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벌집 쑤신 FCC, 어떻게 될까

아짓 파이 위원장 "ISP 재분류" 밝혀…논란 만만찮을듯

방송/통신입력 :2017/04/27 14:39    수정: 2017/04/27 17: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수면 속에 감춰져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마침내 열렸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2년 전 통과된 망중립성 원칙을 뒤집기 위한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뉴욕타임스, 와이어드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26일 워싱턴DC에 있는 뉴지엄 박물관 연설을 통해 2015년 제정된 오픈인터넷규칙 중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 분류를 종전대로 원위치하겠다고 밝혔다.

아짓 파이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오바마 시대 FCC의 최대 역점 사업인 망중립성 원칙을 무력화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 시절 마련된 망중립성 원칙을 재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진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 오바마 정부, 2015년 ISP들에 커먼캐리어 의무 부과

톰 휠러 위원장이 이끌던 FCC는 지난 2015년 유선 뿐 아니라 무선 사업자까지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강력한 오픈인터넷규칙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종전까지 정보서비스사업자로 분류됐던 유무선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은 유선통신사업자와 동일한 ‘커먼캐리어’ 규제를 받게 됐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규정은 미국 통신 및 케이블사업자들에겐 눈엣 가시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원상복구’를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었다.

아짓 파이는 이날 “대공황 시대에 벨 전화회사를 세세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던 규정을 붙들고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 주장과 함께 “타이틀2 통신 서비스로 분류됐던 ISP를 타이틀1 정보서비스로 재분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오바마표 망중립성 죽이기’를 위한 공식적인 첫 발을 뗀 셈이다. 이에 따라 2015년에 이어 또 다시 망중립성 원칙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FCC는 오는 5월18일 공개회의에서 아짓 파이 위원장의 제안에 대한 공식 표결을 할 계획이다.

현재 구성을 감안하면 아짓 파이 위원장의 제안이 FCC 전체 회의를 통과하는 건 큰 문제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으로 FCC는 공화당이 숫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FCC 전체 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새로운 규칙공고(NPRM)를 한 뒤 의견을 수립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 행정절차법 때문에 FCC 자의적 기준 변경은 힘들어

아짓 파이가 당긴 활 시위는 계획대로 ‘망중립성 원상복구’란 과녁을 맞출 수 있을까? 미국 언론들은 이 질문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

와이어드는 아짓 파이의 시도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1946년 제정된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s Act)을 꼽았다. 이 법은 연방기관이 ‘변덕스러운’ 결정을 하는 걸 막기 위해 마련됐다. 정권에 따라 각종 정책이 오락가락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법인 셈이다.

따라서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유무선 ISP를 타이틀1으로 다시 분류하기 위해선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걸 입증할 필요가 있다. 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것의 정당성에 대해선 미국 연방법원이 이미 인정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FCC가 지난 2014년 급행회선 허용을 골자로 하는 망중립성 수정안을 발표한 뒤 FCC 본사 건물 앞에서 수 많은 인파들이 항의하고 있는 장면. 이후 FCC는 인터넷사업 재분류란 카드를 빼내 들었다. (사진=씨넷)

톰 휠러 전임자였던 줄리우스 제나초우가 FCC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차별금지, 차단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오픈인터넷규칙을 마련했다가 연방항소법원 판결로 무력화된 적 있다.

당시 연방항소법원은 “FCC가 정보서비스사업자들에게 커먼 캐리어 의무를 강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면서 “정 하려거든 타이틀2로 재분류하라”고 판결했다. 그게 2014년 1월에 있었던 일이다.

제나초우스키에 이어 FCC 위원장으로 임명된 톰 휠러가 2015년 유무선 ISP를 타이틀2로 전격 재분류한 것은 이런 법원 판결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조치였다. FCC는 지난 해 통신사업자들의 제소로 열린 연방항소법원 재판에서도 승소하면서 ‘타이틀2 재분류’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상황인 만큼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유무선 ISP 재분류’조치를 밀어부치기 위해선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 "2015년과 상황 다르다"고 입증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와이어드는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둘 중 한 가지를 입증해야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첫째. 2015년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둘째. 타이틀2에 따른 강력한 규제를 하지 않더라도 망의 중립성은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와이어드가 전했다.

우선 지난 2년 사이에 상황이 확 달라졌다는 걸 입증하려면 FCC의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 때문에 시장이 악화됐다는 걸 제시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통신 관련 기관인 US텔레콤은 광대역 망 투자가 줄었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2014년 770억 달러였던 망투자가 2015년엔 760억 달러로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주장도 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에드워드 마키 민주당 의원은 올초 청문회에서 2014년 866억 달러였던 망 투자가 2015년엔 872억 달러로 늘었다고 주장했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 (사진=FCC)

어느 쪽 주장에 귀를 기울이든 망중립성 원칙 때문에 상황이 확 달라진 것으로 보긴 힘들다는 게 와이어드의 분석이다.

‘타이틀2 규제’ 같은 강력한 조항이 없어도 시장 질서가 잘 유지될 것이란 주장은 또 어떨까? 이미 미국 통신사들은 비트토러트를 비롯한 인터넷 사업자들의 서비스를 제한해 논란이 제기된 이력이 있다.

그 뿐 아니다. 통신, 케이블 사업자 손을 들어줬던 2014년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결도 ‘제어장치’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한 적 있다.

당시 연방항소법원은 FCC의 인터넷 같은 정보서비스사업자에 대한 부수적 관할권을 갖고 있다고 판결하면서 “시장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법원은 망 사업자들의 자율에 맡길 경우엔 공정한 경쟁이 유지되기 힘들 수도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물론 톰 휠러 FCC 위원장이 2014년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만들 때도 “힘들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이미 FCC가 한 차례 항소법원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톰 휠러는 ‘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회심의 한 수를 들고 나와서 뜻을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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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