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인수전…韓·美·日·中의 '동상이몽'

29일 입찰마감…日정부 개입으로 장기화 전망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7/03/28 13:40    수정: 2017/03/28 14:13

박영민, 이은정 기자

세계 2위 낸드 생산 업체인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 입찰 마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미·일·중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당초 SK하이닉스,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과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혀왔지만 국부 유출을 막으려는 일본 정부의 개입이 심화되면서 이번 인수전이 장기전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도시바는 당초 19.9%의 지분만 매각시킬 방침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원전 자회사에서 큰 손실이 발생, 신설 반도체 회사의 경영권을 전부 매각해 재무구조를 강화한다는 계획으로 변경하면서 지분 가격이 당초 예상했던 2조~3조원 대에서 2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늘어났다. 후보 업체들은 독자적으로 인수 금액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다른 업체와 연대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에 일본 정부까지 산업 보호를 이유로 개입하면서 업체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현재 도시바 반도체의 주요 입찰 후보로 거론되는 곳은 SK하이닉스와 WD, 마이크론, 홍하이, TSMC, 중국 칭화유니그룹 등 10여곳이다. 이 중에는 베인캐피탈과 실버레이크파트너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같은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들도 재무적 투자자로서 후보로 꼽히고 있다.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 입찰 마감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미·일·중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자료=지디넷코리아)

日 정부 견제에 중국·대만 업체 인수 장벽↑

일본은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중국·대만 업체를 인수 후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칭화유니 등 새로운 업체가 낸드 시장에 진입해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할 경우 시장 점유율을 두고 치킨게임이 재발될 것을 우려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 정부는 민관합작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나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이 도시바에 출자하도록 하는 방안과 사전 심사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외환법상 해외 기업이나 투자가가 일본의 국익 사업을 매수할 경우 사전에 정부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

DBJ는 도시바 지분의 약 34%가량의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금액은 6천억 엔(약 6조 원) 내외로 추산된다. 응찰이 현실화될 경우 DBJ 컨소시엄은 도시바 반도체의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도시바의 반도체 부문을 중국, 대만 업체가 인수하면 국가 안전보장과 관련한 중요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본다”며 “정부가 사전 심사 과정에서 제동을 거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화권 업체는 국내 업체들에게도 견제 대상이다. 칭화유니가 인수할 경우 5년 이상 벌어진 것으로 평가되는 국내 반도체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크게 좁혀질 가능성이 높고,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가 도시바 인수로 메모리 사업까지 진출해도 한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이신원 등 중국 현지 외신은 “중국 반도체 시장이 굴기(일으키게 하다)로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효력이 클 것이지만 도시바는 중국 자본에 절대 지분 인수 권한을 주지 않을 것을 명확히 했다”며 중국 업체의 인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홍하이는 도시바의 반도체 지분 인수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측에 공동출자를 타진했다. 회사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를 생산 중인 SK하이닉스와 연대해 분사하는 도시바 반도체 회사를 원만하게 인수하려 한다”며 “SK하이닉스와 연대하면 자금력도 같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궈타이밍 홍하이정밀공업 회장은 “(도시바 입찰에) 매우 자신 있고 진지하다”며 “분명히 입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도시바를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보고 있어 입찰 후보 가운데 우선협상자가 결정되는 6월까지 '도시바 지키기' 태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 정부와 도시바 관계자가 생각하는 도시바 인수전 최상의 시나리오는 일본 내의 기업이 도시바 인수에 성공하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도시바의 반도체 기술이 중국이나 (중국에 생산시설을 둔) 대만에 넘어가는 경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막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중국과 대만의 업체들을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문 인수 후보군에서 배제하기 위해 도시바 지분을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INCJ)나 일본정책투자은행(DBJ)에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사진=구글)

■한국도 예외는 아니야…美·日 연합 추진 가능성도

일본 정부는 중국과 대만 업체뿐 아니라 우리나라 업체인 SK하이닉스의 인수에 대해서도 상당히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주재 중인 한 일본 기자는 "일본 정부는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국민 정서상 라이벌인 한국에 넘기는 것 역시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기술력이 우리나라에 뒤쳐지면서 경쟁 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인수 여부를 떠나 우선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 금액만 26조원에 달해 인수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입찰에 참여할 경우 도시바 설비 실사를 통해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이 2D에서 3D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있는데 3D 기술력 확보에 따라 기존 시장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도시바는 2D 낸드 시장에서 분명히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3D 낸드 기술력은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아 SK그룹 차원에서 거액의 투자 비용을 들이는 만큼 인수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매우 심사숙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 투자 금액 확보에 실패해 도시바를 인수하지 못할 경우 미국 기업을 출자자로 끌어 들이는 미·일 연합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국의 주요 입찰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WD와 마이크론은 도시바 인수와 관련해 언급을 자제하며 신중을 가하는 분위기다.

현지 외신은 WD의 도시바 인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자금 조달 여건이 우려된다는 의견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6일(현지시간) “만약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인수할 경우 이 회사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낸드 플래시 산업의 지위가 더욱 향상될 것이며 향후 주당순이익(EPS)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이는 WD의 사모 펀드을 통해 거래 자금 조달 능력을 전제로 했을 때 이야기”라며 “자금 조달이 안 되면 미국 업체들도 도시바 인수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내 IB 업계 관계자는 "WD는 이미 샌디스크를 인수할 정도로 자금 여력이 있을 뿐더러 인수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펀딩 등 자금 조달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입장에서도 WD가 인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도시바는 WD와 이미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 WD가 인수하더라도 기존 공장 운영의 권한을 누가 갖는냐의 문제이지 시장 구도에는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바와 WD는 지난해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위해 3년 간 약 17조 원을 투자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지각변동 예고…예상 시나리오는

반도체 시장 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가 이달 8일에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도시바의 지난해 4분기 낸드 시장 점유율은 18.3%로 2위 자리를 지켰다. 1위인 삼성전자는 37.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도시바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인 업체는 WD(3위, 17.7%), 마이크론(4위, 10.6%), SK하이닉스(5위, 9.6%)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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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 인수 의사를 밝힌 3~5위의 업체들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예외 없이 글로벌 낸드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서게 된다. 3위인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점유율이 36%로 오르게 되며 삼성과의 격차는 단 1.1%로 좁혀진다. 이러한 시나리오로 진행된다면 낸드 시장서 독주하는 삼성전자를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시바와 3~5위 기업이 결합한다 해도 시장엔 별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도시바가 낸드 점유율 2위이지만, 2~5위 기업 간 기술 격차가 크지 않다”며 “도시바 인수가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오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 4분기 글로벌 낸드 시장 점유율(위)과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를 인수할 경우 예상되는 낸드 시장 점유율(아래). 도시바 인수 의사를 밝힌 3~5위의 업체들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서게 된다.(표=지디넷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