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LG화학 R&D 메카 기술연구원 가보니

3천800명 LG화학 브레인 모여 오픈 이노베이션 실현

홈&모바일입력 :2017/04/02 11:06    수정: 2017/04/02 11:10

“이 곳에는 LG화학의 전체 연구개발(R&D) 인력인 5천300명 중 3천800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1979년 건립 당시 70여명과 비교하면 5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중 박사급 연구원의 비중만 20%에 달해 LG화학 R&D혁신의 메카와 같은 곳이죠.”

기자가 지난달 31일 방문한 국내 화학 업계 싱크탱크 LG화학 기술연구원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대덕연구단지(대덕연구개발특구)에 LG화학 기술연구소가 들어선 건 1979년도다. 이 곳에는 LG화학의 전체 R&D 인력 중 70% 이상이 모여있다.

LG화학 기술연구원은 축구장 40배 크기인 30만㎡(약 8만7천평) 크기다. 정문 옆 지상 4층 규모의 본관동을 시작으로 총 7개의 연구동을 볼 수 있다. 각 연구동은 생명과학연구소, 기초소재연구소, 정보전자소재·재료연구소, 배터리연구소, 중앙연구소 및 분석센터 등으로 분류된다.

LG화학 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의 생명과학 관련 연구개발이 한창이다.(사진=LG화학)

■배터리 안전성 "보고 또 보고"…전기차 시장 정조준

이날 처음으로 방문한 기술연구원 4연구동에서는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Safety Reinforced Separator)’ 열수축 정도를 직접 시험해볼 수 있었다. 분리막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소재로 만든 필름으로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이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막아준다.

LG화학이 2004년 독자 개발한 SRS 기술은 양·음극간의 내부단락을 방지하기 위해 분리막의 표면을 세라믹 소재를 사용해 나노 단위로 얇게 코팅해 안전성과 성능을 높인다. 장갑을 끼고 가열기에 일반 폴리올레핀(PO) 분리막과 LG화학의 SRS 분리막이 적용된 전지를 올려놓고 180도에 노출시킨 결과, 일반 분리막은 곧바로 심하게 수축이 일어났지만, SRS 분리막은 정상적인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LG화학 배터리연구소 분리막개발팀 이제안 연구원은 “LG화학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SRS 기술은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전성을 결정짓는 핵심 기술로 그 동안 당사가 GM르노볼보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기술이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배터리 공간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스택앤폴딩(Stack & Folding)' 제조 방식도 개발했다. 기존의 두루마리 휴지처럼 돌돌 마는 와인딩(winding) 기법은 모양을 바꾸거나 자르지 못해 한계가 있었다. 스택앤폴딩은 전극을 셀 단위로 잘라 쌓거나 접어 적은 부피에도 고용량의 얇은 배터리를 제작할 수 있다.

분석센터 중앙연구소에서는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의 분포 등 원자와 엑스레이 장비를 통해 배터리를 충방전해가며 제품의 구조를 분석하는 등 안정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R&D를 진행하기도 한다.

해당 기술을 적용한 LG화학의 배터리는 전세계 60만대 친환경차량에 탑재됐지만 한 번도 필드 이슈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기준 회사는 30여개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부터 총 36조원 규모의 82개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회사는 선제적인 R&D를 통해 3세대 전기차(500km)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한다는 전략이다.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이뤄진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열수축 정도를 테스트하고 있다.(사진=LG화학 영상 캡처)

■미래 바이오 역량 강화…신약 개발 적극 추진

다음으로 방문한 기술연구원 1연구동의 생명과학연구소에서는 합성신약, 백신 및 바이오의약 분야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생명과학연구소는 1981년 LG화학(구 럭키)이 국내 처음으로 설립한 ‘럭키 유전공학연구소’를 모태로 ▲국내 업계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을 획득한 항생제 ‘팩티브’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 ▲뇌수막염 백신 ‘유히브’ ▲첫 국산 미용 성형필러 ‘이브아르’ 등을 개발하며 의약품 국산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약품 개발을 위해서는 평균 1만 개 이상의 물질을 평가해야 한다는 게 합성신약 연구개발 프로세스 담당 윤승현 연구원의 설명이다. 예컨대 제미글로는 344번째로 만든 물질이 채택됐다. 그는 “제미글로 등 하나의 신약품 연구부터 허가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돼 실패위기가 동반되지만 성공하면 20년 가까이 고수익 창출이 가능한 지식집약형 산업이다”고 말했다.

2층에 위치한 제품연구센터의 한 실험실에는 작은 기계들이 쉴새 없이 많은 알약을 제조하고 있었다. 제품연구센터 제형팀의 윤덕일 연구원은 “생산시설을 축소해놓은 이 공간에서는 우리가 만든 의약품이 체내에 효과적으로 흡수되도록 약의 형태, 크기 등을 결정하는 연구를 한다”고 설명했다.

약효 주성분 및 여러 부형제를 이용하여 타정기에서 제조된 알약들은 다음 단계인 코팅 작업으로 이어진다. 코팅은 타정들이 공기나 외부에 노출돼 그 약효가 떨어지지 않게 알약들을 보호하고 약품에 따라 위, 장 내 흡수 시간을 조절한다. 이렇게 제작된 의약품 샘플들은 최종적으로 사람의 체온을 구현한 용출기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적합한 스펙으로 결정된다. 이후 임상시험과 공장에서의 상업생산 공정 구축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성형필러 물질을 제조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필러 제형은 입자 크기에 따라 클래식, 볼륨, 컨투어로 나눠진다. 물질의 오염을 막기 위해 개발 공정 전체를 연구소 내부에 구축해 안정성을 높인다는 게 LG화학 바이오제형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백신을 개발하는 미생물 배양실에서는 진한 막걸리향이 났다. 이 곳에서는 배양 샘플을 현미경으로 확인한다.

LG화학 생명과학연구소 내 미생물 배양실.(사진=LG화학)

제형연구센터의 실험실과 코팅 작업 투어를 마친 뒤 도착한 곳은 분석센터 지하 1층. 이곳은 합성신약 연구개발을 위한 물질들의 저장 창고 ‘케미컬 라이브러리’다. 신약개발 후보물질 탐색 단계에서 합성된 수많은 물질들이 보관된다.

신약연구센터 김회숙 연구원은 “케미컬 라이브러리는 신약개발을 위해 제조했던 물질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신약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키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며 “케미컬 라이브러리의 데이터베이스가 많을수록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때 이를 참조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발 기간도 단축된다”고 설명했다.

케이컬 라이브러리에 신약개발을 위한 물질들이 내외부 화합물로 분류 보관된다. 내부 화합물은 등록서버에 등록되고 기준에 따라 아이디가 부여된다. 외부 화합물은 화합물 판매회사로부터 구입한 물질 중 내부 프로젝트에 부합하는 것 수천가지 중 선택해 또 다른 코드를 부여해 내부 화합물과 같은 기준으로 보관된다.

물질이 보관되는 콜드룸의 문이 열리자 한기가 느껴졌다. 냉동 창고와 유사한 모습으로 액체는 -5도 이하에서, 고체는 이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보관된다. 현재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케미컬 라이브러리 데이터베이스는 약 13만 종이다. 이는 신약개발을 진행하는 국내 제약사 중 가장 큰 규모이며 1994년 합성신약 연구를 착수한 이래 지속해서 연구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팜한농(구 동부팜한농)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1월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하며 바이오 전 분야에서 신사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바이오 사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해 2025년 매출 5조원대의 글로벌 사업으로 키워나갈 방침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적극 추진…R&D 시너지 극대화

대덕연구단지(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자리한 LG화학 기술연구소 입구.(사진=기술연구원 홈페이지)

LG화학 기술연구원의 경쟁력은 하나로 뭉치는 ‘화학적 협업’의 조직문화에서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R&D분야에서의 ‘내부 오픈 이노베이션’ 제도다.

기술연구원은 크게 5개의 사업분야별 연구소와 기반기술과 미래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중앙연구소로 구성됐다. 이 곳에서는 약 500여개의 연구과제를 다루는 300개 이상의 연구팀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하나의 프로젝트가 생기게 되면 각 연구팀들의 강점에 맞춰 유기적으로 새롭게 가상의 조직(Virtual Team)을 구성하며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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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내 기술 컨퍼런스 행사인 ‘테크페어(Tech Fair)’, 프로젝트의 기술적 이슈를 토론하는 ‘아이포럼(i-Forum)’, 사내 전문가가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아이원패드(i-OnePAd)’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실제로 i-OnePAd 프로그램을 통해 전지 연구원, 소재 전문가, 기반기술 전문가, 점착 전문가 등 각기 다른 부문의 전문가들이 ‘전동공구용 원통형 배터리 개발 과정’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LG화학 관계자는 “회사의 특허 등록 및 출원 실적은 국내 1만7천여 건, 해외 2만3천여 건이다”며 “추가적인 기술역량 확보 및 내부 오픈 이노베이션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내외 대학, 연구기관, 기업 등 다양한 채널과의 네트워크를 더욱 활성화하고 기술협력, 기술도입 등 외부 이노베이션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