 이노베이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여전히 애매하다.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가 어렵다.

누군가는 공장 내 여러 공정을 자동화 하는 스마트팩토리를 그렇게 부른다. 그런가 하면 3D프린팅 기술이 이끈 제조업 혁신, 딥러닝의 등장으로 비약적으로 발달한 인공지능(AI) 기술의 산업화 등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8년 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한 신재원 국장의 눈에 비친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융복합'이다.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기보다는 이미 나온 기술들을 어떻게 잘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해졌다는 메시지다.

신 국장은 2008년부터 NASA 항공부문 국장으로 기술개발 관련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24일 방한한 신 국장은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된 '이노베이션 코리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전까지 산업혁명이 어떤 큰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어떤 한 두 가지 기술이 다른 산업에 혁명을 불러온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보다는 21세기형 이노베이션이라는 말이 지금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적당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NASA에서 28년 간 근무하면서 항공부문 기술 개발 관련 행정업무를 총괄해 온 신재원 국장. 그는 4차 산업혁명을 21세기 이노베이션이라고 정의하면서 융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드론-엘리베이터로 본 이노베이션

NASA 출신답게 그가 첫번째 예로 든 것은 드론이다. 드론에는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에 더해 항공역학, 수직이착륙, 컴퓨터, 이미지 처리, 통신, 배터리, 소프트웨어 등 여러가지 기술들이 조합돼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냈다. 앞서 산업혁명에서는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의 등장이 있었다면 지금은 기존 기술들을 어떻게 잘 조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에서만 앞으로 3년 내에 700만대의 소형 무인항공기(UAS)가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중 60%가 취미용이라면 나머지 40%는 배달, 미디어, 농업, 각종 조사 등 여러 산업분야에 폭넓게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신 국장은 "1950년대 제트엔진이 나온 뒤 전 세계 여객기 수가 2만3천대에 이르기까지 60년이 걸렸지만 소형 UAS를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노베이션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할까? 그는 NASA에서 근무했던 경험과 산업현장에서 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먼저 본질을 꿰뚫는 정확한 질문을 던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코퍼레이션의 자회사이자 글로벌 엘리베이터로 유명한 오티스의 혁신을 설명했다.

오티스 젠2 엘리베이터. 머신룸을 없애고 케이블 대신 납작한 플랫벨트를 써서 혁신을 이뤘다.(자료=오티스)

과거 엘리베이터는 반드시 건물 꼭대기 층에 커다란 머신룸(기계실)을 둬야했다. 엘리베이터를 끌어올리고 내리는 일을 하기 위해 공간을 낭비해야했던 것이다.

신 국장에 따르면 당시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리서치센터 소장은 오티스측에 머신룸을 없애라고 주문했다. 황당해 보이는 이런 질문에 대해 프로젝트팀은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과거 같았으면 엘리베이터 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팀이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전기모터 성능을 20%올리고, 소음은 10% 줄일 것, 강철케이블을 새로운 재질로 만들어 강도를 20% 높이고, 무게는 10% 줄일 것 등 각자 전문분야에서 개선과제를 수행한 뒤에야 모여서 이들을 통합시키려고 했다.

반면 머신룸을 없애라는 미션을 주자 기술자들은 공통의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만해도 무겁고 구부리기 힘들어 효율성이 떨어졌던 꽈배기 모양의 강철케이블을 개선했다.

강철케이블 대신 평평한 강철벨트(steel flat belt) 형태로 만들어 구부릴 수 있는 능력(bending radius)을 10분의1로 줄였다는 것이다. 이 덕에 윤활유를 쓸 필요가 없어졌고, 소음이 줄어드는 동시에 엘리베이터에 필요한 부품도 줄어들었다. 결국 꼭대기층 머신룸을 없애고 엘리베이터 내부에 이런 부품들을 집어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슬라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출현을 가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전기차, 배터리, 가정용 태양열 발전 등 기술을 개발 중이다.

■ 애플-테슬라처럼…누구나 공유할 목표 세워야

두번째는 조직 구성원 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는 1984년 조지오웰의 소설을 모티브로 삼아 미국 슈퍼볼 중계에 쓰인 맥킨토시 TV 광고를 예로 들었다.

애플이 내세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가 맥킨토시에 이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보다 최근 사례로 그는 테슬라를 꼽았다. 이 회사는 단순히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라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배터리 회사라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신 국장은 "테슬라는 전기차와 함께 가정 내에서 40Kw 용량의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파워월, 낮 동안 태양열을 전기로 만들 수 있는 솔라루프를 개발하면서 평생 전기세를 내거나 주유소에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 일런 머스크 대표가 내세운 목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출현을 가속화 하는 것(Accelerate the advent of sustainable energy)'이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맞아 코닥은 외부 경쟁자들을 물리치는데 집중한 반면 후지는 화장품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내부의 파괴적 혁신을 통해 살아남았다.

■ 왜 코닥은 실패하고 후지는 살아남았나

그는 기업들이 새로운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부에서 파괴적 혁신(disruption)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 제조사로 유명한 코닥과 후지가 그 사례다. 한 때 97%까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던 코닥은 빈 껍데기만 남은 유명무실한 회사가 된 반면 후지는 시장가치가 코닥의 44배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 차이는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있었다. 코닥은 기존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없애는 쪽으로 대응했다면 코닥은 필름 제조 기술이 항산화를 막아야하고, 여러가지 화학물질을 잘 녹여들게 해야한다는 점에서 가진 기술강점을 활용해 화장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설마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가 무너지겠냐는 생각이 코닥을 어렵게 만든 반면 후지는 자신을 파괴적 혁신으로 이끌며 기회를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가 21세기 이노베이션의 핵심조건 중 하나로 꼽은 것은 4가지다. 새로운 아이디어여야하고, 이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다시 만들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에 필요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이노베이션, 교육 보다 기업이 변해야

한국은 학습능력 면에서는 2011년 기준 톱5에 들었지만 프랑스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인덱스는 16위에 그친다. 학습능력이 11위였던 스위스는 6년 간 계속 글로벌 이노베이션 인덱스 1위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신 국장은 교육 자체보다는 기업의 접근법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교육을 혁신한다면 교육부처가 앞장서는 것은 매우 잘못된 접근이라고 본다"며 "차라리 산업부처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은 결국 기업이 토익점수가 높거나 입사시험준비를 잘한 사람들을 뽑으려는 생각을 벌이는데서 출발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전 세계에서 일하고 싶은 기업 톱3에 드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지난 30여년 동안 한번도 손실을 보지 않고 수익을 냈다. 이 회사는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 10명씩 팀을 짜서 어떤 과제를 수행토록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예외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리더가 나오고 이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부는 나몰라라하고, 일부는 리더가 무슨 의견을 내든 반대하고 불평한다. 신 국장은 그가 만난 사우스웨스트 임원이 "이런 테스트에서 리더, 리더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만 뽑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한 가지 그가 한국 기업들에게 전한 당부는 인재들이 닮고 싶어하는 롤모델을 키워내고 이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잘 홍보해야한다는 것이다. 야후는 한 때 필요한 많은 인력을 뽑기 위해 '인간자석'이라는 방법을 썼다. 다른 사람들이 존경하거나 따르고 싶어하는 사람을 채용하면 그를 따라서 10여명의 사람들을 채용할 수 있게 되더라는 것이다. 좋은 인재를 기업 내부에 꽁꽁 숨겨놓는 대신 롤모델로 만들어 인간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다른 인재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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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이노베이션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팀의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신 국장은 "팀원과 일할 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배경설명을 하기 위해 초반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쓴다"고 말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왜 만들어졌고, 어떤 것을 목표로 하는지, 어떤 문제점이 나올 수 있는지, 사회적 반응은 어떨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팀원들의 의견을 드는 과정을 꽤 오랫동안 진행한다는 것이다. 왜 이 프로젝트를 해야하는지 팀원들이 완벽하게 이해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알아서 프로젝트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