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에 대한 오해, 그리고 이해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ISP vs 케이블 편성권

데스크 칼럼입력 :2017/05/02 15:20    수정: 2017/05/02 15:5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오바마 흔적 지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민 관련 규정부터 손을 댄 데 이어 오바마 행정부가 공을 들였던 망중립성 원칙을 무력화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짓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지난 달부터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습니다.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 관계자들과 회동한 데 이어 지난 주엔 ‘인터넷 자유 회복하기’(Restoring Internet Freedom)란 문건을 공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일(현지시간)엔 워싱턴D.C에 있는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망중립성 관련 판결을 내놨습니다. 버라이즌 등이 회원사로 있는 이익단체 US텔레콤이 요청한 전원합의체 재심리 요청을 기각한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또 다시 망중립성 공방이 불을 뿜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FCC의 급행회선 허용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 장면. (사진=씨넷)

■ 항소법원 일부 판사 "망중립성은 수정헌법 1조 침해"

US텔레콤은 지난 2015년 FCC가 유무선 ISP에게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하는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발표하자 곧바로 연방항소법원에 제소했습니다. FCC가 권한을 벗어난 결정을 했을 뿐 아니라 절차조차 제대로 지키기 않았다는 게 제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연방항소법원 3인 재판부는 지난 해 6월 2대 1로 US텔레콤의 제소를 기각했습니다. FCC가 2015년 확정한 ‘오픈인터넷규칙’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해준 겁니다.

그러자 US텔레콤 등은 곧바로 항소법원에 전원합의체 재심리를 요청했습니다. 항소법원 판사 9명 전원이 다시 심리를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이 요청마저 연방항소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결정 배경엔 FCC가 2015년 ‘오픈인터넷규칙’을 무력화할 별도 규정을 준비 중인 점이 고려된 겁니다.

그런데 이번 기각 판결문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7대2로 판결난 이번 결정에서 항소법원 판사 두 명이 ‘망중립성 원칙은 미국 수정헌법 1조 위반’이란 논리를 펼친 겁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특히 브렛 카바노 판사의 논지가 흥미롭습니다. (흥미롭다는 건, 말 그대로 흥미롭다는 의미입니다. 그 논리에 동의한다는 얘긴 아닙니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 시절 마련된 망중립성 원칙을 재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진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카바노 판사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1994년 판결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터너 방송 vs FCC’ 소송에서 케이블 방송사의 편성권을 ‘언론의 자유’로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FCC 같은 정부 기관이 프로그램 편성권에 대해 개입하는 건 언론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테크크런치가 그 부분을 인용해주고 있네요. 그대로 옮겨볼까요?

“ISP와 케이블 사업자는 각자의 망에서 같은 종류 기능을 수행한다. 케이블 사업자와 마찬가지로 ISP들 역시 소비자들에게 콘텐츠를 전송한다. ISP들이 꼭 콘텐츠를 자체 생산하는 건 아니지만, 케이블사업자와 마찬가지로 어떤 콘텐츠를 전송할 지 결정할 수는 있다. ESPN을 전송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ESPN닷컴을 전송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수정헌법 1조의 목적이란 측면에서 의미 있게 다른 행위로 볼 수는 없다.”

또 다른 망중립성 반대론자인 재니스 브라운 판사의 논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브라운 판사는 이용자들이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하는 행위는 “(콘텐츠를) 생성, 습득, 저장”하거나 “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이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 ‘정보서비스’에 해당되는 것이란 주장입니다.

제가 항소법원 판결문 중 소수 의견을 굳이 소개한 건 그 논리에 동의해서가 아닙니다. FCC가 지난 주 발표한 규칙공고(NPRM)의 기본 논리와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FCC는 지난 주 57쪽 분량의 NPRM을 공개했습니다. 이 문건에서 FCC는 유무선 인터넷사업자(ISP)를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로 분류하는 것이 왜 부당한 지에 대한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FCC는 오는 18일 이 문건을 놓고 표결을 할 계획입니다. 여기서 통과되면 본격적으로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합니다.

■ 케이블 편성권과 ISP를 비슷한 서비스로 볼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잠시 미국 통신법의 분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의회는 1996년 통신법을 개정하면서 기본(basic) 서비스와 고도(enhanced) 서비스로 나눴습니다.

그리곤 기본 서비스인 유선 전화는 타이틀2로 분류했습니다. 타이틀2에는 ‘커먼 캐리어’ 의무가 부여됩니다.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이 적용되는 겁니다. 반면 고도서비스인 인터넷서비스는 타이틀1 정보 서비스로 분류했습니다. FCC는 타이틀1에 대해선 부수적 관할권만 갖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FCC는 ISP들에게 망중립성 의무를 부여했다가 연방항소법원에서 ‘권한 남용’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아예 산업 분류 자체를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갔습니다.

상대적으로 친통신 성향이 강한 트럼프 행정부가 보기엔 이게 ‘권한을 넘어선 행위’란 겁니다. 지금 FCC가 NPRM을 통해 펼치는 기본 논지는 앞에서 소개한 재니스 브라운 판사의 논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ISP 서비스를 케이블사업자의 편성권에 비유한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통신법 706조의 ‘정보 서비스’ 개념 규정도 적절하게 동원되고 있구요.

물론 이 주장엔 허점도 많습니다. 테크크런치가 적절히 지적한대로 케이블 사업자와 ISP는 사업 성격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사업자는 ‘프로그램을 잘 편성했다’는 점을 많이 강조하지요. 반면 ISP들은 ‘차별없이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을 경쟁 포인트로 내세웁니다. 게다가 케이블사업자와 달리 ISP는 망을 오가는 콘텐츠에 대한 ‘통제권’이 사실상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다른 편이지요.

문제는 이게 문서 공방을 벌이게 되면 상당히 복잡해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FCC의 NPRM 문건을 읽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꽤 복잡하게 머리를 써야만 합니다.

■ FCC의 망중립성 반대 논리, 혹은 궤변

FCC는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정보가 저장된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정보에 접속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소비자들은 단순 전송 기능 이상의 서비스를 위해 돈을 낸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를 토대로 ISP는 ‘기본 서비스’가 아니라 ‘고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부가가치 통신이란 겁니다.

여기에 덧붙여 FCC는 ISP들이 때론 콘텐츠의 형태와 내용을 때론 적절하게 수정하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해로운 콘텐츠를 차단하기 위해 방화벽을 설치한다거나, IPv4와 IPv6 망을 적절하게 혼용하기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망중립성 공방은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는 꽤 복잡합니다. 망 사업자가 ‘중립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느냐는 단순한 얘기를 굉장히 복잡하게 풀어서 공방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와 미국은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망중립성 원칙은 우리나라 통신, 인터넷정책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만큼 미국의 법리 공방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꽤 도움이 됩니다.

그 첫 단계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여러분들도 한번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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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SP의 서비스 방식과 케이블 사업자의 편성권을 같은 각도에서 볼 수 있을까요?

2. ISP의 인터넷 전송 서비스는 단순히 망만 제공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수정, 관리 기능까지 갖는 부가 서비스일까요?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