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韓 제조업, 노키아 될라

[리셋 IT 코리아 3-1] 3년 안에 갈림길 설 듯

홈&모바일입력 :2017/03/22 15:21    수정: 2017/03/24 11:48

박영민, 이은정, 정현정, 조재환 기자

대한민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대격변의 시기입니다.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드냐, 경제도 추락하고 빈부격차만 커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어떻게 사회적 대타협을 준비하고,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를 위한 새로운 시대정신과 과제를 제언하기 위해 5부 15편의 대형 기획시리즈 '리셋 IT 코리아'를 준비했습니다. 제1부 'IT 종사자들의 애달픈 현실'과 제2부 'IT 중소기업의 애환'에 이어 역시 3편으로 구성된 제3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국내 제조산업이 나아갈 길에 관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한국의 제조업은 미래가 없습니다”

국내의 대표적인 4차산업혁명 관련 전문가로 꼽히는 김은 한국ICT융합네트워크 상근부회장이 우리나라 제조업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다. 다소 극단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만큼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4차산업혁명 흐름에 맞춰 변하지 않는다면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우리나라 제조 대기업들도 노키아처럼 공중분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때 세계 최고였던 한국의 조선업은 글로벌 저성장 기조로 수주가 급감하면서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대형 조선소들이 조(兆)단위 적자를 내면서 울산과 경남 거제·통영의 조선 협력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임금이 밀린 협력업체 직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한국 조선업의 위기는 현재 글로벌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대표 수출업종인 전자·자동차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마트폰의 경우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11년 간 글로벌 자동차 생산국 5위의 위상을 지켜왔던 자동차 산업도 지난해 인도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공정 경쟁력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갖췄지만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이기지 못했다. 반면 일반 상선 대비 2배 이상의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고부가가치 품목인 여객선에 투자한 크루즈선 강국 독일에게 수주가뭄 위기는 아예 남의 얘기다.

독일의 이 같은 경쟁력은 사물인터넷(IoT) 같은 첨단 기술과 전통 제조업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덕분이다. 이와 관련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acatech) 회장은 이달말 방한해 독일 제조업의 변신을 이끈 인더스트리 4.0 전략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본 한국형 4차산업혁명 미래모델 바로 가기)

독일과 달리 국내 업체들이 처한 현재의 위기는 변하는 시장을 보지 못한 때문이다. “우리도 고부가 크루즈선을 만들자”는 단순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후방 생태계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불가능하다.

상황이 좀 더 나은 다른 제조업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여러 첨단 기술이 동시에 발전하며 융합하며 경계가 사라지고 기존 체제가 급변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의 흐름과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도 구글이나 아마존, 우버 같은 혁신기업들의 일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위치한 테슬라 공장 (사진=지디넷)

■‘빠른 추격자’ 전략 한계, 우리 기업들은 '혁신가의 딜레마'에…

대한민국은 지난 40여 년 간 제조업을 기반으로 고도성장한 국가다. 2차산업혁명 시대까지 가진 것이 없었던 우리는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서 압축 성장을 이뤘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 같은 선구자들도 있었다. 정보통신이 중심이 된 3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선제적으로 잘 대응해 세계 11위 경제대국에 올라섰다. 그리고 현재 국내 제조업체들은 생산력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진 3차산업혁명의 최정점에 와있다.

3차산업혁명 시대 우리가 1등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워)’ 전략이었다. 아이폰 출시 이후 애플의 혁신을 빠르게 뒤쫓아 1위가 된 스마트폰 산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 최적화된 규모의 경제를 갖춘 중국을 이기기 어렵게 됐다.

김은 상근부회장은 “현존 제조업 분야 대기업들이 망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 이유는 공정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공정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시장은 쇠퇴하고 있고 앞으로는 단순히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삼성전자가 중국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점유율 변화 추이. 3개 중국 주요 제조사의 합산 점유율은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또 이 과정에서 정착된 추격자 산업 구조와 투자 구조로는 모든 분야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혁신 시대 시장과 상품에도 대응할 수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특히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혁신가의 딜레마’를 문제로 지적한다. 이 개념을 처음 들고 나온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존 제품 라인업과 서비스 체계, 인력 구조, 공급 사슬에 익숙해진 대기업은 급변하는 시장에 대처하는 내부 혁신이 힘들다고 혁신가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서울대학교 빅데이터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차상균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혁신에 유리한 구조인 중소기업은 인력과 자본이 부족하고 자본이 있는 대기업은 현재 사업구조에 매여 있는데다가 기존 인력들의 위험 부담을 보상해주는 시스템도 없기 때문에 기존 비즈니스의 틀을 흐트러뜨리기를 두려워한다"면서 “이런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우리 대기업은 왜 새로운 시도를 안할까 의문을 갖지만 구조적으로 힘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3세, 4세 경영 시대를 맞으며 필연적으로 창조적 기업가 정신 대신에 오너 일가의 영향력 확대, 후대 승계를 위한 상속과 지배구조에 지대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런 재벌 대기업 문화에서는 태생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그 사이 디지털 혁신 진앙지에서는…

그러는 사이 디지털 혁신의 진앙지로 꼽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페이스북, 구글, 애플, 아마존, 테슬라와 같은 혁신 기업들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과학자들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6월 아마존은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스피커 ‘에코’를 출시했다. 외형은 스피커지만 핵심은 ‘알렉사’라는 자연어 대화 능력이 있는 인공지능(AI) 비서 서비스다. 알렉사가 사용자 대화에서 파악한 습관 및 취향 정보는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시장 지배권을 더욱 확대하는데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게재하는 사진과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딥러닝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과 동영상, 텍스트에 대한 실시간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누가 누구와 함께,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사진, 동영상을 찍었는지 분석하면 단순한 12촌 관계보다 더 정밀한 사회적 관계망을 파악할 수 있다.

공유 경제 모델에 기반한 우버는 자동차 소유자들과 사용자들을 중개하는 플랫폼에서 시작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택시, 렌터카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이 회사는 현재 자동차 제조사와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앞으로 제조사들에 대해 지배적 위치에 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테슬라는 지난해 치명적인 자율주행 사망 사고까지 겪으면서 공격적으로 자율주행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시험 운행 중인 구글의 자율주행차 (사진=씨넷)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은 "자동차 산업만 봐도 4차산업혁명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현대기아차의 자율차 연구의 경우 1단계에서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가는 '점진적 접근' 방식을 택한 반면 구글이나 테슬라는 곧바로 자율주행 3단계부터 연구를 시작하는 '혁신적 접근'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 구글은 300만km가 넘는 시험 주행 기록을 보유하게 됐지만 뒤늦게 자율주행차 시범 운행에 나선 우리나라는 현재 누적 주행거리가 2만8천km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5G 통신이 상용화되는 2020년을 4차산업혁명의 시발점으로 잡고 있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3년 남짓이다. 일사분란하게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차상균 교수는 “산업화 과정에서 정착된 대기업 중심의 추종자 산업 구조와 교육, 과학기술 투자 기조는 우리가 뛰어넘어야할 문제로 더 많은 혁신의 씨앗을 키우고 더 많은 혁신 창업이 일어나도록 국가 운영의 기조를 바꿔나가는 길만이 지금까지의 성공을 이어가는 길”이라면서 “다행히 우리에게는 그동안 쌓아놓은 자본과 글로벌 경험과 네트워크, 브랜드, 비전과 목표가 주어지면 빠르게 이뤄내는 순발력이 있는 만큼 이 유무형 자산이 고갈되기 전에 교육, 과학기술, 정부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혁신 국가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편에 계속…]

------------------------------------------------------------

[글 싣는 순서]

①4차산업혁명…韓 제조업, 노키아 될라

②달리는 기차 바퀴라도 갈아끼워야 산다

관련기사

③4차산업혁명 대비 '지뢰밭 규제' 해체해야

------------------------------------------------------------

박영민, 이은정, 정현정, 조재환 기자pym@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