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C가 보는 '좋은 창업자' 6대 조건

알토스벤처스 대표 "韓 스타트업 기회 있다"

인터넷입력 :2017/01/20 10:15    수정: 2017/01/20 10:21

손경호 기자

"미국이나 한국이나 톱25에 드는 도시의 인구수는 같습니다. 한국이 작은 시장이라고 하지만 엔조이 마켓(엔터테인먼트나 즐길거리)으로만 따지면 세계 넘버3 입니다. 전 세계가 모바일로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도 충분한 기회가 오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알토스벤처스를 이끄는 한 킴 대표가 한국 스타트업 시장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게 된 것은 한국시장이 작지 않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특히 '창업-투자금회수(Exit)-재투자'라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 방정식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19일 국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가 서울시 강남구 소재 건설회관에서 개최한 10기 데모데이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한 킴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능성과 알토스벤처스가 생각하는 좋은 스타트업 및 창업자가 갖춰야 하는 자격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국 스타트업은 안 된다? 이제는 그런 생각 버릴 때

한국 스타트업들에 대한 비관론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국내 시장이 작고, 글로벌 진출이 거의 불가능하고, 기존에 입지를 다져놓은 큰 기업들을 이길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킴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이런 환경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 성과를 내면서 한국 스타트업 시장이 비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알토스벤처스가 투자에 성공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은 배달앱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천억원을 넘었다. 한 킴 대표는 우아한형제들에 대해 "이 회사가 앞으로 매출 5천억원까지는 충분히 해낼 것이고, 어떻게 1조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스타트업들이 자금이 부족하고, 대기업에 도전해도 늘 진다는 의식이 있는데 쿠팡은 한국만을 위한 서비스를 내놓은 스타트업이 어마어마한 돈을 끌어들여서 모든 것을 발전시키고, 옛날 방식을 파괴하면서 큰 곳들과 경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하지만 이제는 한국 스타트업도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도록 자금력을 확보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본다"는 설명이다. "나는 상대가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재미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한 봉봉(vonvon), 모바일 실시간 비디오 기반 소셜네트워킹 서비스 '아자르'로 전 세계 수천만명 사용자를 확보하며 95% 이상 매출이 해외에서 나오는 하이퍼커넥트 등은 순수하게 한국서 시작한 스타트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사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한 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우아한형제들, 쿠팡, 하이퍼커넥트, 봉봉을 대표적인 한국 스타트업 투자 성공사례로 꼽았다.

■알토스벤처스는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나?

한 킴에 따르면 스타트업들이 외부 투자자금을 유치하려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자신이 세운 가설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첫번째(가설증명)다. 사업을 하는데 이 고비만 넘기면 잘 할 수 있다고 호소하기도 한다(사업지탱). 그가 투자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세번째인 '빠른성장'이다. 빠르게 성장 중인 스타트업에게 자금이 있으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는 설명이다. 세번째가 제일 좋은 투자대상이라는 뜻이다.

그는 "펀딩은 좋은 곳에서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들이 적절한 조건으로 투자하겠다고 찾아오면 되도록이면 받으라"고 조언했다.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빠르게 성장하는 와중에 투자를 거절하고 나서 갑자기 자금이 필요한 아쉬운 순간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서도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를 유치한 알토스벤처스가 바라보는 투자 기준은 어떻게 될까?

먼저 투자는 이익을 낼 수도 있지만 손실도 염두에 둬야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리스크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 킴 대표는 "리스크 관점에서는 시장, 사람, 기술, 자금을 본다"고 말한다.

그는 일단 우리가 자금을 조달할 자신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본다. 그 다음으로는 투자 대상 회사 점검은 기본이고, 외부 자문을 받아 해당 기업의 기술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어떤 사람들이 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들의 이력이 어떻게 되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초기 스타트업 보다는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증명한 기업을 투자대상으로 삼는다. 해당 서비스의 트래픽이 얼마나 많이 빠르게 증가했는지를 본다. 비슷한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사용자들은 미묘한 차이로 특정 서비스에 열광하게 되는데 이런 점들이 지표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매출이 오르는 회사가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리스크를 보는 연장선에서 그는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 창업자들이 누구와 무슨 일을 어떻게 했었는지 등 레퍼런스 체크를 굉장히 많이 하려고한다는 뜻이다.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 포트폴리오(사진=알토스벤처스)

잘하는 창업자들 공통점 뽑아 보니...

한 킴 대표 눈에 비친 잘하는 창업자들의 공통점은 뭘까?

그는 우선 좋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내 팀에 끌어들이는 창업자다. 해당 회사를 평가할 때 가장 좋은 신호 중 하나가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데려올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회사다.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증명될수록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람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두번째는 사람을 잘 끌어들이는 만큼 내치기도 잘 하는 창업자다. 보통 친한 사람들끼리 공동창업을 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각 분야마다 최고의 사람들을 배치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공동창업자 중 몇몇은 자리를 잃게 되거나 새로 온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되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도 좋은 평판을 들어서 영입한 사람이 일을 같이 해보니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빨리 내보낼 수 있는 곳이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해고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창업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세번째는 순간 순간 겁나는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창업자다. 그는 쿠팡과 배달의민족을 예로 들었다.

쿠팡은 이전까지 지역 기반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한정된 수량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소셜커머스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왔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지역 기반 서비스에 대부분의 인력을 투입하고 있었고, 여기서 한번 경쟁사에 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컸다. 그러나 김범석 대표는 한 킴 대표를 포함한 투자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자사 관련 데이터를 확인한 뒤 빨리 아이템 마켓 형태로 전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비스를 한번에 전환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 다른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시장을 치고 나갈 수 있었다.

한 킴 대표는 "이러한 결정을 터닝포인트로 삼아 지금의 쿠팡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배달의민족이 1년6개월 전 '수수료 0%'를 선언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당시만 해도 배달의민족을 이용하는 배달업소들이 음식배달로 얻는 마진이 10% 수준에 그치는 상황에서 다시 배달의민족이 15% 수수료를 가져가면 이들이 어떻게 사냐는 비난이 컸다.

한 킴 대표는 "당시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고 말한다. 배달업소들이 한 달에 3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300만원까지 전단지를 돌리는데 돈을 써도 이를 보고 주문하는 손님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김봉진 대표가 당시 아무리 논리적으로 주장해도 감성적으로 소비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알토스벤처스 외에 다른 해외투자사까지 직접 찾아가면서 설득 시킨 끝에 수수료 0%를 선언했고, 이런 결정은 초기에는 매출이 주춤했지만 1년반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수수료 모델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투자자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굉장히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이밖에도 그는 좋은 창업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사와 관련 분야 경쟁사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우리와 같은 투자사들에게 그 경쟁사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점을 잘하고, 어떤 점에서 경쟁하게 될지 등을 알려줄 정도다.

욕심이 많다는 점도 좋은 창업자의 덕목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는 힘들다는 것이다. 창업자라면 어마어마하게 큰 회사를 만들고 싶다거나 어마어마하게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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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좋은 창업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공통점으로 그는 "돈이 얼마나 있거나 얼마나 벌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늘 망할 것을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창업자가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충분히 성공했으니 망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망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끝으로 그는 창업자와 투자자의 관계에 대해 "투자자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아니고, 창업자가 모든 조언을 무시하면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모든 문제를 서로 논의하고 이해시키는 관계"라고 강조했다.