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터넷 개인정보' 공방…핵심 쟁점은

발단은 망중립성…ISP 규제 놓고 힘겨루기

인터넷입력 :2017/04/04 14:5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트럼프 행정부가 또 다시 오바마 시대 유물을 지웠다. 이번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이 사전 동의 없이 웹 서핑 이력 같은 민감한 고객 정보를 팔 수 없도록 한 규정을 무력화했다.

더힐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규정 폐지 법안에 서명했다.

이번에 트럼프가 무력화한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규정은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해 10월 마련한 것이다. 이 규정은 오는 12월 공식 발효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씨넷)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오바마 색깔 지우기'에 나선 건 잘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는 그 동안 잘 활용되지 않았던 '의회재검토법'까지 동원해 오바마 시대 법률들을 손보고 있다.

망중립성으로 ISP에 '커먼캐리어' 의무 부과되면서 촉발

하지만 이번에 폐지된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규정을 둘러싼 상황은 다소 복잡한 편이다. 이 규정은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들이 위치 정보나 웹 사용 이력 같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 규정이다.

이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인 지난 해 10월 FCC가 마련했다. FCC의 이 규정 때문에 컴캐스트, 버라이즌 같은 광대역 ISP들은 페이스북, 구글 같은 인터넷 업체보다 더 엄격한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적용받았다.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미국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크게 두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1. 오바마 행정부는 왜 임기말에 광대역 ISP를 규제하는 정책을 도입했을까.

2.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왜 출범하자마자 그 정책에 손을 댔을까.

망중립성 도입 이후 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의 개인정보 활용 관련 규제 주체가 애매해졌다. 사진은 지난 2014년 망중립성 원칙 도입 촉구 집회 장면. (사진=씨넷)

일단 1번 질문부터 살펴보자.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선 오바마 행정부의 야심작인 망중립성 원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잘 아는 것처럼 오바마 대통령은 두 차례 실패한 끝에 유무선 ISP를 모두 통신법 706조의 ‘커먼 캐리어’로 규정하는 강력한 망중립성 법안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오바마 행정부의 완벽한 승리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통신법 706조의 ‘커먼 캐리어’ 의무를 지게 되면서 또 다른 규제 기관인 연방무역위원회(FTC)의 손을 벗어나게 됐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지난 해 8월 “커먼캐리어들은 FTC의 감시 의무를 면제받는다”고 판결한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ISP들의 고객 정보 활용 방안에 대해 규제할 근거 조항이 사라져버렸다.

FCC가 지난 해 10월 ISP들의 개인정보 활용 정책을 규제하는 강력한 법안을 도입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FCC 규정에 따라 ISP들은 개인정보 활용을 위해선 반드시 고객들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옵트인(opt in)’ 조항을 적용받게 됐다.

FCC의 새 규정은 오는 12월부터 본격 발효될 예정이었다.

구글-페북 같은 인터넷업체들도 '개인정보 보호규정'에 불만

이제 두 번째 의문을 풀 차례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왜 발효도 되지 않은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무력화했을까?

FCC가 지난 해 10월 인터넷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도입하자마자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ISP 뿐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까지 목청 높여 비판했다.

왜 구글,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까지 불편을 호소했을까?

그 동안 미국 인터넷 개인정보 정책은 ‘옵트아웃’이 기본이었다. 고객들이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은 한 인터넷 사업자들이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FCC의 새 규정 때문에 ISP들에 한해 ‘옵트인’으로 바뀌어버렸다. 다시 말해 개인 정보를 활용하려면 사전에 고객 동의부터 받아야하는 상황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pixabay)

그러자 ISP들이 곧바로 반발했다. 개인정보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더 많이 수집하는 데 자신들만 타깃으로 한 것은 부당하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FCC 새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구글도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ISP에게 적용된 개인정보 활용 규칙에 자신들에게까지 확대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FCC를 통해 오바마 정부가 만들어놓은 망중립성을 무효로 만들 계획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새롭게 FCC를 이끌게 된 아짓 파이 위원장은 대표적인 ‘망중립성 반대론자’이다.

만약 FCC가 망중립성을 무력화할 경우 ISP들은 개인정보 규칙 적용 대상에서 면제된다. 다시 FTC의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 아무리 트럼프 행정부라고 하더라도 FCC가 확립한 망중립성을 무력화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족쇄 풀린 통신-케이블사업자들, 어디로 튈까?

결국 거대 ISP들은 FCC의 개인정보 보호규칙을 무력화하는 쪽에 로비력을 집중시키게됐다고 더버지가 전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 만들어진 개인정보보호규칙이 아직 발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효로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게 ISP들의 논리였다.

컴캐스트, 버라이즌 등 미국 대형 ISP들은 “개인 웹 브라우징 이력 같은 것들을 판매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옵트인 규정은 폐지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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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3일 FCC의 개인정보 보호규칙 폐지안에 서명하면서 ISP들은 큰 짐을 덜게 됐다. 이젠 FTC 규제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 규정까지 면제 받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대형 ISP들이 고객 개인정보를 무한정 활용할 길이 열리게 됐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