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욕심버린 챗봇들…"절제하니 통하네"

목적 따라 분야·기술력 제한해 서비스 경험 향상

인터넷입력 :2017/04/05 17:56    수정: 2017/04/06 08:49

구글 알파고 이후 '만능'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람처럼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만능 AI 챗봇이 등장할 것이란 희망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기대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인간 상담원을 대신할 것이란 홍보 속에 등장한 AI 챗봇을 접한 사용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직까지는 AI 기술이 '범용 챗봇'을 감당할 수준에 이르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특정 영역에 집중한 챗봇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절제의 미학'을 강조한 챗봇들은 다양한 기능보다는 이용자의 수요를 최우선시하면서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 기계가 강한 분야만 서비스하는 '11번가'

11번가의 챗봇 서비스 '바로'.

SK플래닛에서 운영하는 오픈마켓 11번가는 작년 8월부터 전문 상담원이 제품을 추천하는 디지털 컨시어지 서비스에 챗봇을 도입했다. 상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제품의 특징이 구체적이거나, 상담원이 근무하지 않는 시간에 제품을 찾고자 하는 이용자들은 일대일 모바일 채팅을 지원하는 챗봇 '바로'를 통해 제품을 추천받을 수 있다.

특히 이용자들이 입력한 검색어의 표현·형태가 달라도 의미상 유사한 것을 묶어 적절히 응답하는 '워드 임베딩' 기술을 적용해 정확성을 높였다. 또 그간 축적된 검색어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서비스 영역 자체는 매우 한정돼 있다. AI를 기반으로 메시지를 인식하고 상품 검색을 대신해주는 바로는 노트북,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기밥솥, 전동칫솔, 전기면도기, 김치냉장고, 애플 기기 등 10개 영역 제품에 한정하여 챗봇 서비스를 하고 있다.

11번가가 좁은 영역에 한해 챗봇 서비스를 하는 이유는 뭘까.

아직 챗봇 기술이 인간 상담원을 대신할 만큼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챗봇이 더 뛰어날 수도 있는 분야 위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10개 제품군은 전자·가전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의류나 향수 등의 제품보다 객관적으로 제품의 품질·특징을 알 수 있는 제품군이다. 때문에 이용자가 원하는 바만 정확히 파악하면 맞춤형 제품 추천이 가능하고 챗봇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도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11번가 관계자는 "전자·가전 제품은 사양을 따져봐야 하는 제품군이라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게 좋다"며 " 패션 등의 제품은 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지만, 전자·가전제품은 사양에 따라 정확히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이용자 만족도 위해 AI라는 원칙 깬 '식신'

씨온 안병익 대표

맛집앱 서비스인 식신도 챗봇을 제공한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규칙 기반의 비 AI챗봇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에게 원하는 맛집을 추천한다.

식신을 운영하는 안병익 대표는 AI를 활용하지 않은 챗봇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현 기술 수준으로는 이용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 경험을 선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안 대표는 "챗봇은 인간을 대신하는 용도라 원칙적으로는 인공지능 기법이 들어가야 하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답변하기 어렵다"며 "이용자의 요구사항이 명쾌한 자사 서비스 특성상 비AI 챗봇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식신이 챗봇 도입을 고려하면서 AI 기술 반영을 아예 고민 안 한 것은 아니다. 서비스와 상관없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 사용자들의 흥미를 끌어내기에는 AI 챗봇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챗봇에 대한 안 대표의 신념이 지금의 식신 챗봇 서비스를 만들었다.

안병익 대표는 "챗봇은 소비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며 "챗봇은 대화로 소비자에게 좀 더 친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마치 호텔 컨시어지처럼 친절하게 제공하는 게 챗봇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민감한 정보 특성 고려해 기술력 축소한 '파운트AI'

대선봇 '로즈'는 대선후보의 기본 정보, 공약과 함께 투표소 위치와 투표 일정 등을 제공한다.

4일 출시된 대선봇 '로즈'는 대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챗봇 서비스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전문으로 하는 파운트의 자회사인 AI 스타트업 파운트AI가 자연어 처리 기술과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법을 이용해 개발했다. 현재 베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대선 후보 등록이 마감되는 16일 정식 버전을 내놓을 예정이다.

대선봇 로즈를 내놓으면서 파운트 측은 정치적인 주제가 매우 예민한 분야기 때문에 기존에 개발한 챗봇 엔진보다 도메인(이용자가 치면 반응하도록 돼 있는 키워드)을 축소한 대선봇 전용 엔진을 새로 만들었다. 정치적 편향성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답변을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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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출시된 AI 챗봇들이 편향성 논란에 시달리는 것을 고려하면 과도한 조치라고 볼 수도 없다. 작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출시한 AI 챗봇 '테이'는 인종차별 발언 등으로 논란이 돼 서비스를 중단했다.

주동원 파운트AI 대표는 "챗봇은 문맥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가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금융 분야 AI 같은 경우 돈이 달려 있으므로 만에 하나라도 오류가 발생하면 큰일이 날 수 있다. 분야별로 맞춤형 챗봇을 제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술보다 기획력이 더 중요한 서비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