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교육도 모듈식으로 바꿔야"

[단독 인터뷰]인더스트리4.0 대부 헤닝 카거만(상)

컴퓨팅입력 :2017/03/27 11:26    수정: 2019/12/15 20:4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더스트리 4.0 초기부터 인력 역량강화(upskilling)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겐 자동화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독일 인더스트리4.0 대부인 헤닝 카거만 공학한림원(acatech, 이하 아카텍) 회장은 명쾌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인더스트리 4.0의 배경과 성공 비결, 그리고 향후 방향에 대해 간명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일자리 문제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추진 초기부터 노조에 “자동화할 수 있는 모든 건 자동화된다”고 통보한 뒤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자랑인 직업 교육 얘기도 새겨들을만했다. 카거만 회장은 또 “한국이 참고할만한 것은 없는가?”란 질문엔 “교육을 모듈식으로 구성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스마트팩토리가 스마트폰과 유사한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란 전망도 흥미로웠다. 스마트폰이란 범용 기기에 앱을 끼워넣어서 특정 기능을 추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 될 것이란 얘기였다. 이런 관점에서 근로자들 역시 특정 영역 전문가에서 범용 근로자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 회장. (사진=acatech)

이런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선 ’모듈식 교육’이나 ‘마이크로러닝’ 같은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카거만 회장의 일관된 관점이었다.

카거만 회장은 오는 29일 지디넷코리아와 국회 4차산업혁명포럼이 공동 주최하는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본 한국형 4차산업혁명 미래 모델' 컨퍼런스에서 강연할 계획이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4일 오후 4시(독일 현지시간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서울 도곡동 SAP코리아 사무실에서 전화 인터뷰로 진행했다. 카거만 회장은 20일 개막된 세빗(CeBIT) 등을 비롯해 여러 업무 때문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카거만 회장이 24일 공식 일정 시작 전에 잠깐 짬을 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카거만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을 2회에 나눠 싣는다.

■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독일 경쟁력 강화' 고민

- 바쁘실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감사드린다. 카거만 회장께선 2010년 독일 정부에 인더스트리 4.0을 제안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4차산업혁명을 외치기 6년 전이었다. 당시 왜 인더스트리 4.0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크게 두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시기적인 요인이다.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2010~2011년은 2008년 세계경제위기와 근접한 시기였다. 당시 우리는 세계경제위기가 온 건 유연성과 적응력이 떨어진 산업환경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아카텍이 진행하던 연구에서 출발했다. 그 무렵 우리는 사이버물리시스템(CPS)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CPS 연구는 공장 쪽에 그치지 않고 의료, 에너지 산업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CPS에) 세상이 바뀔 수 있는 요인이 들어 있다고 판단했다.”

CPS는 물리적인 대상이나 제조과정을 가상의 대상과 연결하는 정보 시스템을 의미한다. 사실상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개념이다. CPS를 구현할 경우 멀리 떨어져 있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스템들도 실시간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런 강력한 CPS의 토대를 이루는 기술이 사물인터넷이다. 사물인터넷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정보 네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 시물인터넷(IoT)을 빼놓곤 인더스트리 4.0을 얘기하기 힘들 것 같다. 사물인터넷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인더스트리 4.0에서 사물인터넷은 어떤 역할을 했나.

“인더스트리4.0의 첫 출발점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 총리가 IT서밋을 출범시켰다. 난 SAP 공동 회장 자격으로 IT업계 대표로 이 서밋에 참가했다.

당시엔 사물인터넷(IoT)과 서비스인터넷(IoS) 두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가 커지면서 IoT와 IoS가 하나로 묶여지는 세상이 바로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판단했다.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연결되는 세상이 바로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판단했다.”

사물인터넷과 CPS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팩토리 사례. (사진=인더스트리 4.0 보고서)

-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전략 중 경쟁력 있는 산업입지 확보란 부분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결국 스마트팩토리 등을 통해 독일 내에서도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탈피하면서 고용을 창출하도록 한다는 목표인가? 최근 아이다스가 동남아 지역 공장을 독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전략의 일환인가?

“전략적인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먼저 독일의 강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역시 제조업이었다. 그래서 제조업과 생산에 CPS를 우선 도입했다. 이런 작업 성공에 힘입어 전 산업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이 때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첫번째는 독일의 경쟁력과 생산량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아디다스 같은 곳이) 독일로 공장을 옮겨오게 된 것 같다. 다른 목표 때문은 아니다.

두 번째 목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었다. 이젠 과거처럼 경제성장만 좇아선 세상이 성장 발전할 수 없다. 환경, 사회 문제까지 모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더스트리 4.0이 지속 가능한 성장 대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도 근로자의 삶에 미치는 복지 혜택 같은 것을 높이도록 하는 것. 이게 인더스트리 4.0이 갖고 있으며, 또 지향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카거만 회장이 인터뷰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인더스트리 4.0을 이해하기 위해선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경제 위기는 금융이 중심이 된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특히 유럽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리스, 아일랜드를 비롯한 수 많은 유럽국가들이 한 때 파산 위기까지 내몰릴 정도였다.

독일도 2008년 경제 위기로 한 동안 홍역을 겪었다. 하지만 독일은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의 자랑인 탄탄한 제조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거만 회장 역시 “독일은 제조업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세계 경제위기를 비교적 원활하게 넘겼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인더스트리 4.0 이어 자율시스템 관련 연구도 수행

- 인더스트리4.0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인 아카텍이다. 인더스트리 4.0 추진 과정에서 아카텍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정부와 업계간 교량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었나.

“아카텍의 사명 중 하나는 과학기술 자문역할이다. 흔히 연구기관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은 과학, 기술자로 구성돼 있는 학계기관이다. 여기에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 비즈니스 전문가 80명 가량도 참여하고 있다. 과학과 비즈니스가 연결되어 있는 조직이다.

아카텍은 주로 정부와 사회 단체가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토픽을 고르는데 그 중 하나가 인더스트리 4.0이다.

독일 총리나 관계 부처에 권고안을 전달하면 우리 역할은 끝난다. 비즈니스는 아카텍과는 별개로 독일 정부나 관련기업들이 진행한다.”

기자도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까지 아카텍을 연구 기관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카거만 회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왜 아카텍이 독일 제조업 부흥의 밑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아카텍은 인더스트리 4.0, 스마트서비스, 자율시스템 같은 세 가지 연구 주제를 추진했다. 인더스트리 4.0은 그 중 하나로 추진된 것이다. 아카텍은 지난 2013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인더스트리 4.0 최종 보고서를 전달했다. (☞ 인더스트리 4.0 최종보고서 바로 가기)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2013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에게 인더스트리 4.0 최종 보고서를 전달하는 장면. (사진=artech)

독일 정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2년 뒤인 2015년 기업들 간의 의사소통 시스템인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발표했다. 자율시스템 연구도 최근 마무리됐다.

카거만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지난 20일 세빗 행사장에서 독일 총리에게 자율시스템 관련 연구서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사회 각계에서 나온 40~60명 정도 분들을 모셔놓고 그분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 독일은 마이크로교육으로 기술 변화 대응하고 있어

-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 아젠다는 일자리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해 다보스에서 내놓은 보고서 제목도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였다. 그런 측면에서 독일 인더스트리 4.0은 상당히 주목할만하다. 스마트팩토리를 비롯한 다양한 자동화 프로젝트를 병행하면서도 오히려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나?

“인더스트리 4.0을 제안하면서 노조에 명확하게 전달한 게 있다. “자동화 될 수 있는 모든 일자리는 자동화된다. 구조적인 변화는 당연한 것이며,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이에 대비해 초기부터 인력 역량을 강화하는 업스킬링(upskilling)을 해야 한다고 독일 정부에 제안했다. 인더스트리 4.0이 줄 수 있는 성장가능성은 미리 대비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빨리 포착할 수 있을것으로 본다. 독일 정부 뿐 아니라 노동계도 빨리 움직여야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인더스트리 4.0이 진행됨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는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아니다. 숙련도가 좀 떨어지는 분들일 가능성이 많다. 이런 인력들을 찾아서 찾아서 디지털 교육을 보다 빨리 진행한다면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에 채워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닝 카거만 공학한림원 회장이 지난 20일 개막된 CeBIT 행사장에서 메르켈 총리에게 자율시스템 관련 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습도 보인다. (사진=acatech)

- 일자리와 관련해 주목받는 것이 독일의 직업 교육이다. 독일은 빠른 속도로 기술이 진화하는 시대에 어떤 직업교육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나?

“독일의 교육과정은 두 가지 종류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교육과정인 직업 학교에서는 이론만 가르친다. 두 번째 교육과정인 회사에선 실무를 가르친다. 이런 전통이 오래되어 있어서 독일에서는 어느 부모나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도에서 온 고객들은 이런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걸 봤다. 명문대를 지향하는 교육 환경과 달라서 무척 낯설어했다.”

인도 고객 얘기는 한국 사람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역시 독일보다는 인도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다. 명문대 진학 욕심은 오히려 인도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카거만 회장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문화적인 변화가 이뤄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 직업 교육과 관련해 한국이 참고할만한 내용은 없을까?

“교육 과정을 모듈식으로 구성하도록 제안하고 싶다. 이건 이미 10년전부터 우리가 제안해 온 방법이다. 교육을 모듈식으로 구성할 경우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인더스트리 4.0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아카텍은 2010~2011년에 전기차 연구를 해 왔다. 이 때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당시 기존 자동차 생산 과정을 그대로 두고 여기에 전기차 관련 모듈 교육만 2, 3개 추가했다. 그랬더니 불과 1, 2년만에 관련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모듈식 교육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듈식 교육 얘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추가로 더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카거만 회장이 설명을 덧붙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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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개념이면서도 인더스트리4.0과 관련 있는 ‘마이크로 레슨’이다. 실무교육을 할 때 기술을 세분화해서 진행한 뒤 각 분야에 대해서 인증서(micro degree)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편에 계속)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