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IT 中企는 죽을 맛이죠"

[리셋 IT 코리아 2-1]엉뚱한 규제로 고통받아

방송/통신입력 :2017/03/21 13:39    수정: 2017/03/22 15:24

대한민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대격변의 시기입니다.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드냐, 경제도 추락하고 빈부격차만 커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어떻게 사회적 대타협을 준비하고,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를 위한 새로운 시대정신과 과제를 제언하기 위해 5부 15편의 대형 기획시리즈 '리셋 IT 코리아'를 준비했습니다. 제1부에 이어 3편으로 구성된 제2부는 4차 산업혁명의 젖줄인 국내 IT 중소기업들의 애환에 관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현장 방문 없이 법을 위반했다고 통보받았어요. 3D 프린터 제조사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라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알려주는 곳도 없어요. 사업 계획을 바꿔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삼디몰-

“정부가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큰 기대는 안 해요. 스타트업이 자율 규제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콜버스랩-

“(작은 기업도)기존 지배적 사업자와 같은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투자 환경도 많이 위축돼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지요. 청년 창업 등을 지원해주는 것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전시 행정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4차산업혁명 주도는 이후의 문제입니다” -IT 기업 대표-

한때 IT 강국으로 불렸던 우리나라가 연속성 없는 진흥 정책과 현실성이 떨어지는 산업 규제로 4차 산업혁명의 젖줄이어야 할 중소 IT 업체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의 IT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를 시도했지만, 늘 세계 신기술의 변화를 뒤에서 뒤따라가는 수준이다.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승부수를 띄운 벤처와 스타트업 IT 기업은 정부의 진흥 정책에 기대했지만, 오히려 규제란 장벽을 넘지 못해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는 말도 들린다.

IT 산업계에선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맞춰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돌파구를 마련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차기 정부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 부처의 연속적인 육성 정책, 규제 시스템 개혁 없이 새로운 틀을 만든다면 경쟁력이 낮은 중소 IT 기업은 되레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소 IT기업 “규제 풀어달라” 아우성

중소 IT 기업은 사전 규제 철폐를 주문했다.

중소 IT 스타트업에선 사전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일부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벗어나 절대 안 되는 것만 규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가장 많다.

임직원 수 4명인 삼디몰은 사전 규제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인증표준콜센터로부터 제조사 관련 안전 확인 신고가 필요 없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러나 삼디몰은 산업부로부터 제조사 규정을 위반했다며 고발당한 상태다.

삼디몰은 제조사가 아니라 3D 프린터 제작을 위한 부품을 제공해온 플랫폼 사업자. 그런데도 기존 법의 틀에 신사업 모델을 적용하다 보니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3D 프린터 플랫폼 삼디몰.

김민규 삼디몰 대표는 “무엇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왜 불법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억울하면 신문고에 문의하란 식이었다”며 “완제품 판매가 아닌 3D 프린터 플랫폼 사업자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당국자들이 이해를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일로 사업계획을 바꿔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정부가 4차산업혁명을 주도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실감은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모르겠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빼앗는 규제는 지속해서 생기고 있다"며 "정부가 창업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인증, 특허 관련된 지원을 체계적으로 도와주면서 외부 압력에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사업자 위한 법?...스타트업 설자리 좁아

삼디몰 외 다양한 분야에 진출을 시도한 스타트업 기업도 사전 규제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콜버스랩이 개발한 전세 버스 공동구매 서비스 콜버스(2015년 말 서비스)는 서울택시조합이 서울시에 단속을 요청하면서 규제 대상이 됐다. 콜버스는 현재 한정된 지역과 특정 시간에만 운행해야한다는 제약을 받고 있다.

2013년에는 일반인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 엑스가 종료된 사례도 있다. 당시 한국 정부와 서울시는 택시면허가 없는 일반인이 유사 택시 영업을 하는 것은 법 위반이라며 우버를 기소한 바 있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중앙).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콜버스의 경우)국토부의 중재로 합법 운영이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서울시가 자정 이후 서비스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불허 결정을 했다. 이후에도 면허 운영 방식에서 보이지 않는 규제를 적용했다. 사업을 접어야할지 고민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실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 규제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작도 안했는데 규제부터 한다면, 누가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겠느냐”라면서 “자율 규제로 스스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창업 기업의 생존율은 낮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5일 공개한 '통계로 본 창업 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를 보면 창업 3주년을 넘기는 기업(2015년)은 38%에 불과했다. 스웨덴 75%, 영국 59%, 미국 58%, 프랑스 54%, 독일 52%와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규제뿐 아니라 지원 정책 미미, 투자 환경 위축 등 수많은 악조건이 중소 IT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IT 업계 A사 대표는 “주변 지인에게 창업은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에선 그냥 색다르니까 시도해본다는 생각으로 창업하면 안된다. 스타트업 기업이 꾸준히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은 없다”면서 “몇몇 젊은 스타트업 대표가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을 했지만, 2~3년 안 돼 신용불량자란 낙인이 찍혔다. 청년 창업 등을 지원해주는 것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전시 행정이 아니길 바랄 뿐”이라고 강했다.

또 다른 B사 대표는 “스타트업 기업이 기존 지배사업자와 같은 규제를 받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업 전 아이디어를 보강하는 게 아닌 관련 법을 공부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면서 “꼭 필요한 것만 규제하고, 단발성이 아닌 장기 지원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4차산업혁명 주도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국회 표류 중인 규제 완화 및 진흥 법

물론 규제 완화를 위한 법 개정 등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 속도를 정부와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지난해 5월에 다시 발의된 ICT 핵심인 ‘빅데이터산업진흥법(빅데이터의 이용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안)’은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또 디지털기반 산업 기본법안, 지능정보사회 기본법안,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 법안, 소프트웨어 진흥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다.

빅데이터산업진흥법은 비식별화된 개인정보 취급에 명확성을 높이고, 신성장 산업인 빅데이터산업의 진흥과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빅데이터 산업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과 함께 신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국회에 계류 중인 IT 진흥 및 규제 완화법.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는 ICT 이슈가 있을 때만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다”며 “유럽,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보면 빅데이터 처리의 익명화 규정이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규제 완화를 위해 빠른 움직임을 보여야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는 커녕 강화 움직임도 있다.

게임 산업은 셧다운제, 웹보드 게임 규제 등이 완화되는 분위기였지만, 확률형 아이템 표시 관련 규제안이 발의돼 찬물을 끼얹었다.

한 중소 게임사 대표는 “대형 게임사보다 규모가 작은 게임사가 정책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육성과 지원 정책도 중요하지만, 사전 규제 때문에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한다. 자율 규제로 힘을 보태야할 때”며 “우리나라 게임 시장은 미국, 중국산에 점령된 상태다. 중국은 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로 자국 게임 시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했다.

■규제 완화, 법 개정만 중요할까...각 부처 전문 인력 배치 중요

그렇다면 규제 완화와 진흥 등을 위한 법 개정만이 중소 IT 스타트업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토양이 될 수 있을까. 해결 과제는 산처럼 쌓여있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일부 전문가는 산업 이해도가 높은 전문 인력을 각 부처에 배치해야하고, 정책과 사업을 각각 따로 하는 부처의 경우 통합을 하는 등 체질 개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작업을 병행해야 규제 개혁과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전략연구실 선임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선 기술적 선점 가능성, 인프라, 인적자원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 지식이 풍부한 인력을 (각 부처에)배치해야한다. 중복된 지원 정책이 스타트업 기업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제도와 사업을 각각 따로 담당하는 부처의 경우 통합하는 것을 고민해야한다”고 덧붙였다.

4차산업혁명 관련 토론회와 공청회 등에서도 사전 규제 폐지와 함께 이슈가 발생하면 내놓는 중복된 IT 정책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지 면밀하게 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이세돌과 AI 알파고의 바둑 대국 이슈가 불거진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각각 AI 기술 및 산업을 키우겠다며 비슷한 육성 정책을 발표했다.

드론 산업도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드론 예산 167억 원을 국회로부터 승인받아 기존 3개 사업 외에 4개의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산업부는 ‘무인기 산업 간담회’를 열고 2019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5천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산업연구원의 장석인 선임연구원(국회 과학기술정책연구 모임, 지난 달 7일)은 “역대 정부마다 국가 성장동력 육성정책을 전개했지만, 매번 정부가 바뀔 때 마다 수정되면서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이 크게 훼손돼 왔다. 성장동력 정책 대부분이 초기 R&D 정책에 치중하다 제대로 산업화를 이루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신성장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기성과주의에서 탈피해 정책의 연속성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강윤극 세종대학교 교수(VR엑스포 컨퍼런스, 9일)는 “4찬산업구조의 생태계 구축을 저해하는 규제를 재검토해야한다”면서 “고용구조 변화에 기업과 개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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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4차산업혁명?…IT 中企는 죽을 맛이죠"

스타트업, 정작 필요할 때 투자 못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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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실패 노하우' 되살릴 방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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